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작의 창고
처음부터 이렇게 오래 머물 생각은 없었다. 베트남, 그중에서도 호치민에서 8개월이나 살게 될 줄은 평생 단 한 번도 상상한 적이 없었다. 여행지로 스쳐 지나가기는 해도, 내 삶의 한 부분이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2023년 10월 13일, 호치민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고, 그렇게 이곳에서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호치민 공항에 도착해 시내로 들어가는 길, 창밖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오토바이 물결을 보며 문득 ‘엔트로피 법칙’이 떠올랐다. 무질서의 극치. 신호도 없고, 서로 양보도 없을 것 같은데 신기하게도 그 안에서 질서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혼돈 속에서도 그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나는 그걸 보며 생각했다. 이 도시에서 내가 버틸 수 있을까?
내가 보낸 호치민에서의 시간은 통계학적으로는 ‘이상치’였고, 인문학적으로는 그야말로 ‘이방인’이었다. 나는 관광객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여기서 삶의 터전을 잡은 사람도 아니었다. 떠나기 전에도, 머무는 동안에도, 그리고 떠난 후에도 나는 그곳에서 철저한 ‘이방인’으로 남아 있었다.
그렇다고 아주 특별한 날들이 이어진 것도 아니었다. 대부분의 시간은 혼자였다. 하루 일과는 단순했다. 아침에 10km 러닝을 하고, 1시간 동안 사이클을 탔다. 그 후 수영을 하고, 웨이트 트레이닝을 한 뒤 식사를 마치면 하루가 끝났다. 단순하지만 규칙적인 생활이었고, 그게 그곳에서의 나를 지탱해 주었다.
그 와중에 같이 운동을 하면서 알게 된 사람들이 있었다. 덕분에 관광객들이 가는 곳과, 이곳에서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찾는 곳을 모두 경험할 수 있었다. 대부분은 좋은 경험이었다. 하지만 관광객이 많은 곳에서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호치민 관광객 거리에는 한국에서 한 번도 마주친 적 없는 이들이 넘쳐났다. ‘쟁이들 전성시대.’
그곳에는 정말 별의별 ‘쟁이’들이 다 있었다.
• 약쟁이
• 피싱쟁이
• 리딩방쟁이
• 온갖 사기쟁이
그들은 외국에서 누구보다 당당했다. 순간, 대한민국이 더 이상 속인주의(屬人主義)를 따르지 않는 나라가 된 것처럼 보였다.
거리를 지나다가 몇 번은 그들과 대화를 나눴다. 한참 이야기를 하다 보면, 그 사람의 삶과 가치관이 어렴풋이 보이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상했다. 하나같이 같은 대답을 반복했다. 마치 매크로를 돌리는 것처럼. 누군가가 써준 대본을 읽는 것처럼.
나이는 대부분 20대 초중반에서 많아야 20대 후반. 내가 “어떤 일을 하세요? “라고 물으면,
대답은 대부분 비슷했다.
“삼촌이 하는 회사가 있는데, 호치민 지사장으로 나왔어요.”
“아, 고모부가 하는 사업이 있어서 여기 지사장이에요.”
처음엔 내가 사람을 보는 눈이 없나 싶었다. 저 나이에, 저 지적인 수준에, 저 품격에? 호치민 지사장? 말이 안 되는데.
그래서 구체적으로 물어봤다. “어떤 산업이세요?”
그럼 10명 중 9명이 같은 대답을 했다.
“필러랑 보톡스 수출해요.”
필러와 보톡스가 불법적인 일을 하기에 적합한 무역아이템인지 나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뭔가 이상하다는 직감이 들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사라졌다.
사람들을 통해 들어보면 강제 추방당했다고 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14/0005304201?sid=102
https://n.news.naver.com/article/448/0000460015?sid=102
https://n.news.naver.com/article/009/0005344257?sid=102
베트남 공안은 생각보다 능력이 뛰어났다. 대한민국경찰도 뛰어나지만, 나는 베트남 공안이 이렇게까지 치밀할 줄 몰랐다.
그들은 외국인 명의로 등록된 아파트나 오피스텔 중에서 전력 사용량이 유독 높은 곳을 찾아냈다.
왜? 그곳에서 하루 종일 컴퓨터와 에어컨을 틀어놓고 일을 하기 때문이다.
평균보다 월등히 높은 전력 사용량이 감지되면, 불시에 단속을 나갔다.
그렇게 ‘쟁이’들은 한순간에 잡혀 강제 추방되었다.
최근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에서는 한국인들이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속아 신분증과 여권을 넘겼다가 감금, 폭행, 협박, 고문을 당하는 일이 많아졌다. 뉴스에도 여러 번 나왔고, 다양한 프로그램에서도 다뤄졌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피해자들은 동시에 가해자이기도 하다. 그들은 쉽게 돈을 벌기 위해 본인의 신분을 판 것이고, 그 선택의 결과로 피해를 본 것이다.
결국, 본인의 행위가 선량한 누군가에게는 피눈물 나는 피해로 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을까?
그렇다면 그것 또한 ‘무지(無知)의 소치’다. 그리고 무지는 면죄부가 될 수 없다.
2024년 5월 29일, 나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6월 4일, 다시 런던으로 떠났다.
호치민에서 보낸 8개월은 나에게 많은 것을 남겼다.
그 도시는 혼돈 속에서도 질서를 이루고 있었고, 나는 그 질서를 이해하려 했지만 끝내 이방인으로 남았다.
그러나 확실한 건, 나는 다시는 그렇게 오래 호치민에 머무르지 않을 거라는 것. 그리고 또 하나,
“쉬운 돈은 없다.” 그 사실을, 나는 너무도 많은 사례를 통해 직접 보고 겪었다.
그리고 여전히 궁금하다.
8개월 동안 나는 그곳에서 무엇을 배웠을까?
나는 이 도시를 이해한 걸까?
아니면,
이해하려 했다는 사실 자체가 착각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