뼛속까지 봉틀러이고 싶은 사람
돌아보면 늘 재봉틀과 함께였다. 좀 더 정직하게 말하면 재봉틀과 함께하고 싶었다. 때로는 육아에 밀리고 워킹맘으로 일하느라 잠시 잠깐 손을 놓은 적은 있지만 마음속에서 재봉틀을 놓은 적은 없었다.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면서 일상 속에서도 특별한 순간에도 재봉틀과 함께 하며 더 행복했으며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둘째가 다가오는 주일에 첫 영성체 예식을 하게 된다. (첫 영성체란, 세례를 받은 뒤 처음으로 하는 영성체. 또는 그 의식을 말하며 영성체란, 신자 공동체가 미사 때 축성된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는 일을 말한다.) 첫째 때는 코로나와 함께 얼렁뚱땅 첫 영성체를 지나왔기에 둘째가 준비하는 첫 영성체가 조금 더 남다른 각오로 임했다. 아무튼 6개월간의 교리와 과정을 마치고 드디어 예식! 중요한 날에 엄마 표 옷이 빠질 수는 없지. 그래서 상하의 세트로 흰색 셔츠와 검정 바지를 만들기 시작했다. 여자 친구들은 흰색 원피스도 되지만 딸의 취향은 바지라는 확고한 의견에 셔츠와 바지로 결정이 되었다. 사이즈도 다행히 잘 맞고 이제 남은 건 잘 입고 예식까지 잘 마치는 것. 남들은 모르겠지만 나만 아는 뿌듯함과 정성을 더해본다.
아이들의 출산준비부터 돌 준비, 그리고 자주는 아니지만 일상적으로 입는 옷이나 소품도 시간이 허락한다면 내 손을 거쳐서 준비하는 것이 좋았고 여전히 좋다. 주변 사람들은 ‘예쁘다, 멋지다’라는 말 뒤에 “그런데 굳이 왜 사서 고생을?”이라는 반응도 적지 않다. 요즘은 너무 저렴하면서도 질 좋은 제품들이 많은 건 사실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을 놓지 못하는 건 왜일까? 내가 좋아하는 걸 하면서, ‘엄마 표’라는 정성도 더할 수 있고, 일상이든 행사든 특별한 의미를 좀 더 부여할 수 있어서 인 것 같다. 아이들은 태어나면서 일상적으로 봐오던 재봉틀 돌리는 엄마의 모습이긴 하지만 아직까지는 만들어 준 옷과 가방 같은 것을 좋아한다. 유아 때는 철저히 엄마 만족이었다면 현재는 아이들도 만족해하니 더 기분이 좋다. 친구들에게 자랑을 하기도 하면서 본인들도 뿌듯함을 느끼는 모양이다. 좀 더 크면 이제는 브랜드 옷을 사 달라고 할 것 같아 좋아할 때라도 좀 더 만들어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뼛 속까지 봉틀러이고 싶은 나는 과거에도 현재도 그리고 미래에도 모든 순간을 재봉틀과 함께 하고 싶다. 기쁨도 슬픔도 괴로움도 행복함도 재봉틀을 돌리며 녹여내고 풀어내고 느끼고 싶다. 남들에겐 그저 소소한 취미일 수도 있는 일이지만 내게는 재봉틀이 곧 나고, 내가 재봉틀이다. 재봉틀을 밟으며 천천히 꿈꾸는 삶의 스텝도 여전히 밟아가며 봉틀러라서, 봉틀러기에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