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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주안 Aug 15. 2023

그 애는 가끔

장난 같은 인사 이야기

1.


 그 애는 가끔 장난처럼 내 발을 밟았었다. 실수라고 포장하기에도 웃길, 거의 내 발을 밟고 올라서는 정도로. 나는 그 장난이란 것을 시작하기도 전부터 씨익 웃고 있는 그 얼굴을 좋아했었던 것 같다.

 가만히 서 있는 내 앞에 다가와서 신발 한 쪽을 벗고, 내 표정을 관찰하듯 얼굴을 마주 보며 체중을 지그시 누르는 그 장난. 그 애는 내가 아파하거나 힘들어하는, 하다못해 짜증을 내는 모습이라도 보고 싶었던 것 같았는데, 매번 아무 반응도 없는 내 모습에 그 애는 안 아프냐, 안 무겁냐 같은 이야기를 하며 뾰로통해지곤 했었다.          


2.


 언제부턴가는 그 장난이 인사 같은 게 되어버렸다. 약속 장소에 내가 먼저 나온 날이면 그 애는 폴짝 뛰어와 내 앞에 섰고, 그 애가 먼저 나온 날이면 어느새 앞으로 다가가 모른 척 발을 내미는 나도 그 즈음에는 볼 수 있었다. 가끔은 넘어지지 말라고 팔을 잡아주는 날도 있었고, 또 가끔은 비가 오니까 신발 벗지 마, 라며 무심한 척 말하는 날도 있었다. 그 애는 거의 모든 순간에 그렇게도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렇게 가까이에서, 내 얼굴을 아주 가까이에서 관찰하듯이. 그렇게 내 발에 가해지는 아주 연하고 가벼운 체중은 내 일상의 조금은 소중한 일부가 되고 있었다.     


3.


 내가 거의 모든 순간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딱 한번, 그 애가 그 장난을 하며 눈물을 보였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자세히 묻지도 듣지도 않았지만, 어떤 인간관계가 그 애를 힘들게 했었다는 것 같다. 그 애는 평소와 다른 웃음으로 발을 밟았었고, 나는 그 발끝에 왠지 슬픔이 느껴졌고, 그게 처음으로 무거웠다. 처음이었다. 나보다 한참 작은 그 애의 얼굴을 내려다 본 게. 그 애가 내 발을 밟으며 내 얼굴을 보지 않는 것도, 눈물을 보인 것도.

 내 셔츠를 꼭 잡고서, 내 발을 밟은 채로. 그 애는 오랫동안 훌쩍였다. 내게 꼭 붙어 흘러나오는 울음을 나는 어쩔 줄 몰라서,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으려다가 그냥 그 애를 꼭 안았다. 그 때는 그래도 괜찮을 것 같아서. 그 애가 흠칫 놀라면 그냥, 셔츠로 눈물을 닦을 생각이었다고 해야지. 그런 쓸데없는 생각도 하면서.     


4.


 그 애는 조금 놀란 눈치였지만, 이내 자연스럽게 내 품으로 파고들었다. 아니, 스며들었다는 표현이 맞겠다. 셔츠 너머의 온기가 조금씩, 그 애가 입은 옷의 질감과 훌쩍임의 작은 진동이 아주 조금씩. 괜찮다는 말을 하려다가, 그 말이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을 것만 같아서 그 애를 안고 머리만 한참 쓰다듬고 있었다. 그 애의 슬픔도 조금은 스며들어 내게로 떠나왔으면 했는데, 마음처럼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고. 그렇게 우리는 한참을 껴안고 있었다. 한쪽 신발을 벗어 한쪽 발을 밟고 있는 그 웃긴 모습으로, 비가 막 그친 그 여름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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