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봉틀로 꿈을 이룰 수 있을까요?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병이 있다. 이름 하여 ‘공방병’, 재봉틀 공방 하나 차려서 나만의 공간을 가지고 일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불쑥 올라오는 때를 일컬어 ‘공방병’이라 내 멋대로 이름을 붙여주었다. 며칠 전 혹독하게 병을 치르고 다시 현실로 복귀한 건 안비밀.
재봉틀을 취미로 하다가, 현재는 어쩌다 보니 문화센터 강사로 일을 하고 있다. 그 또한 무척이나 감사한 일이다. 아니지, 처음에는 정말 너무나 기뻐하며 꿈을 향해 간다고 들떠있었다. 재봉틀이나 바느질과는 무관한 전공으로 졸업을 하고 일을 하다가 전향하려고 마음먹은 지 1년 만에 얻은 자리였으니 말이다. 내 나이 딱 마흔, 40에 전환점을 맞이하는 거라며 큰 의미를 두며 좋아했던 작년, 서른아홉의 나.
현재는 또 다른 내년을 준비하고 있다. 많은 생각과 고민 속에서 내린 결론이지만 여전히 잘 한 결정인지 맞는 결정인지 솔직히 가 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문화센터 강사로 일한다는 게 내 생각과는 다른 부분이 많았다. 너무 만만하게 생각했었나? 그래도 남은 정리시간까지 합하면 대략 1년의 경력을 쌓고 나오게 된다. 그 속에서 배운 것이 훨씬 많기에 사실 정리하겠다는 쉽지 않은 이야기를 원장님께 드리면서도 죄송한 마음이 컸다. 다양한 수강생들과 그분들의 각기 다른 취향과 요구를 수용하고 절충하는 과정 속에서 내가 더 많이 성장했기에, 그 성장을 이어가지 못한 다는 것은 못내 아쉽지만 그 보다 더 아쉬운 건 역시나 매우 현실적 이게도 ‘돈’이었다. 시작하기 전 원장님도, 나를 지도해 주신 국비훈련 선생님도 ‘돈’은 안 된다고 강조하셨지만 그게 이 정도 일 줄이야! 혹독하게 직접 겪고 나니 비로소 보이는 현실. 내가 지금 당장 ‘꿈’을 이루겠다고 이러고 있으면 안 되는구나. 나는 나만 생각하면 안 되는 주부이고 엄마이니까. 그래서 절충안을 생각해냈고 결국 문화센터일은 정리하는 쪽으로 결론이 난 것이다.
그런데 그 사이를 비집고 불쑥 또 고개를 든 ‘공방병’. 생각했던 절충안은 온대 간대 없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갑자기 나타난 ‘공방병’. 문화센터도 힘든 마당에 무슨 공방을 차리느냐며 스스로에게 아무리 타일러도 왜 당장 할 수 없냐며 나는 왜 이런 현실 속에 갇혀 있느냐며 갑자기 저기 지하 밑 100미터까지 쑥 땅굴을 파고들어앉아버렸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주르륵 눈물이 났다. 나는 언제쯤 내가 원하는 삶의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그런데 지금에 와서 매우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나는 너무 빠른 결과만을 원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하고 싶다고 해서 무조건 잘 될 거라는 밑도 끝도 없는 긍정적 마인드가 오히려 독이 되었던 것이다. 내가 원하는 걸 이루려면 적어도 몇 년은 걸려야 한다. 그 사이에 숱한 고난과 역경이 지나야 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서사(물론 이를 거스르는 신의 영역에 계신 분들은 논외로 두기로 하자)를 거르고 나는 순식간에 잘 될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
순식간에 이루어지는 아무것도 없다. 나는 물론 여전히 잘 될 거라고, 무엇이든 해 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조금 더 유연하고 느슨한 사고를 추가해보기로 했다. 처음에는 작고 작은 파우치 하나를 팔더라도 몇 년 뒤에는 더 성장할 수 있을 거라고, 내가 원하는 공방, 아니 작은 작업실이라도 가질 수 있을 거라고 믿으면서 다시 새롭게 짠 나만의 판으로 2023년을 맞이해보려 한다. 그러면서도 인터넷 부동산 사이트에서 상가 매물을 찾고 거리를 걸으며 ‘이 상가 자리 좋네, 여기는 얼마일까’ 생각하는 내 모습이 참으로 모순적이지만, 이 또한 나중을 위한 준비과정이며 생각의 확장이라고 또 긍정 회로를 돌려본다. 취미를 넘어 업이 된다는 건 결코 쉬운 과정은 아니지만 결국에는 해 내는 사람이라는 걸 꼭 증명해내고 싶기에, 그런 욕심과 욕망이 가득한 나는 이제 꿈의 나이는 한 살, 현실은 마흔의 봉틀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