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상보다 현실은.. what / how / why 3가지는 온전할까?
오늘도 공유 오피스에서 글을 남기네요. 어젯밤, 오늘 공유 오피스에 출근할까? 집에서 재택할까? 고민했었는데요. 공유 오피스에서 '이런' 생각으로 옮겼어요. 그런데 하루종일 그 생각이 떠나지 않아서 글로 남깁니다.
살면서 한번쯤, 무엇을 할지 어떻게 할지 왜 할지. what, how, why 3가지. 무엇이 먼저일까요?
예전에는 3가지를 어떻게 순서를 세우느냐를 두는지에 중점을 뒀었는데요, 최근에는 줄조차 세우지 않아요.
왜냐하면 사실 나에게는 모든 선택권이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how 어떻게 할지가 대부분인 것 같아요.
what 무엇을 할지를 고민하니, 생각보다 저에게는 선택권이 많지 않더라고요. 물론 마이웨이로 나아갈 수 있겠지만 그러면 외톨이가 될 가능성이 있고. 그렇다고 모든 것을 다른 사람에게 맞추고 나면, 단맛은 안 땡기고 바디감이 풍부한 깊은 맛이 당기더라고요. 알지만 알면서도 what 무엇을 타협할 수 있는 권한은 사실 많지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니 what 무엇을 할지는 자세히 보면 어느 정도는 정해져 있는 것 같아요. 큼직 큼직한 갈래는 결정할 수 있겠지만, 결국 현미경 들고 들여다 보면 생각보다 선택폭이 좁다는 걸 알죠.
why 왜 할지는 반반이에요. 그런데 why 왜 할지는 남이 정해주는 경우도 있고. 제가 직접 바로 잡아야 하는 경우도 있어요. 대체로 남이 정해주는 경우는 앞 단, 제가 직접 손 대기 시작하는 경우는 후 단. 왜냐하면 남에게 수요가 있는 것이 있다면 보통 왜(why) 이유가 이미 있어요. 그래서 그것을 시작하든 아니든, 스스로 동기부여는 혼자서 하게 되는 거죠. 시작할 때 한 번. 포기하지 않고 중간에 한 번. 끝나고 나서 한 번. 보통 3번 빈도로 why 왜를 묻고 답하지만. 달라지지 않는 사실은, 수요자가 가지고 있는 why 왜 할지는 늘 앞 쪽에 위치한다는 것이죠. 날밤을 새면서 자기 충족적 why 왜는 중간이나 후단에 위치하고.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경우도 많아요.
남은 것은 how 어떻게 할지인데. what 무엇을 할지, why 왜 할지보다 비교적 주체성을 갖는 것 같아요. 조금 내용이 추상적인데 앞서 말한 것처럼 what 무엇을 할지와 why 왜 할지는 거의 어느 정도 정해져 있는 경우가 많은데요. 그러면 남은 선택지는 how 어떻게 할지. 그나마 플레이어에게 그 권한이 주어지는데, 결과를 내놓으면 비교적 how 어떻게 할지는 자유로운 편이에요.
억울하다. 싶을 수도 있죠. 그런데 how 어떻게 할지. 내가 가진 것은 거의 이것뿐인 경우가 많은데. 이것들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겉에서는 티가 안 나는데요. 100000000배율로 확대해서 보면 자유권을 행사하는 소소한 재미를 관찰할 수도 있죠. 물론 what 무엇을 할지와 why 왜 할지를 결정하는 사람에게는, 그런 즐거움이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죠.
최근 내부적으로 여러 가지를 조정하면서, 그로 인해 미팅을 하면서, 알게 되는 것은 퇴사 후 프리랜서 그리고 사업자가 되었지만. 그럼에도 나와 마주보고 있는 사람 (그 분도 사업자)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how 어떻게 할지를 고민하는 게 대화의 주 내용이라는 것입니다. 이미 what 무엇을 할지와, why 왜 할지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요. 다만, 우리 두 사람에게 주어지는 자유권은 how 어떻게 할지로 좁혀집니다. 거기서 조금 더, 현명하게 조금 더 우아하게 how 어떻게든 해내는 게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우리의 몫이겠죠.
그래서 how 어떻게 할지를 안고 있는 상대에게 화를 내봤자 소용이 없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되면 후회되기도 합니다. 저 사람도 how 밖에 가지고 있지 않을 텐데 말이죠. 그래서 what 무엇을 할지와 why 왜 할지를 살피는 사람은 추상적이고 시적(?)인 사람으로 취급되는 것 같아요. 거의 대부분 how 어떻게 할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그것은 아웃 오브 리그. 그것은 이너 게임일 뿐. 그리고 말하고 싶죠. 'how' 어떻게 할지에 대해서 떠들어 봅시다!
오늘 저녁은 비싼 물가에 호화롭게 돈까스 정식을 사먹었더랬죠. 시작하신지 얼마 되어 보이지 않는 아르바이트 직원 분과 주방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사장님이 운영하는 가게였어요. 제 것 주문하고 기다리는 데, 앞 주문에서 실수가 있었나 봅니다. 사장님께서 차근차근 다시 알려주는 모습이 인상 깊었어요. 실수가 실수였다라고 알아차렸을 때 아르바이트 직원 분은 어떠셨을까요? what 무엇을 할지와 why 왜 할지는 잘 떠오르지 않고, how 어떻게 할지에 급급하셨을 것입니다. 반대로 사장님은 what, why, how 경험이 두루두루 있으셔서 차분히 알려주실 수 있었을 테고요. 물론 모든 사장님이 그런 건 아니지만 말이죠. ^^
what 무엇을 할지, why 왜 할지. 그게 사치스러워 보였던 적도 한 두번 있어요. 이름만 멋들어진, 사업자 통장에서 돈이 나갈 일이 있으면 what 무엇을 할지, why 왜 할지를 돈 이유로 고민했던 적도 있어서요. 왜, 그렇게 고민했었는지 몰라요. 돈이라는 것은 흘러 간다고 생각하게 된 것도 이 때였을까요. 멋드러진 사장님, 우리나라의 기둥 자영업 사장님들처럼 힘들지만 억세게 살아보자고 했던 때가 있었는데, 실제로 감정 없는 돈이 오가는 사이에서 불필요한 감정 소비가 일어나고. 그런 사장이 되진 말아야지. 하면서도 그러지 못 하는 경우를 발견하면 what 무엇을 할지, why 왜 할지는. 다시 말해 생존과 조금의 활력을 제외하고는. 그 나머지들은 사치품에 가깝다고 여겨질 때가 있었거든요. 참, what & why 사치스럽더라고요.
염세적인 태도로 하루를 시작하더라도 서랍장에서 what & why 한번씩 꺼내서 어루만지고. 특히, 회사 다닐 때는 생각지도 않았던 나만의 사명을 찾아 나섰던 적도 있어요. 그런다고 오늘이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도 how 어떻게 할지만을 생각하기에는 너무 머리가 깨어버린 탓일까요? how 어떻게 할지에 집중하면 어느새 what 무엇을 할지, why 왜 할지가 보입니다. 이미 그것들이 정해져 있다는 걸 알면서도.
어떻게 하면, how 어떻게 할지에 인간미를 넣을 수 있을까요? 사전 예방해서 보들보들한 애기 살결처럼 살가워지면 좋겠지만 이런 생각은 사후에 많이 나타납니다. 약간의 후회죠. 좋지도 않고 싫지도 않은. 이조차도 누구 하나 결정해주는 사람이라곤 없으니. 이런 자잘한 감정놀이 역시 나 스스로 마무리지을 줄 알아야 합니다.
10대의 저라면 이불킥 100만 번은 하고, 다음 날에도 여파가 있어서, 얼굴도 못 들고 다녔을 텐데 말이죠. 지금은 다음은, 다음에는, 다음 번에. 다음을 생각합니다. how 어떻게 할지만 생각해도 바빠서 일까요? 드라마 한편 찍고 싶지만, '나'라는 소규모 방송국에서도 워낙 예산을 많이 잡아 먹는지라. 버라이어티 예능 & 다큐로 마무리 지으려는 것 같습니다.
이 자리가, how 어떻게 할지를 생각해 내야 하는 자리 임을.
이 선택이, how 어떻게 할지를 놓치지 않고 책임 져야 함을.
이 사람이, how 어떻게 할지를 새롭게 기획 제안 해야 함을.
how. 너는 영문법 책에서나 보던 단어가 왜 내 인생에 나타났니? 무엇을 원하는 거야? 공짜는 없을 텐데..
잘 좀 지내보자. how 어떻게 할지. 개미왕국에서 자유를 꿈꾸며.. 나는 작지만 크기도 하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