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치의 일주일
잔뜩 긴장한 한 주가 지난 후에는 몸이 아팠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고, 목이 아파왔다. 어느 날은 얼굴이 퉁퉁 부어 너무 안 좋아 보인다는 얘기를 듣기도 했고, 스스로 느끼기에도 눈꺼풀이 잘 올라가지 않는 순간도 있었다. 어느 날은 저녁 일찍 쓰러지듯 잠이 들어 아침까지 자기도 했다. 아마 마감일이 있던 전 주의 긴장과 압박을 견뎌냈던 것이 몸으로 왔는지도 모르겠다.
그 와중에도 정해진 일정들을 최소한으로 해나갔던 한 주다.
산호 뜨개를 하며 깨달은 점
몸이 아프기 전, 지난달 제주에서 참여했던 프로그램의 선생님들이 서울에 올라와 산호 뜨개를 하는 프로그램을 여셨고, 거기에 참여했다. 몇 년 전 대바늘로 목도리를 떠서 친구에게 선물한 적이 있긴 하지만 나에게 뜨개질은 '잘 안 되는' 영역 중 하나다. 제주에서 산호 뜨개를 할 때도 왕초보 테이블에 앉아서 처음부터 코바늘 뜨개질을 배웠는데 잘 되지 않았다. 왕초보 테이블의 또 다른 멤버였던 외국인 친구 F는 내 결과물과 자신의 결과물을 번갈아 가리키며 'Same, Same!'이라고 외치기도 했다. 그렇게 손가락 한 마디 정도 뜨던 뜨개실과 바늘을 가지고 돌아왔는데, 3주가 지났지만 뜨개실은 가방 안에 고이 모셔두고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그래서 마침 서울에 올라와 프로그램을 하신다고 하니, 가서 떠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슬프게도 3주간 나의 뜨개질 실력은 깔끔하게 리셋되고 말았다. 제주에서 어렵게 배웠는데, 서울에서 다시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하는 상태가 된 것이다. 선생님들의 친절한 설명에도 내 손은 제멋대로 움직여서 고작 한 마디를 뜬 실이 정체불명의 모양이 되었다. 긍정적인 기운을 전하는 선생님과 다른 참여자들은 정체불명의 산호 모양이 귀엽다고 칭찬을 했지만, 배워도 따라 하지 못하는 스스로를 마주하기가 쉽지 않았다. 잘해야겠다거나, 훌륭한 결과물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애초에 없는 영역이었음에도 '잘 못하는 나'를 마주하기란 왜 쉽지 않은 걸까.
유능감의 덫에 빠지지 말라는 말
이미 버크만 디브리퍼 자격을 가지고 있고, 개인 코칭과 워크숍에서 활용하고 있지만 다른 활용법을 배우고 싶어 버크만 강의를 신청했다. 그렇게 오전부터 밤늦게까지 하루 종일 배움의 시간을 가졌다. 강사였던 코치님은 버크만 진단을 하며 '유능감의 덫'에 빠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원래 코칭은 고객과 코치가 수평적인 파트너십 관계를 형성하고, 코치는 고객이 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믿으며 질문으로 고객의 생각을 확장하거나 통찰이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이런 진단 툴을 '해석'하는 역할을 할 때, 코치가 더 많이 알고 있는 것 같은 유능감을 느끼게 되고, 그것을 조심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강의 중 짧은 상호 간의 실습시간이 있었는데 교재에 있는 대로 따라 하기가 쉽지 않았다. 어느덧 나만의 코칭 습관이 잡혀서인지, 아니면 고객에게 이게 더 필요할 것이라는 에고가 들어와서인지 모르겠다. 비우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여야 하는데 무언가 채워진 상태에서 새로운 것을 넣으려 해서일까. 코칭 자격이 없는 실습 파트너 분이 오히려 가이드를 잘 따라 하시는 것을 보았다.
코치들 중에는 배움과 성장을 좋아하고, 부지런히 새로운 것을 배우고 스스로를 발전시키는 분들이 참 많다. (그리고 새롭게 배워야 할 것도 어찌나 많은지!) 그렇게 빠르게 배우고 성장해 나가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는 것은 복이기도 하지만, 그 안에 있다 보면 때로는 나만 뒤처진 것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을 느끼게 하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물론 배움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나의 중심을 잃고 남들이 하니 좋아 보여서, 혹은 나만 안 하면 불안해서 따라가는 것은 결국 스스로를 힘들게 한다. 또한 각자가 소화할 수 있는 양이 다른데 인풋을 넣고 소화시키기도 전에 또 다른 것을 넣는다면 소화불량이 되는 지름길이다.
잘 모르는 것에 대한 두려움
해보지 않은 영역이거나 처음 마주하는 코칭 고객일 때, 더 많이 준비해야 할 것 같은 마음 안에는 불안과 두려움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하지만 막상 코칭을 하고 난 이후에 드는 생각은 더 많이 알고, 더 채워 넣는 것이 답은 아니라는 것이다. 모르는 것을 인정할 때, 상대방의 말을 더 호기심 있게 경청하고 질문할 수 있게 된다.
아마 우리는 어릴 때부터 빨리 습득하고, 좋은 퍼포먼스를 내는 것에 길들여졌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무언가를 모른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고, 그 두려움은 무언가를 더 배우는데 동력이 되기도 한다. 늘 빠르게 무언가를 하며 스스로에 대한 유능감을 느꼈을 나는 그러지 못한 상황에서는 꽤나 답답함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산호 뜨개의 무용함
다시 산호 뜨개로 돌아와 보면, 산호 뜨개는 쓸모가 없다. 뜨개질을 해서 만든 목도리도, 수세미도, 컵받침도 쓸모가 있는데 산호는 딱히 쓸모를 가지고 태어나지 않았다. 쓸모와 유능함의 세계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산호 뜨개는 낯설다. 그래서 오히려 이 낯섦과 친해져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뜨개 방법도 전혀 숙지하지 못하고 제멋대로 정체불명의 산호를 떴지만, 그다지 즐기지 못하던 나는 '역시 뜨개는 내 영역이 아니야'라고 실과 바늘을 반납하고 돌아왔다. 하지만 '잘 못하는 나'와 더 자주 만나고, 친해져야 한다는 것을 이미 어렴풋이 깨닫고 있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