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버티는 이유는 결국 가족이었습니다.

가족에 대한 일은 함께 풀어가는 것

by Jake Shin

살다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나는 언제부터 이렇게 많은 것을 책임지는 사람이 되었을까?”


어릴 적에는 책임이라는 단어가 그리 무겁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시험을 잘 보는 것, 친구들과 잘 지내는 것,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것 정도가 그때의 고민이었습니다. 잘되면 기뻤고, 잘 안 되면 속상했지만, 그 무게는 대개 나 혼자 감당하면 되는 종류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살아가게 되면서 책임의 모양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어느 순간부터 선택 하나에도 나 말고 다른 사람이 함께 들어오기 시작했고, 결정의 기준도 “내가 원하는가”에서 “우리에게 괜찮은가”로 바뀌어 갔습니다. (우리는 결국 가족이죠.)


그리고 지금, 인생의 한복판에서 아주 특별한 시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위로는 부모님이 계시고, 아래로는 아직 독립하지 않은 아이가 있는 시기. 누군가는 이 시간을 두고 ‘샌드위치 세대’라고 부르지만, 정작 그 안에 서 있는 사람에게는 그 표현마저도 조금은 가볍게 느껴질지 모릅니다.


아이의 교육과 생활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학원 일정, 학교 문제, 친구 관계, 진로 고민까지 아이가 겪는 모든 변화는 자연스럽게 부모의 마음을 흔듭니다.


동시에 부모님의 건강은 점점 신경 써야 할 영역이 되어 갑니다. 병원 예약, 약 복용, 혹시 모를 응급 상황까지 머릿속 한편이 늘 준비 상태로 긴장해 있습니다.


이 시기의 삶은 한쪽만 바라보며 걸어갈 수가 없습니다. 뒤도 돌아봐야 하고, 앞도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중심을 잡고 서 있는 사람이 바로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자주 실감하게 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말합니다.

“요즘이 제일 바빠.”


(하지만 어쩌면 더 정확한 표현은 이것일지도 모릅니다.)

“요즘이 제일 무겁다.”


이 무게는 단순히 일정이 많아서 생기는 피로가 아닙니다. 내가 흔들리면 나 하나가 아니라 가족 전체가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 오는 긴장감, 그리고 늘 누군가를 먼저 떠올려야 하는 삶의 구조에서 오는 부담감이 쌓여 만들어진 무게입니다.


이직을 고민할 때도, 새로운 도전을 떠올릴 때도, 잠시 쉬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우리는 본능처럼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이 선택이 우리 가족에게 어떤 영향을 줄까.”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래서 점점 더 조심스러워지고, 하고 싶은 것보다 지켜야 할 것을 먼저 생각하게 됩니다. 회사가 흔들리거나 소득이 줄어들 수 있다는 가능성은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가족의 안정과 직결된 문제로 다가옵니다. 그래서 두려움의 방향도 달라집니다. “내가 힘들까 봐”가 아니라 “우리 가족이 함께 힘들어질까 봐”가 더 앞섭니다.


이 부담은 통장 잔고처럼 숫자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사람의 마음을 가장 깊이 누르는 무게는 오히려 이런 보이지 않는 책임일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다시 일어납니다. 피곤해도 출근을 하고, 걱정이 많아도 아이에게 웃으며 말을 건네고, 몸이 무거워도 부모님 병원에 함께 갑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깨닫게 됩니다.


"내가 버티는 이유는 결국 가족이었구나."




강해지려 애쓰기보다, 무너지지 않으려 애쓰는 마음


가족을 책임지는 시기를 보내는 사람들을 보면, 겉으로는 다들 꽤 단단해 보입니다. 묵묵히 자기 역할을 해내고, 쉽게 힘들다는 말을 꺼내지 않으며, 언제나 다음 일을 준비하는 사람들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이렇게 말합니다. “저 사람은 원래 강한 사람이야.”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오래 버티는 사람들은 애초에 흔들리지 않는 사람들이 아니라, 흔들리더라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법을 배운 사람들입니다. (회복탄력성이 있는 분들요)


이 시기에는 예상하지 못한 일이 계속 생깁니다. 부모님의 갑작스러운 건강 문제, 아이의 진로 갈등, 회사의 변화, 경제적인 압박까지. 계획대로 흘러가는 날보다 계획이 어긋나는 날이 더 많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때마다 늘 침착하고 단단하기를 기대하는 건 너무 가혹한 일입니다.


그래서 필요한 마인드셋은 “나는 왜 이렇게 약하지”라는 자책이 아니라, “이 상황에서 힘들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라는 이해에 가깝습니다. 지금 느끼는 피로와 불안은 내 성격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내가 서 있는 자리의 구조가 원래 무겁기 때문에 생기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먼저이라는 것이죠.


마음이 흔들리는 날이 있어도 괜찮습니다. 잠시 의욕이 떨어지고,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이 있어도 괜찮습니다. 중요한 건 완벽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힘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가족을 위해 산다는 것은 언제나 강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약해진 날에도 자리를 떠나지 않는 사람이 되는 일에 더 가깝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완벽하지 않은 모습으로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줄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나를 돌보는 일이 가족을 지키는 일이 되는 시기


이 시기의 많은 사람들은 자기 몸을 가장 마지막에 둡니다. 병원 예약은 계속 미뤄지고, 운동은 다음 달의 계획이 되며, 잠은 줄어들고 피로는 쌓입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지금은 내가 아플 시간이 없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가족 리스크가 커지는 시기에 가장 큰 변수는 바로 나 자신의 건강 문제일지도 모릅니다. 가족의 중심 역할을 하는 사람이 무너지면, 그 여파는 생각보다 훨씬 큽니다.


그래서 건강 관리는 더 이상 개인적인 취미나 선택의 영역이 아닙니다. 가족을 위한 준비이고, 가족을 위한 보험이며, 가족을 오래 지키기 위한 기반입니다. 수면을 챙기고, 정기검진을 미루지 않고, 짧더라도 몸을 움직이고, 스트레스가 쌓였다는 신호를 무시하지 않는 것. 이런 작은 행동들이 몇 년 뒤 가족의 일상을 지탱하는 힘이 됩니다.


종종 “지금은 내가 희생할 때”라고 말하지만, 가족에게 진짜 필요한 사람은 스스로를 다 써버린 사람이 아니라, 오래 함께 걸어갈 수 있는 사람입니다.


혼자 버티는 가장이 아니라, 함께 버티는 가족이 되기까지


가족 리스크가 커질수록 많은 사람들이 더 혼자가 됩니다. 힘들다는 말을 꺼내면 괜히 분위기만 무거워질 것 같고, 내가 버텨야 이 집이 돌아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점점 말수가 줄고, 고민은 혼자만의 시간이 됩니다.


하지만 가족은 책임의 대상이 아니라, 책임을 나누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배우자와 부담을 솔직하게 나누고, 아이에게도 나이에 맞게 집안의 상황을 설명하며, 부모 돌봄 문제 역시 형제자매와 역할을 상의하는 대화가 필요합니다.


완벽하게 나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중요한 건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입니다. “이 문제를 나만 안고 있는 게 아니구나”라는 느낌은 생각보다 큰 위로가 됩니다.




"그래도 우리는 오늘도 가족이라는 이유로 다시 일어납니다."


가족 리스크가 커지는 시기는 분명 쉽지 않습니다. 마음은 자주 지치고, 책임은 계속 늘어나며, 선택은 점점 더 신중해집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습니다. 지금 이 시간을 버티고 있는 (우리는) 이미 충분히 잘 해내고 있다는 점입니다.


힘들다고 느끼는 건 약해서가 아니라, 책임을 다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완벽하게 해낼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멈추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조금씩 조정하며 걸어가면 됩니다.


그리고 어느 날 돌아보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땐 정말 힘들었지만, 그래도 나는 우리 가족을 지켜냈다.”


다음번 30번째 마지막 글에서는 그동안 이어온 ‘가족’이라는 주제를 정리해보려 합니다. 우리가 왜 이렇게까지 버텨왔는지, 그리고 그 시간이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는지 함께 돌아보는 글이 될 것 같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