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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움 Oct 09. 2019

Part1. '좀더 나은 나'라는 예감

매직카펫 매거진 Vol.7 이진아 님(1)

내 친구가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이상한 사람은 이상한 사람의 손을 잡고 온다.' 요즘 우리가 만나게 되는 재미있고 흥미로운 사람들에게 이 말은 딱 들어맞고 있다.


진아님을 설명하자면 '매직카펫 라이더는 매직카펫 라이더의 손을 잡고 온다.'라고 시작할 수 있다.

진아님을 처음 만난 건 래형님(두 번째 매직카펫 라이더)이 주최한 MT였기 때문이다.


벌써 2년 전의 일인데도 그날의 진아님을 기억할 수밖에 없는 건 오리엔티어링 국가대표가 꿈이라고 말하던 모습 때문이다. 작은 체구에 말없이 앉아있던 진아님이 자기소개 차례가 되자 또랑또랑한 눈빛으로 '국가대표'라고 발음하던 그 모습.


인터뷰로 만난 진아님은 역시나 그때 같은 느낌을 주었고 나는 그가 마치 까놓은 밤톨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엄마는 그 표현을 정우성에게 쓰지만 내겐 그 말이 작고 속이 꽉 차서 단단하다는 느낌이라 진아님에게 더 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들 이  표현에 끄덕일 것이다. 이 사람이 수많은 고민과 경험을 거쳐 지금의 자신이 되고, 더욱 더 자신에게 충실하게 살아가려는 이 이야기를 들으면.




안녕하세요, 진아님. 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이진아입니다. 자기소개는 너무 어려운 것 같아요. 음...사전 질문지에 저를 설명하는 세가지 키워드에 대한 질문이 있었는데 그걸로 대신해볼게요. 제가 좋아하는 건 오리엔티어링, 고양이, 이야기 이렇게 세 가지에요.


사전 질문지에서 그 키워드 각각에 들이는 시간의 양, 애정도 순서도 물어봤었는데 그건 어때요?  


고양이랑 생활을 같이 하고 있고 콘텐츠는 숨쉬듯 소비하는 것이라서 시간을 따지기가 애매할 것 같아요. 애정도도 조화롭게 비슷비슷한 것 같아요.  


제가 진아님을 기억하는 키워드는 당연히 오리엔티어링이에요.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 이야기를 들었으니까요. 오리엔티어링이 뭔지 설명해주세요.


오리엔티어링은  미지의 지형에서 지도와 나침반을 들고 정해진 지점을 통과해서 가장 빨리 돌아오는 사람이 이기는 기록경쟁이에요.

 

오리엔티어링
: 지도에 표시된 지점에 있는 컨트롤에 SI카드를 찍으면 해당 지점에 도착한 시간이 기록된다.(아래 사진 참고) 국내에는 서울연맹, 경기연맹 등 지역별 연맹이 있다. 각 연맹 아래에 여러 클럽들이 있으며 가족 단위 클럽도 많다고 한다. 세계대회에는 국가대표 경기 외에도 일반인 경기도 함께 열리며 80대 클래스까지 열리는 전 연령층이 즐길 수 있는 스포츠이다.
참고 기사 : 한겨레, 봄날의 오리엔티어링을 아시나요?


지도에 표시된 목표지점에 가면 첫 번째 사진과 같은 컨트롤이 있어 두 번째 사진과 같이 참가자마다 부여된 SI카드를 찍으면 기록 인증 완료.

오리엔티어링 때문에 진아님을 기억한다고 말했지만 사실 제가 인터뷰를 하자고 연락한 건 진아님이 국가대표가 되고 싶다고 말했던 순간을 기억하기 때문이에요. 정말 멋있었어요. 국가대표가 되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을 내 눈 앞에서 본 게 처음이었거든요.


어렵기도 하고 못 될지도 모르지만 국가대표가 되고 싶어요. 그래서 많이 이야기하고 다녔어요. 오리엔티어링이라는 종목을 하는 사람들은 적고, 그 적은 사람들 중에 국가대표가 나오는 거긴 하잖아요.

세계대회에 국가대표로 나가보고 싶어요.  


물론 그런 세계대회엔 일반인 클래스도 있어서 저도 나갈 수는 있어요. 그래서 지난 번엔 홍콩 대회 다녀왔어요. 해외에서 하는 건 더 특별한 경험이에요. 우리나라에선 익숙한 사람들과 비슷한 지형을 두고 하지만 해외는 또 다르거든요.  


우리나라 산의 등고선과 해외는 또 달라서 등고선 보기가 더 어렵다던가 하는 여러가지 차이가 있어요. 해외에 가서 더 많은 오리엔티어들을 보고나면 '나도 더 잘하고 싶다' 이런 마음도 가지게 되고.


언제 시작했어요?


‘포켓몬고'가 한창 붐일 때였어요. 그래서 프립(액티비티 플랫폼)에서 강릉 가는 버스를 만들었어요. 그래서 프립 홈페이지에 들어갔다가 거긴 안 가고 오리엔티어링 국가대표 남자분이 당시 매주 열고 있던 이벤트 경기를 갔어요. 지도, 탐험, 보물찾기라고 써있으니 재미있어 보이더라고요.  


노량진 근린 공원에서 했는데 제가 여자부 1등을 했어요. 왜냐면 아무도 열심히 하지 않았거든요. 제가 초등학교 때 100미터 달리기 선수였어요. 그뒤로는 운동을 하지 않았지만 오리엔티어링은 달려서 이길 수 있는 경쟁인 거에요. 그때 1등 상품이 있었는데 다음 오리엔티어링 경기 참가권이었어요. 하하하


그래도 그 오리엔티어링 경험이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네요?


네. 그때가 7월이었을 거에요. 더워서 경기가 없는 8월 지나고 9월에 열린 서울경기통합대회에 나갔어요. 더 빠지게 된 건 그 다음 울산대회 때였어요. 이 대회가 큰 역할을 했어요.  


서울에서 하는 것만 해도 충분했는데 울산에서 토, 일  1박2일 동안 두 번의 경기가 있다는 거에요. 처음 갔던 이벤트로 알게 된 사람들 중에 그 대회에 가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때는 별로 친하지도 않았는데 같이 울산대회를 가게 됐어요. 대회가 보통 오전이라 금요일 저녁에 가서 찜질방에서 자는데 내가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거지 싶더라구요.


그런데 대회 둘째날에 주최측의 실수로 제가 일반부가 아니라  국가대표 선수가 될 수 있는 포인트가 걸린 엘리트 경기에서 뛰게 된 거에요.  


오리엔티어링은 보통 공원이나 산에서 하는데 통과해야 할 지점들이 꼭 길 위에 있는 게 아니라서 지도를 보고 그 지점을 찾아야 해요. 그런데 산 대회는 헤매다가 못 돌아올 수도 있고, 등고선을 보고 통과지점을 찾는 기술도 필요해요.


이 대회가 산에서 열리는 대회였어요. 그러니 사람들도 걱정이 되는거죠. 그래서 저에게 달라붙어서 다른 대회 지도를 보면서 여기부터 여기를 가려면 어떻게 가야하는지 설명을 해보라면서 연습을 시켰어요. 지도를 보고 계획을 세우는 걸 처음 해본 거죠. 그게 더 빠지게 된 계기였어요.


결과는 어땠어요?


완주했어요. 3시간 이내 완주가 목표였는데  3시간 안 걸렸어요.


진아님은 잘하는 걸 더 좋아하게 된다고 했는데 잘 할 수 있다는 느낌을 받았나봐요.


맞아요. 처음부터 1등을 했잖아요. 제가 길 찾는 걸 잘하는 편이고 달리기도 잘했던 경험이 있고. 요즘 한계에 부딪히긴 했지만요. 그리고 나이 들어서 메달을 받는 경험이 별로 없잖아요. 그런데 전국대회를 가면 메달을 줘요. 울산대회에서도 초보대회에서 1등을 했고. 그러니까 거기에서 펌프질을 받는 거죠.


그럼 단상 위에서 메달 받아요?


네. 단상도 있죠. 그리고 엘리트가 아니더라도 일반 나이대별로도 상을 받을 수 있어요. 전 엘리트 코스 뛰면서 상을 받은 적은 없지만 언젠가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정말 재미있어요. 100미터 달리기만 했었는데 달리기만 할 때는 목적도 재미도 없었는데 이건 목적도 있고 잘 달려야하는 목표가 생기니까 열심히 하게 돼요.


"경기 중엔 지도와 엄지 나침반을 이렇게 들고다녀요."라고 시범을 보여준 진아님.


평소엔 어떻게 연습해요?


그게 참 어려운 일이에요. 일단 저는 체력이 많이 떨어지는 편이라 달리기를 해요. 지도를 잘 보면 유리한 점도 있지만 진짜 잘 달리는 사람은 그걸 커버해요. 어떤 사람은 막 달려서 지도 안 보고 지도 범위 밖까지 막 뛰어갔다가 다시 돌아와요. 그런데 그게 속도로 커버가 되죠.


선수로 나가는 것 외에도 대회 운영도 하신댔잖아요. 그건 어떻게 하게 된 거에요?


오리엔티어링은 보통 클럽으로 운영돼요. 울산 대회에서 상을 주면서 소속을 쓰라고 하는데 저는 개인으로 나갔거든요. 나도 소속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침 그 대회에서 여자 국가대표인 차윤선 선수를 알게 되었는데 그 당시엔 우리가 들어갈 수 있는 클럽이 없는 상태였어요.  


그래서 그 언니가 같이 할 수 있는 사람들을 모아서 클럽을 만들었고 그게 2017년이었으니 이제 2년 된 거죠. 클럽 만들고나서 언니가 이제 우리도 클럽 주최 여러 이벤트를 만들어보자고 했어요. 처음엔 클럽 창립 기념 릴레이 대회로 시작해서 요즘엔 평일 저녁 나이트 오리엔티어링을 정기적으로 열고 있어요.


차윤선 선수가 우리나라에서 독보적인 사람이에요. 진짜 멋있어요. 그 언니가 11월에 충북 보은에서 열릴 예정인 대회도 주최해요. 세계사람들이 포인트를 얻을 수 있는 대회에요. 저도 그 대회 운영에 참가하구요.  


그렇게 저변을 넓히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어떻게 하면 오리엔티어링을 더 알릴 수 있을지 고민이에요. 마케팅이란 게 너무 어렵잖아요. 답이 딱 정해져있는 것도 아니고 운도 따라줘야 하고.  


나이트 오리엔티어링은 어디서 해요?


최근에는 올림픽공원, 효창공원, 상암 평화의 공원, 여의도공원에서 열었어요. 이 언니가 지도제작자 중 한 명이라 예전에 제작해두었던 지도를 쓰기도 하고 다른 분이 만든 걸 사오기도 하면서 했어요. 올해에는 지도 그리기를 배워서 해보자고 해서(저는 그때 못갔지만) 직접 그려서 쓰기도 했어요.


지도를 그려요?


오리엔티어링용 지도는 일반지도랑 달라요. 지도제작자가 답사를 해서 평평한 곳, 들어가면 안되는 지형이나 산림이 너무 빽빽해서 들어가기 힘든 곳들을 모두 다른 색으로 표시해둬요.


지도 제작엔 돈이 좀 들고 특히 산 지도는 더 들고요. 지도제작자들이 한국에 열 몇명 정도 있다고 하는데 저도 빨리 배우고 싶어요. 서브잡이 될 수 있으니까.


오리엔티어링을 하면서 보람있는 순간은 언제에요?


완주 자체가 보람있어요. 실격이 많거든요. 컨트롤을 못 찾으면 돌아와야 하는데 그러면 실격. 저는 이제까지 실수해서 실격했던 것 외에 못 찾아서 실격한 적은 없어요.  


지도를 진짜 잘 보시는구나.


아무리 헤매도 꼭 찾아서 돌아와요. 딱 한 번,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나서 가지 말라고 한 적은 있었지만 그건 실격이 엄청 많았던 대회였어요. 아예 도무지 못 찾겠다 해서 돌아온 적은 없었어요. 사람들이 얘가 왜 이렇게 안 오냐면서 걱정해도 제가 늘 말해요. 걱정말라고 돌아오긴 돌아온다고. 늦게 와서 그렇지.  


서울시 대표선수이기도 하다면서요?


네. 서울시 대표입니다. 그리고 대회에서 기록을 관리하는 전자카드 시스템도 운영하고 있어요. 더 잘하고 싶고 국내 최고가 되고 싶습니다.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더 나은 대회, 더 멋진 대회를 만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 분야에서 내가 앞으로 할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너무 많아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요. 매너리즘? 이런 거 우린 없어요. 새로운 사람들에게 이 재미있는 걸 더 알려주고 싶다. 그런 희망이 있죠.

단상 위의 진아님, 1등이다!

그럼 오리엔티어링을 계속 하는 이유는 뭘까요?


제가 좋아하는게 뭔지 생각해봤는데 문제해결이더라고요. 그래서 전 게임도 엄청 좋아해요. 오리엔티어링이 그걸 충족 시켜주는 것 같아요.  


진아님의 SNS를 보면 자연을 접하는 걸 좋아하는 것 같더라고요. 오리엔티어링도 산과 공원에서 하는 활동이고요.


맞아요. 여행이라는 게 자신을 알아가는 계기가 되잖아요. 제가 처음으로 혼자 여행을 간 게 홍콩이었는데 대실망이었어요. 홍콩엔 보통 맛집, 쇼핑을 즐기러 가는데 전 다 재미없는 거에요. 내가 뭘 좋아하는지 몰랐던 거죠.


그 다음에 제주도 여행 중에 송악산을 갔는데 너무 좋은 거에요. 그 둘레길 걷고 바다 보고 산 보고 이런 게 저에게 엄청난 리프레시였어요. 감탄을 주는 존재가 저에겐 자연이었어요.


연을 좋아해도 보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직접 체험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것 같은데 진아님은 후자군요.


네. 미술 작품을 봐도 저는 작은 것엔 감흥이 없어요. 그래서 좋아하는 작가가 아니쉬 카푸어(Anish Kapoor)에요. 예전에 리움에서 전시회 한 적이 있는데 한 벽면을 전부 이용하는 그런 작품들이었어요. 내가 느껴보지 못한 것, 거대한 것에 압도되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그런 경험을 하고 나면 그게 자신에게 영향을 주나요?


저는 재미를 위해 사는 사람이라 그런 감흥을 주는 경험을 계속 찾아다니는 거 아닐까요?


그럼 오리엔티어링은 어떤 영향을 주었어요?


질문지 중에 '10년 뒤에 내가 뭘하고 있을까'라는 질문이 있었는데 전 사실 미래를 별로 생각 안하고 살았었어요. 20대 때는 더 우울했고 자신감도 없었고. 그때 만약 10년 뒤를 생각해보라고 했으면 그려지지 않는다고 했을 거에요. 미래에도 하던 일을 계속 하고 있겠지만 그게 나에게 더 좋을 거라는 생각을 그때는 못 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10년 후면 내가 지도 그리기를 배워서 서브잡으로도 하고, 나이가 들면서 체력이 좀 줄어들 수도 있지만 그래도 실력을 더 갈고 닦아서 더 나아져 있을 거라는 그런 미래를 그려볼 수 있어요.


10년 후를 상상하면 오리엔티어링 하는 내가 먼저 그려지는 거군요? 신기해요.


네. 딴 건 비슷할 것 같은데 오리엔티어링에 있어서는 좀더 나은 내가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에요.

나이 들면 국가대표는 더 어려워질 수 있지만 해외대회에서 순위권에 입상할 수는 있겠죠. 그건 당연히 할 수 있고 할 겁니다.


내년에 스웨덴 웁살라에서 국제 대회가 있다고 주변에서 가자고 하더라고요. 거기에선 순위권에 못 들겠지만 아시아권에서는 들 수 있지 않을까요?



진아님의 인터뷰는 다음으로 이어집니다.

https://brunch.co.kr/@piuda/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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