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비움

나는 왜 여태껏 비움을 간과하며 살아왔을까?

by 노을책갈피

전체적인 인생을 돌아봤을 때, 나는 확실히 채움보다 비움이 훨씬 어려운 사람임을 느낀다.

비움이란 물건, 인간관계, 내 안의 생각 등 모든 것이 포함된다.


첫 번째로 물건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물건을 고를 때나 구입했을 때를 생각해 보면, 내가 정말 필요한 것을 사기도 하지만, 그 외 다른 물건들에도 현혹되어 관심이 가기 마련이다.

물론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일지라도 말이다.

예를 들자면 내가 주로 구매하는 것은 옷이다.

청바지, 재킷 등 나를 한껏 멋스럽게 꾸며주는 옷을 통해 나를 과시하고 싶은 마음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청바지나 재킷 종류가 차고 넘친다. 하루씩만 바꿔 입는다고 해도 족히 2주는 새롭게 입을 수 있을 정도이다.

그렇지만 항상 입는 옷들은 한정적이고, 어찌 보면 그 당시 내가 구매했던 다양한 색깔의 청바지와 눈에 띄는 재킷 색깔이 순간 나의 눈을 자극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고, 다양한 옷을 입음으로써 새로운 나를 발견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액세서리 중 귀걸이의 경우, 한 번씩 여러 종류를 사고 싶어 진다. 새로운 예쁜 귀걸이를 하고 외출하면 내 기분은 한껏 들뜨게 된다. 그 순간의 기분을 위해서 새 귀걸이를 꼭 사야만 했을까?

그리고 계절을 타는 가을만 되면 외적인 분위기를 바꾸고 싶어 진다.

어제도 급 머리를 하러 갔었다. 새로운 나를 발견하기 위한 것일까? 무엇을 위한 것일까?

'외모만이 전부가 아닌데......' 알면서도 나는 내면보다는 외적인 것에 더 치중을 하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이처럼 물건의 채움은 나의 그릇된 소비 습관으로 차곡차곡 쌓여서 나를 새롭게 포장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두번째로 인간관계를 생각해 보자.

나는 낯을 가리는 편이라 누군가를 새롭게 알아가는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다.

그렇지만 한 사람 한 사람과의 관계를 중요시 여겨서인지 주변에 오래된 친한 지인들은 많은 편이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친하게 지내왔던 친구들과의 인연은 20년이란 시간이 흘렀고, 초등학교 때부터 친한 친구들은 나와 인연을 이은지 28년이나 된 친구들도 있다.

그래서일까? 오래된 인연들과는 신뢰를 꾸준히 쌓아와서인지 언제든 만나도 마음이 편하고 즐겁다.

그런 관계에 있어서는 과정은 비록 순탄치는 않았지만, 비움보다는 채움이 훨씬 가득했을지도 모른다.

성인이 된 후 새롭게 누군가를 알아간다는 것은, 지극히 나에게 어렵고 힘든 숙제로만 여겨졌다.

아이들의 엄마가 되면서 아이의 친구를 만들어주고자 여러 엄마들과의 관계를 시도하기도 했고, 그 과정에서 혼자 상처받기도 했었다. 그렇게 새롭게 인연을 맺은 사람들 중에는 길게 간 인연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나와는 성향이 맞지 않았을 거야' '내가 무슨 실수라도 했나?' '내가 퍼주기만 해서 만만하게 보였을까?'

그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에게 여전히 물음표로만 남아있고 정확한 해답은 찾을 수 없었다.

어쩌면 관계의 비움은 나에게는 제일 어려운 일인 것 같다.

그중에서도 인연이 오래간 엄마들은 주변에 세 명 정도일까. 예전 같았으면 3명이라는 숫자를 강박처럼 여기고 너무 적다고 여겼을 것이다. 지금은 그 세 명의 인연도 소중히 여기려고 노력 중이다.

새롭게 관계를 여는 것보다 유지하는 것이 더 힘든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내 안의 생각이다.

나는 야행성이다. 낮보다 밤이 더 고요해서 좋더라.

무언가에 집중할 수 있어서도 좋고, 새벽 감성에 여러 생각들이 떠올라서도 좋다.

그 여러 생각들을 머릿속에 나열하다 보면 항상 어떤 것을 채우는 생각들로 가득하다.

사소한 근심 걱정, 내 안의 작은 불안감도, 오늘 하루 소소하게 행복했던 일도.

그 모든 생각들을 내 머릿속에 그려가며 생각을 채워 나간다.

그래서인지 나는 실제로도 그런 상황에 대한 꿈을 자주 꾸는 편이다.

하지만 요즘 글을 쓰면서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글을 쓰는 것이 내 마음을 조금은 비워낸다는 사실을.

이제야 나는 내 안의 생각들을 매일 비우는 연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이처럼 세 가지 측면에서 채움과 비움을 생각해 봤을 때, 나는 항상 무언가를 채우기만을 위해 살아온 사람이었다.

어쩌면 여태껏 비움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안 해봤던 것 같다.

비움의 필요성도 몰랐고, 비움에 대한 방법도 몰랐다.

하지만 이제부터라도 비움의 필요성을 인지한 이상, 물건은 나만의 정리 노하우를 통해 조금씩 비워나갈 것이며,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나와 인연이 아니었던 사람들에게 연연하지 않고 과감히 비워내는 연습을 해나갈 것이다.

그리고 내 안의 생각들은 글쓰기를 통해 내 안의 감정들을 마구 쏟아내 조금씩 비워나갈 것이다.

지금이라도 알아서 다행이다. 비움의 중요성, 그리고 비워내야만 또 채울 수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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