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아줌마에게 들은, 명절 뒷담화.
추석이다.
한국에 있다면 시가와 친정에 언제 갔다가 언제 올 건지 날짜와 시간을 체크하고 분주하겠지만, 여기서는 당일에(시차를 잘 계산해서) 양가에 전화를 드리고, 소정의 명절비(?)를 계좌이체로 보내드리면 간단한 명절 의식이 끝이 난다. (웃프지만, 덕분에 기혼 친구들에게 부러움의 문자도 많이 받는다. 아이고..)
사실, 한국인이 많이 거주하지도 않고 ‘추석’은 명절이 아닌 이 캐나다 시골에서 추석을 기억해내는 수단은 오로지 핸드폰의 알림 메세지일 뿐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구렁이 담 넘어가듯’ 스을쩍~ 넘어간다. 몇 년 간 못 찾아뵈어서 외로우실 양가 부모님들에 대한 죄송한 마음이 한 스푼 더해져 마냥 가볍지만은 않지만.
문득, 이삼여 년 전 아들 친구의 엄마(사라)와 나눈 대화가 생각이 난다. 아마도 크리스마스 무렵이었을 거다. 한국같이 ‘민족의 대이동’까지는 아니어도 크리스마스에는 가족단위로 만나 휴가를 즐기는 것이 일반적인 이곳이라, 인사치레로 먼저 물어본 것으로 시작된 대화였다.
나: “이제 크리스마스네. 축하파티 같은 거 하니?”
사라: “Oh. no! 난 여기에 아무 친척도 없는 네가 정말 부러운 마음이야.”
……..
이건 또 무슨 말이지?
영화나 미드에서처럼, 가족들이 북적북적 크리스마스에 모여 선물을 교환하는 모습이야말로 북미의 ‘진정한’ 모습이 아니란 말인가?!?!
9월 초인 지금, 이미 가게마다 크리스마스 시즌 상품들이 진열되고 팔리는 이곳, 11월 말부터는 카트 가득 누군가에게 줄 선물들을 싣고 계산하는 사람들로 가게마다 넘쳐나는 이, 캐나다인데.
나도 모르게 지은 의아한 표정 때문인지, 사라는 자세한 설명을 해주었다. 이유를 들어보니, 양가 친척들이 모두 가까이 모여 살아서 ‘때만 되면’ 번갈아 모여 음식을 준비하고, 축하하는 그 가족 모임이(생일 포함) 평균 한 달에 한 번 이상 된다고 한다. 시간과 날짜도 매번 조율해야 하고, 그러다 보니 생기는 스트레스가 커서 본인도 남편도 이곳 토박이이지만 어디 낯선 곳에 가서 가족끼리 조용하게 살아보고 싶다고 했다.
특히나 크리스마스나 아버지날, 어머니날 같은 ‘중요한’ 날에는 그 스트레스가 더욱 크다고.
그 말을 할 때의 그녀는, 그야말로 어디론가 ‘탈출’이 하고 싶은, 그런 간절한 눈빛이었다.
으음.
호주나 캐나다 같이 영미권에 살면서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며 매번 새롭게 깨닫는 것은, 결국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는 것. 내가 상상했던 북미 가정의 행복한 모습도 가족을 위한 개인의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한 이야기였다. 생각해 보면 아주 당연한데, 난 왜 그들이 매번 진심으로 100% 모든 순간을 즐긴다고 단정 지었을까?
불현듯, 한국의 ‘전 부치는’ 모습이나, 모두 모여 차례를 지내는 모습들도 다른 나라의 사람들에게는 매우 화목한 전통적인 가족의 아름다운 전형으로만 보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명절 스트레스’ 같은, 이면의 모습은 겉으로는 나타나지 않으니.
아, 그런거구나.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Life is a tragedy when seen in close-up, but a comedy in long-shot.)
-찰리 채플린-
가족들을 사랑하고 아끼지만, 저마다 다른 이유들로 부담을 느끼고 때로는 스트레스를 받는 전 세계의(?!) 모든 이들에게 캐나다 시골에서 조용히 혼자 소심한 응원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