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일으키는 내면의 자아와 손 맞잡기

괜찮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by 노을책갈피

약 12년 전, 내가 직업상담사로서 민간위탁기관에 첫 직장으로 취업했을 때의 이야기다.

나는 직업상담사로서 선임 선생님과 청년층을 대상으로 하는 뉴스타트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다.

사회 초년생이었고, 이 일에 첫 발을 내딛는 과정이어서 그 당시에 나는 신입의 자세로 열정과 패기가 가득했었다.

뭐든지 배우자는 일념으로 임했지만, 20대 중반이었던 나는 상담이라는 분야에 있어서 배움이 턱없이 모자랐기에 내담자와 만나며 매일 나의 한계에 부딪쳐야만 했고, 상담가로서의 자질이 부족함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신입이었던 내게 대표님께서 서울에서 주최하는 청년층 뉴스타트 프로젝트 연수가 있는데 회사 대표로 다녀오라는 지시를 받게 되었다.

나는 차라리 선임 선생님께서 대표로 가길 원했지만, 하늘이 주신 기회라고 생각하고 연수에 호기롭게 참여하게 되었다.

그렇게 서울행 열차에 오르면서 목적지인 연수원에 도착하였고, 전국에 수많은 지역에서 기관의 대표로 왔던 여러 상담자들과 대면하게 되었다.

약 60~70명 정도 참여하였고, 그들은 겉모습부터 매우 화려했다. 누가 봐도 연륜과 경력을 큰 무기로 자신감이 넘치는 상담 선생님들.

아무것도 몰랐던 신입인 나는 무척이나 주눅이 들 수밖에 없었다.


연수 1일 차에는 프로젝트 사업에 관한 설명회로 진행이 되었다.

다음 날이었던 연수 2일 차에는 청년층을 대상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는 전제 하에 뉴스타트 프로젝트 강의 시연이라는 미션이 주어졌다.

이론적으로는 강의 내용을 충분히 이해했지만, 내가 어떤 방식으로 강의를 이끌어나갈지 신입이었던 나는 너무나도 막막했다.

강의 경력도 없었을뿐더러, 이런 프로젝트 사업에 참여하게 된 것도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즉흥적으로 주어진 미션이라 준비할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고, 전국 각지에서 온 상담자 분들은 각자의 노하우로 강의 시연을 집중하며 준비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같은 조원인 다른 상담자에게 조언을 구할 시간도 없었고, 혼자 끙끙 앓고만 있었다.

경력이 즐비한 상담자들은 차례대로 강의시연을 수행해 나갔다. 자신의 의견을 피력함과 동시에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연수원 현장 분위기는 배움의 열기로 가득했다.


12년 전임에도 나는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나는 장면이 하나 있다.

여자 베테랑 상담자 분으로 기억하는데 특유의 조리 있는 말투로 집중력 있게 명상을 유도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흐트러짐 없이 차분한 어조로 강의 시연을 완벽히 해나갔던 그날의 그 장소, 그 장면, 그 공기는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와 정말 대단하시다. 나는 어떻게 하면 저 상담자처럼 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면서 막상 내 차례가 돌아올 때까지 아무 준비는 안 된 상태로 심장이 너무 떨려서 튀어나올 것만 같아서 미칠 노릇이었다.

내가 시연하고 싶은 강의 내용 중 단 일부만이라도 집중해서 짧게라도 발표하고 들어오자는 생각으로 사람들 앞에 나섰다.

막상 수많은 상담자와 강연자들 앞에 나서니 내 머릿속은 새하얘졌고, 자세는 완전히 얼어있어서 몸은 굳은 상태로 입도 뻥긋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게 강의 시연 미션 연수가 끝나고, 한마디도 뱉지 못한 나 자신이 너무 한심하고 미운 마음에 숙소로 돌아가서 그야말로 펑펑 울었다.

'사람들이 나를 얼마나 한심하고 바보같이 느꼈을까?'

'연수 일정도 내일 하루 더 남았는데 나는 사람들 앞에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니지?'

숙소에서 홀로 이런저런 생각들로 힘들었다.

내일 연수까지 일정이 하루가 남았기에 아무렇지 않은 척 잘 마무리하기 위해 마음을 다 잡았다.

나의 큰 실수로 인해 너무 부끄럽고 온 기운이 다 빠진 상태(소위 말해 탈탈 털림)였고, 그렇게 다음날 아침은 밝았다.

어제의 실수로 앞을 제대로 응시하지도 못한 채, 연수 장소로 들어가니 막상 연수에 참여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공기와 분위기가 연출되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마지막 수료식이 진행되었고, 힘든 2박 3일의 긴 여정은 끝이 났다.


나는 부산으로 내려와서 발표 트라우마를 이겨내기 위해 무의식적인 동기부여를 계속하고 있었고, 의식적으로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여 차근차근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후 상담심리학과에 편입하여 상담 공부를 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였고,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공공기관 취업 후 100여 명의 실업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실업급여 설명회를 준비하기 위해 날이 새도록 강의 내용을 숙지하고 나만의 대본을 준비하기도 하였다.

남들 앞에서 완벽히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발표를 하는 일은 여전히 나에게 너무나도 두려운 일이다.

12년 전의 트라우마를 완전히 극복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그 트라우마를 계기로 오히려 성장하는 발판이 되었던 것이다.


그렇다. 12년 전, 그날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만의 큰 파도만 일렁였을 뿐. 나만 기억할 뿐이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그 연수원에서 있었던 일은 내가 여태껏 성장할 수 있는 동력이었고, 삶에 큰 자극이었던 셈이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나만의 길을 묵묵하게 걸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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