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난감 블록을 쌓는 두 아이가 있었다. 작고 서툰 손으로 한 아이는 바닥을 쌓았고, 다른 아이는 바닥을 쌓을 블록들을 하나씩 건네주었다. 그리고 나는, 근처의 의자에서 조마조마하고 있었다. 남자아이가 만든 바닥이 제법 커다랬으니까. 지붕을 쌓기도 전에 놀이 시간이 끝나버릴 텐데. 기운만 빠지고 돌아서진 않을까.
더욱이 둘의 건축은 내내 순탄하지도 않았다. 남자아이는 초록과 파랑으로 벽을 쌓고 싶었고, 여자아이는 흰 색과 노란 색으로 성벽을 만들고 싶었다. 둘은 서로가 쌓은 블록을 하나씩 빼거나 다른 곳으로 옮기기도 하며 서로의 주장을 펼쳐나갔다. 반듯한 벽은 착실히 올라갔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점점 이도저도 아니게 되어가는 색이 되어갔다. 나는 점점 더 조마조마해졌다. 이러다 한 명은 잔뜩 토라지거나 짜증을 낼 것만 같은데.
아이들의 놀이를 더욱 유심히 보게 된 것은 그때였다. 윗옷 자락을 보따리 삼아 담아오던 여자아이의 블록들이, 점점 초록과 파랑으로 변하고 있었다. 문득 초록이 마음에 들게 된 걸까. 희고 노란 블록이 다 떨어진 걸까.
여자아이가 파란 블록을 열심히 쌓는 동안 남자아이가 블록을 담아 돌아왔다. 역시 옷자락에, 이번에는 희고 노란 블럭을 담아서.
그 소란하고 정신없는 놀이 시간의 말미에서, 나는 얼핏 사랑을 본 것 같다고 생각했다. 전혀 다른, 어쩌면 아이 같은 두 사람이 만나 블록 하나씩 성을 쌓아가는.
어른이 된 후의 사랑은 대부분 아프고 공허했다. 이별을 맞으면 무너진 나의 잔해들을 줍기 바빴고, 동시에 내가 무너뜨린 누군가를 생각하며 절망에 빠지기도 했다. 내가 가진 사랑의 모양은 서로를 무너뜨리는 것이었으니까. 오래 무너지기 위해 더 많은 것을 쌓으려 했고, 그렇게 조금 더 이어지는 사랑을 보며 짓던 웃음은 진위를 알 수 없었다. 그것은 분명 행복이었지만, 멀리서 돌아보아도 확신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함께 벽을 쌓던 두 아이의 모습은 어땠나. 서로가 원하는 색을 주장하다가, 그래서 알게 모르게 조금씩 다투기도 하다가, 어느 순간 뭉근히 섞인 서로의 색을 이해하고 어느새 물들어가는 일. 아무리 커다래 보이더라도 겁먹지 않고, 함께 천천히 성을 쌓아가는 일. 서로를 잡고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바닥부터 함께 천천히 일으키는 거라고, 한번씩 힐끔거리는 아이들의 시선은 마치 한심하다는 듯 나를 가르치고 있었다.
물론 성은 놀이 시간이 끝나도록 완성되지 않았지만, 두 아이의 눈에는 재미 이상의 무언가가 가득 들어있었다. “내일 나머지 만들자!” 뿌듯하게 웃으며 바라보는 아이들의 시선 끝에는 미완성의 벽이 있었다. 이 둘은 분명 이 성을 완성하고야 말겠지. 초록과 파랑, 노랑과 흰 색으로. 자그맣게 솟은 벽이 마치 노란 볕을 받는, 어느 고성의 설경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