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 쓰려고 했던 나의 글과 생각들이 도무지 정리가 되지 않아 다시 이 새벽 시간에 쓰고자 노트북을 열었다.
어떤 작가가 말하기를 “이 세상에 노력해도 안 되는 게 2가지가 있다.”라고 한다.
그것은 “사랑과 일찍 자기”라고 언급한다.
왜 이렇게 공감이 되는 것일까?
나는 어려서부터 아침형 인간과는 유난히도 거리가 멀었던 것 같다. 그 습관에 제동이 걸렸던 시기가 유일하게 고등학교 시절이었다. 새벽 6시 30분에 일어나 준비하고 학교를 등교해야만 했기에 반 강제적으로 평소보다는 일찍 잘 수밖에 없는 시기였다.
그래도 자율학습이 마치는 밤 11시가 되고 집으로 돌아오고 씻고 하다 보면 12시쯤에는 항상 취침했다.
그 시절을 제외하고는 항상 늦게까지 뭔가를 보거나 뭔가를 해왔다.
중학교 때는 홀로 집에서 공부하다가 우연히 라디오에 빠져들어 그 방송이 끝나는 새벽 2시에도 여운이 남아 바로 못 자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리고 아이 둘을 키우면서 나의 저녁형 인간의 진가는 발휘된다.
이른바 육아 퇴근이라고 불리는 ‘육퇴’를 하면 나만의 자유시간이 생긴다. 낮에 못 봤던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을 몰아서 보기도 하고,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계획을 세웠을 때는 낮시간보다는 아이들을 재우고 공부할 수 있는 밤부터 새벽 시간이 더 효율적이었다. 아이들 등교나 등원을 시킬 때는 비몽사몽으로 깨어나 간단히 아침을 챙겨주고, 등원을 시킨 후 잠시 눈을 붙이는 경우가 많다.
나는 왜 새벽 시간을 이토록 사랑하는 것일까?
나 자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볼 때, 나의 이런 습관은 가족들이 잠자는 새벽시간은 고요해서 좋고, 나만의 자유를 만끽하고 싶어서인 듯하다.
그러면 나는 왜 고요함을 선호하는 것일까? 낮에도 자유로운 시간이 틈틈이 있지만 왜 새벽 시간의 자유를 더 갈망하는 것일까?
나는 어려서부터 내향형의 사람이었다. 점점 커갈수록 외향형 인양 적극적으로 대외활동을 하기도 했지만, 사람의 성격은 쉽게 변하지 않더라. 사람들과 만나고 집으로 돌아와도 결국 홀로 사색하고 생각하는 시간을 즐긴다.
‘내가 오늘 실수한 말들은 없었나? 아, 나는 그 뜻으로 얘기한 건 아닌데 혹시 상대방이 좀 언짢아하진 않았을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싸인다.
‘감정을 머릿속으로 먼저 정리해 보자.’ 끊임없이 돌아가는 나의 두뇌가 피곤하기도 하지만, 나의 감정에 대해서 더 솔직하고자 하는 내 마음이 반영돼 있다.
새벽 시간의 자유는 나를 센티하게도 만들고, 오늘 하루의 삶을 돌아보게도 만든다.
‘오늘 하루는 참 뿌듯했어.’ ‘오늘은 그저 그런 평범한 하루였네.'
'오늘은 그 사람의 말 한마디가 귀에 쏙 박히네.'’
'오늘은 슬프고 외로운 감정마저도 드네.'
‘내일은 어떤 새로운 것을 해볼까?'
새로운 것을 해보고자 하는 생각은 항상 있지만, 현실적으로 용기가 안 날 때가 많다.
‘기타를 한번 배워볼까?’ ‘서예도 배워보고 싶은데…’ 이러한 생각들은 고요한 새벽 시간에 내가 자주 결정하고 고민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다음 날 낮시간이 되면 다시 주저하게 될 때가 많다.
이러한 점을 봤을 때, 내가 생각하고 결심을 세우며 다짐하는 시간은 항상 새벽 시간이다. 마치 아침에 제일 먼저 일어나는 아침형 인간인양 혼자 파이팅이 넘친다.
나는 이러한 새벽시간에 가지는 고요하고 잔잔한 감성과 수많은 감정들이 좋다. 또한 이루지 못할 무수한 꿈들을 포함해, 내가 이루고 싶은 스스로의 다짐들을 다지는 것도 새벽시간이다.
이렇듯 새벽 시간의 고요함과 자유가 만날 때 나만의 평화가 찾아오는 것이라고나 할까.
한 번씩 아침형 인간들을 보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습관을 언제부터, 어떻게 들였을까?
나는 감히 엄두가 나지도 않는 그 길을.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는 유명한 말도 있다.
부지런한 인간이 될 것을 격려하는 명언이다.
나는 비록 저녁형 인간이지만, 나는 새벽 시간에 그만큼 부지런히 나를 가득 채우고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수많은 날들과 마주할 나의 인생.
남들에 비해 비록 아침을 조금 늦게 열지만, 새벽 시간은 나만의 활기 넘치는 생각과 굳센 다짐으로 앞으로도 나를 빛나게 채워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