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의 맹세
『오얏나무 꽃이 질 무렵』
제2화: 어둠 속의 맹세
밤이 깊어간다. 부산항의 등불이 바닷바람에 흔들리고, 골목 어귀마다 술에 취한 일본 상인들이 비틀거린다. 그러나 항구의 소란스러움과 달리, 한적한 창고 안은 숨죽인 긴장으로 가득 차 있다.
“오늘 밤, 우리의 운명이 바뀔 것이오.”
낡은 나무 상자 위, 한 남자가 서 있다. 눈빛이 날카롭고, 말 한마디에 창고 안을 메운 사람들이 숨을 죽인다. 그의 이름은 장혁. 개항 후 몰락한 양반 가문의 후손이었지만, 이제는 이름 없는 의병의 대장이었다.
그의 앞에는 다양한 얼굴들이 있었다. 거친 손을 가진 농부, 갓을 쓴 늙은 서생, 그리고 낡은 저고리를 걸친 어린 소년까지. 이들은 모두 조국을 위해 싸울 결심을 한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더 이상 이름 없는 자들이 아니다. 우리가 어둠 속에서 맹세한 이 순간, 역사는 우리를 기억할 것이오.”
그의 말에 사람들의 눈빛이 달라진다. 단순한 농부가 아니라, 어부가 아니라, 포목점 주인이 아니라, 이제 그들은 의병이었다. 일본의 군화 아래 신음하는 이 땅을 지키기 위한 맹세를 한 존재들.
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모두가 일순간 숨을 멈춘다.
“암호를 대라.”
창밖에서 낮고 조용한 목소리가 들린다. 장혁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오얏꽃이 지고 있도다.”
순간 문이 조심스럽게 열리고, 검은 복장을 한 남자가 들어온다. 그는 헐떡이며 외쳤다.
“일본 순사들이 이 근처를 수색 중이라오! 우리가 여기 있는 걸 알면 끝장이오.”
순간 창고 안의 모든 사람이 무기를 움켜쥔다. 어둠 속에서 싸우기로 맹세한 자들, 이제 그들의 밤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장혁은 칼을 뽑아들며 나지막이 말했다.
“오늘 밤, 조국이 우리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