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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쓴다는 것

결과보다 오래 남는 건, 그 순간까지 버텨낸 애씀의 기억이다.

by Jake Shin

유튜브를 보다가 차두리 감독이 제자들에게 조언하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지금 실수해도 돼.

애쓰는 것만 보여주면 돼. 알았지?”


짧은 말이었지만 이상하게 마음에 오래 남았습니다. ‘잘해야 한다’가 아니라, ‘애쓰는 모습이면 충분하다’는 말처럼 들렸기 때문입니다. 그 영상을 보고, 아이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에 대한 제 생각도 조금은 달라졌습니다.




어제 첫째 아이의 피아노 콩쿠르 대회가 있었습니다. 오후 2시 20분 시작이라 했고, 아침에는 학원에서 한 시간 넘게 연습을 하더군요. 비가 오는 어두운 날씨 탓에, 아이와 함께 학원까지 걸어갔습니다. 콩쿠르에 입고 갈 옷과 신발을 챙겨 신은 아이의 모습이 괜히 평소보다 더 어른스러워 보였습니다.


걸어가며 물었습니다.


나 : “오늘 콩쿠르인데, 긴장돼?”

아이 : “아니, 괜찮아~.”


괜찮다는 말속에는 ‘나, 꽤 준비했어’라는 자신감이 살짝 묻어 있었습니다.. 연습을 마치고 잠시 쉬었다가 현장으로 향했습니다.




콩쿠르 장소에 가까워질수록 사람들이 많아졌고, 아이 손을 잡은 부모들의 표정도 하나같이 닮아 있었습니다.


‘아, 이게 콩쿠르이라는 거구나.’


입구의 큰 스크린에서는 이미 무대에 오른 아이들의 연주가 실시간으로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연단에 올라 1분 30초 남짓한 시간 동안 자신이 준비한 모든 것을 심사위원 앞에 꺼내 보이고 내려옵니다. 학년별로 세션이 나뉘었고, 우리 아이는 열 번째 순서였습니다.


입구 근처에서 30분쯤 기다린 뒤, 조용한 콩쿠르장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연단만 환하게 빛나고, 주변은 숨소리조차 조심스러운 분위기였습니다. 다른 아이들의 연주를 보며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연습을 정말 많이 했구나.’

‘이 짧은 시간에 다 보여주지 못해 아쉽겠구나.’


아이들의 손짓과 표정에서 결과보다 더 많은 준비의 흔적이 느껴졌습니다.


8번째, 9번째…

그리고 열 번째.


대기실에 있던 아이가 연단 위로 올라갑니다. 생각보다 훨씬 당당한 모습이었습니다. 피아노 앞에 앉아 준비한 곡을 연주하기 시작합니다.




"빗속의 분수 (Fountain in the Rain"

집에서 연습할 때도 여러 번 들었던 곡이었지만, 이 공간에서 들으니 전혀 다르게 다가왔습니다.


물방울이 떨어지고,

조용히 흐르는 분수처럼

아이의 손끝에서 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연주를 듣는 동안, 집에서의 연습 장면이 자연스럽게 겹쳐졌습니다.


틀리고,

다시 하고,

또 틀리고,


고쳐가며 반복하던 시간들... 그 과정이 있었기에 지금 이 연단 위의 모습이 있다는 걸 그제야 또렷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Practice makes perfect.”

하지만 그날 제가 떠올린 문장은 조금 달랐습니다.


‘Practice shows effort.’ 완벽해서가 아니라, 애썼다는 게 보였기 때문입니다. 연주는 큰 실수 없이 끝났습니다. 아이의 그 모습은 이미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콩쿠르가 끝난 뒤, 아이보다 오히려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나는 얼마나 결과 중심으로 아이를 바라봤을까. 과정보다 점수와 순위를 먼저 떠올리지는 않았을까. 사실은 알고 있었습니다. 과정이 충실하면 결과는 대부분 따라온다는 것을요.. 그럼에도 자주 잊곤 합니다.




차두리 감독의 말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애쓰는 것만 보여주면 돼.”


아이에게도, 그리고 어쩌면 지금의 나에게도 꼭 필요한 말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잘 해내는 것보다, 끝까지 애써보는 것. 그 하루는.‘애쓴다는 것’의 의미를 조용히 다시 배운 날이었습니다.


"결과보다 오래 남는 건,

그 순간까지 버텨낸 애씀의 기억이다."


참, 콩쿠르 결과는 저녁쯤 공개가 되었는데 '준 대상' 였네요. 준비하느라 애쓴 아이에게 박수를 다시 한번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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