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거의모든것의리뷰 Jul 29. 2024

소나기에서 장마

2-1


"그.., 집에 어떻게 가?"


"나 지하철!"


"그러면 역까지 같이 가면 되겠다"


"좋아 고마워!"



비가 여전히 우산을 두드리고 있어 주변의 소리들은 자취를 감췄지만 그 아이의 재잘거리는 말은 하나도 빠짐없이 귓가에 들어왔다. 



"우리 수업 너무 재미없지 않니?"



마지막에 같이 들었던 교수님의 강의를 비판하는 것에서 시작된 이야기에 - 강의 내용을 비판하기 보다 강의의 재미없음에 관한 논의가 대부분이었다 - 맞장구 치면서 시작된 이야기는 비단 그 수업뿐만 아니라 다른 수업들에게까지도 퍼져나가며 서로가 어떤 수업을 듣는지, 어떤 교수님인지 흔한 대학생들의 학기 초 대화로 이어졌다. 대부분이 그렇게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지만 진흙 속에 있는 진주 같은 수업 들을 발굴해나가고, 주변의 친구들로부터 소문으로만 듣고 있던 정보들을 주고받으며 매우, 아쉽게도 지하철역까지 순식간에 도착했다. 



분명히 지하철역까지 거리가 꽤 있는데 왜 오늘따라 빨리 도착한 건지 알 수가 없다. 가끔 재미있을 때만 시간이 가속화되는 이 현상은 분명히 일종의 버그라고 생각되는데 신은 이걸 언제쯤 고치려는지, 업데이트 좀 빨리해줬으면 좋겠다. 



반대편으로 가는 지하철을 아쉬워하며, 운이 좋게 한 정거장 만에 자리가 난 4-2 끝자리, 오늘 하루가 얼마나 운이 좋은 하루였던 건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이 학교에 발을 들어선지, 그 아이가 빛나기 시작한 지 약 한 달의 시간 동안 제대로 이야기해 본 것은 처음이었다. 마침 비가 내린 것도, 우산을 가지고 오지 않은 것도 마지막에 같은 수업을 들었던 것도 오랜 시간 동안 기다리긴 했지만 기다림에 따라 항상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을 수 있었던 것도 아니었기에 갑작스러운 비를 내려준 하늘에 약간의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그나저나, 가까이서 말을 해본 게 처음이었는데, 거의 첫 만남에 그 아이는 어쩌면 그렇게 할 말도 많았는지, 덕분에 비지 않는 오디오로 무사히 지하철역까지 왔지만, E 라서 그런건가? 다음에는 MBTI 도 한번 물어봐야겠다. 아 번호도 못 물어봤는데, 다음에 또 마주할 기회가 있을까... 기쁨 뒤에 찾아오는 후회와 아쉬움이 남아있었지만 그나저나  빛나는 아이는 빛나는 이유가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 소나기에서 장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