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비움

비움, 그 역사적인 첫날

by 노을책갈피

나는 지금의 신랑과 7년이라는 오랜 연애 끝에 결혼을 하였고, 우리는 무려 결혼 4개월 만에 부모라는 타이틀과 함께 세 명의 가족 구성원을 이루게 되었다.

결혼 전에도 집안 살림은 대부분 우리 엄마의 몫이었고, 내가 게으른 탓이 제일 컸지만, 나는 사회생활을 한다는 이유로 집안 살림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리고 엄마 눈에는 내가 그저 아이로 보였는지 내 손에 물 묻히는 걸 싫어하셨다.

"어차피 결혼하면 매일 살림하게 될 텐데, 미리 고생할 필요는 없지."


28살이라는 다소 이른 나이에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어설프면서도 서툰 솜씨로 살림살이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물론 친정엄마의 도움을 정말 많이 받았다.

나는 한 아이의 엄마였지만, 정리와 비움이라는 개념이 1도 없었던 어른 아이와도 같았다.

친정엄마께서 육아도 도맡아주셨고, 반찬, 국은 수시로 챙겨주셨고, 손자를 보러 우리 집에 오실 때에도 그냥 집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없었다.

우리 집의 밀린 설거지와 집안 청소 및 걸레질, 분리수거, 심지어 화장실 청소까지 말끔하게 해 주고 가셨다.

친정엄마는 3교대로 일하시는 친정아빠의 끼니를 챙겨야 하는 상황이기도 했지만, 감사하게도 첫째 아이가 좀 클 때까지는 두 집 살림을 도맡아 해 주셨다.

그러다 문득 친정엄마가 우리 집에 오셔서 매번 고생하는 모습이 너무 안쓰럽기도 했지만, 짜증이 났다.

"엄마 제발 그만 좀 해. 우리 집에 오면 좀 편하게 쉬는 걸 못 봤어. 오늘은 뭘 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쉬다가 가."

그렇게 말하면 친정엄마는 대꾸도 안 하시고 묵묵히 집안일을 도와주고 가시기를 반복했다.


이후 나는 둘째 아이까지 낳으면서 2살 터울의 아이들을 키우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항상 매일의 숙제였던 정리와 비움은 마음과는 다르게 더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매일 육아의 고단함에 찌들어 기본적인 정리와 청소조차 겨우 하게 되었고, 그러면서 점점 아이들의 짐과 우리 부부의 짐은 날로 늘어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들의 옷과 우리 부부의 옷이 장롱 속에도 가득 차게 되었고, 5단 서랍장이 3개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옷가지들이 넘쳐흘러 바닥 구석구석에 옷들을 정리하며 쌓아 올리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큰 평수의 집도 아니라 옷들이 구석구석 자리를 차지하다 보니 당연히 집안이 더 좁아 보일 수밖에 없었고,

어떤 것부터 그리고 어디서부터 정리를 해나가야 할지 너무 막막하기만 했고, 그 스트레스의 화살이 남편에게도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남편이 쉬는 주말. 함께 결단을 내렸다. 더 이상 이대로 안 되겠다 싶어서 어린아이들을 친정에 잠시 맡기고,

1년 이상 안 입는 옷들, 안 쓰는 가방들을 정리하며 헌 옷수거함에 수차례 버리기를 반복했다.

그 과정에서도 '살을 좀 빼면 입을 수 있겠지' '예전에 입었을 때 예쁜 옷이었는데 그대로 둬야지' 하면서 일말의 욕심에 못 버리는 옷들도 꽤 많았다.

서툴지만 그때가 우리 부부의 역사적인 첫 비움의 날이었다.

그렇게 비움을 통해서 짐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니 한결 속이 시원해졌고, 그날의 가벼운 마음과 홀가분함은 아직도 내 기억 속에 생생하다.


그 이후에도 비우고 채우고를 수없이 반복했고, 결국은 또 항상 제자리걸음이다.

정리와 비움의 정확한 개념이 부족했던 나는 '무엇이 문제일까?'라는 물음에 해결점을 찾고 싶었다.

정리수납전문가 2급 과정의 수업을 들으며 정리와 비움의 기본 개념, 집안의 공간별로 정리하는 기술과 노하우를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집에서 정리수납 노하우를 직접 적용하여 실습을 하는 과제를 수행하기도 하였다.

평소에 '신박한 정리'와 '구해줘 홈즈'의 애청자인데, 그 프로그램 속에서 정리와 비움을 통한 효율적인 공간 활용 방법,

정리가 된 후 느껴지는 진한 감동과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는 반응을 통해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는 다짐을 수없이 해오고 있다. 나는 나만의 정리 노하우를 바탕으로 오늘도 조금씩 비움을 실천하고 있다.

역사적인 첫 비움을 통해 느꼈던 그날의 가벼운 마음과 홀가분함. 그 초심을 잃지 않도록 오늘 하루도 무단히 애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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