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이사 가는 날

다시 돌아온 자리, 한 가족의 이사 이야기

by Jake Shin

지난 금요일(12/26) 부모님 집 이사를 마쳤습니다.


이사라는 단어는 누구에게나 익숙하지만, 이번 이사는 조금 다른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단순히 집을 옮기는 일이 아니라, 시간을 건너 다시 돌아오는 과정이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살던 집, 그 자리가 재건축을 거쳐 새 집으로 바뀌었고, 부모님은 무려 11년 만에 다시 같은 장소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오래 걸린 재건축, 그리고 기다림의 시간

부모님이 오래 거주하시던 집은 재건축이 결정된 이후에도 오랜 시간 제자리걸음을 반복했습니다. 승인만 되고 실제 진행은 더뎠고, 그 사이 조합장 교체와 내부 정비가 이어졌습니다. 본격적인 변화는 약 3년 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새 조합장이 선출되고, 하나씩 절차가 진행되면서 비로소 ‘정말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겠구나’라는 기대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 사이 부모님은 두 차례의 이사를 더 해야 했습니다. 익숙한 동네를 떠나 낯선 곳에서 생활하는 시간은 생각보다 길었고, 특히 연세가 드신 부모님께는 쉽지 않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이사는 단순한 입주가 아니라, 긴 임시 거처 생활을 마무리하는 종착지이기도 했습니다.


가족이 함께 준비한 9월부터의 시간

이사는 하루 만에 끝나지만, 준비는 몇 달에 걸쳐

이루어졌습니다. 본격적인 준비는 9월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사업체를 선정하고, 입주 전 하자 확인 업체를 알아보고, 청소업체를 비교하는 일까지 하나하나 가족이 함께 논의하며 결정했습니다. 조합에서 요구하는 각종 서류와 절차 역시 혼자서는 벅찼을 일이었지만, 가족이 함께 의논하며 차분히 처리해 나갔습니다. 11월 중순에는 입주 전 하자 점검을 진행했습니다. 새집이라고 해서 모든 것이 완벽하지는 않았고, 작은 부분까지 꼼꼼히 살펴보며 체크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이제 정말 이사하는구나’라는 실감이 점점 가까워졌습니다..이번 주 화요일에는 청소업체를 통해 집 안 구석구석을 정리했습니다.


하루 종일 이어진 청소 덕분에 빈 집은 말 그대로 새 집처럼 정돈되었습니다. 깨끗이 닦인 바닥과 창문을 보며, 부모님이 이곳에서 다시 생활하실 모습을 자연스럽게 그려보게 되었습니다.


크리스마스 전날, 가족 모임

이사 전날은 크리스마스였습니다. 동생과 저는 부모님 집으로 가서 이사를 위한 마지막 준비를 도왔습니다. 박스 정리, 필요한 물건 구분, 혹시 빠진 것은 없는지 다시 한번 확인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어렸을 때 살던 집 근처로 간다는 사실 때문인지, 가족 모두의 표정이 유난히 밝았습니다. 부모님도, 저도, 동생도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장소는 바뀌었지만, 그 동네가 주는 안정감과 익숙함은 여전히 남아 있었습니다.


특히 어머니에게 이번 이사는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이사 갈 집 근처에는 어머니가 거의 매주 다니셔야 하는 병원이 있었습니다. 그동안은 이동에만 40분, 아침 시간에는 1시간 가까이 걸리곤 했습니다. 몸이 불편한 상태에서의 이동은 항상 걱정거리였고, 가족 모두가 마음을 놓지 못했습니다. 이번 이사를 통해 그 부담이 크게 줄어들게 되었고, 이 점은 가족 모두에게 가장 큰 안도감을 주었습니다.


유난히 추웠던 이사 당일

이사 당일은 유독 추웠습니다. (근데 오늘은 날씨가 영상이라는..) 올해 들어 가장 춥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습니다. 날씨 예보를 보며 괜히 마음이 더 바빠졌습니다. 특히 어머니의 건강이 계속 마음에 걸리더군요.


어머니는 거동이 불편하셔서 이사 중에는 방에 누워 계셨습니다. 이사업체가 거실과 다른 방의 짐을 정리한 뒤, 이제 어머니가 계신 방을 비워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휠체어를 준비하고, 어머니를 조심스럽게 모셨습니다. 마침 주중에 오시는 요양사분도 도와주셔서, 두툼한 옷을 여러 겹 입혀 드렸습니다.

10시쯤, 휠체어에 앉아 계신 어머니의 모습이 계속 눈에 들어왔습니다. 찬 공기가 혹시라도 몸에 해가 되지 않을까, 감기라도 걸리지는 않을까 마음이 놓이지 않았습니다.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괜히 어머니의 손을 더 감싸 쥐게 되었습니다.


각자의 역할, 그리고 자연스러운 분담

이사 당일의 동선과 역할은 사전에 가족끼리 의논해 두었습니다. 아버지, 동생, 그리고 저는 각자 할 일을 나누었습니다. 저는 어머니와 요양사분을 모시는 역할을 맡았고, 동생은 아버지와 함께 부동산 업무를 처리하기로 했습니다.


이사업체는 약속된 시간보다 이른 오전에 일을 빠르게 마무리했습니다. 덕분에 일정이 조금 앞당겨졌고, 그에 맞춰 움직여야 했습니다. 12시 30분쯤, 이사업체가 짐을 모두 싣고 점심을 먹으러 떠났고, 저는 어머니와 요양사분을 모시고 점심을 먹으러 갔습니다. 동생과 아버지는 부동산으로 향했습니다.


마음이 상할 뻔했던 짧은 순간

12시 30분쯤, 집주인과 부동산 관계자가 찾아와 청소 이야기를 꺼냈을 때는 솔직히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이미 청소를 마쳤고, 이 집은 새집도 아닌데 그런 이야기를 다시 꺼내는 것이 납득되지는 않았습니다. 다행히 추가 비용 없이 정리되었지만, 그 짧은 순간에도 이사라는 일이 얼마나 많은 변수와 감정을 동반하는지 다시 느끼게 되었습니다.


새 집에 도착하다

오후 3시 30분쯤, 마침내 이사할 집에 도착했습니다. 이사업체는 이미 도착해 방 하나를 먼저 세팅해 두었고, 그 방으로 어머니와 요양사분을 모셨습니다. 난방이 잘 되어 있어 다행이었고, 그제야 조금 마음이 놓였습니다.

이후 이사업체는 정말 일사불란하게 작업을

이어갔습니다. 가구 배치, 박스 정리, 큰 짐 옮기기까지 흐트러짐 없이 진행되었습니다. 오후 5시가 조금 넘어 이사가 마무리되었을 때, 긴 하루가 비로소 끝났다는 실감이 들었습니다.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집

구조는 예전에 살던 집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신축 아파트라는 점에서 많은 것이 달랐습니다. 단열이 잘 되어 집 안 공기가 훨씬 따뜻했고, 각종 편의 기능도 눈에 띄었습니다. 어머니가 생활하시기에 훨씬 안전하고 편리한 환경이라는 점에서 가족 모두가 안심할 수 있었습니다.


짐이 완전히 정리되지는 않았지만, 어머니가 방 안에서 편안히 쉬고 계신 모습을 보니 그동안의 준비와 수고가 모두 보상받는 느낌이었습니다.


추운 날, 휠체어 위의 어머니를 보며

이사 하루를 돌아보면, 가장 오래 마음에 남는 장면은 추운 날씨 속에서 휠체어에 앉아 계신 어머니의 모습입니다. 요양사분과 제 도움을 받으며 이동하시던 그 모습은, 가족이라는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이사는 끝났지만, 그 하루에 담긴 감정과 기억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11년 만에 다시 돌아온 자리에서, 부모님이 조금 더 편안하고 안전한 시간을 보내시기를 바라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들었습니다.

이번 이사는 집을 옮기는 일이 아니라, 한 가족이 지나온 시간과 앞으로의 시간을 잇는 하나의 과정이었습니다. 그래서 더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이사 당일 정리가 안되었지만, 오늘 조금 더 정리 완료하였습니다. 이사한 곳은 병원도 가깝고, 지인들도 많으니 건강하고 즐겁게 생활하시길... 저도 회사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어 마음이 놓입니다.)

keyword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