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은 어려울 것 같았다. 회계, 세무, 재무, 자금 업무를 총괄하고 있어서 3개월간 나의 부재에도 대표님은 계속 불안해하셨다. 인수인계 1개월 + 출산휴가 3개월 총 4개월만 근무할 사람을 뽑기도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구에서 관할하는 여성인력지원센터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몇 개의 이력서를 받았는데 대부분 경단녀의 이력서였다.
“이 분 굉장히 절실하세요. 잘할 수 있다고 했으니까 면접 한 번만 꼭 봐주세요.”
결혼 전에 건설회사에서 대리 경력이 있고 10년간 경력 단절이었다. 그래도 면접이라도 보자 싶어서 면접 요청을 했다. 일자리가 간절한 경력 단절 여성이면 뭔가 일을 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고 싶기도 했다. 40대 초반에 아들 둘이 있는 분 이셨다. 경력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으니 한 달 동안 잘 가르치면 내가 없는 3개월은 잘 버텨주겠지 싶었다.
“아무 부담 없이 하셔도 돼요.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세무 신고 같은 건 세무사사무실 도움받아서 하시면 되고요, 혹시라도 잘못 신고된 거 있으면 나중에 제가 와서 다 바로 잡고 수정신고 하면 되니까 신고 누락만 안 하시면 돼요. 내부 보고도 혹시 잘못됐으면 나중에 제가 복귀해서 다시 보고드릴게요. 길지 않은 시간이니까 대표님도 그 정도는 감수하신다고 하셨어요. 한 달 동안 잘 가르쳐 드릴게요. 3개월만 자리 잘 지켜주세요.”
“사실 면접 보고 연락 안 오길 바랐어요. 쉰 기간이 너무 길어서 잘할 수 없을 것 같고, 실수할 것 같아서 너무 떨려요. 면접 보고 괜히 일하기로 했나 너무 후회됐는데, 차장님 나 왜 뽑았어요?”
센터에서 너무나 일이 절실한 분이라고 해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주고 싶었는데 뭔가 잘못됐구나 싶었다. 그래도 시간이 없었다. 무사히 3개월만 잘 버텨주기를 부탁드렸다. 중요한 업무들은 매뉴얼만 보고 따라 하기만 하면 작업할 수 있도록 꼼꼼하게 ‘바보매뉴얼’도 만들어 놓았다.
“나는 내가 이렇게 나이가 많은 줄도 몰랐어요. 회사 오면 다들 내 또래 거나 나보다 나이 많은 분들 많겠거니 했는데 대표님, 부대표님 말고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도 없네요. 그것도 충격적이고, 집에 있을 때는 끼니는 그냥 대충 때웠는데 매일 같은 시간에 꼬박꼬박 밥 챙겨 먹고 간식까지 먹으니까 나날이 살이 찌네요.”
무엇보다 낮잠 시간이 없는 걸 힘들어하셨다.
“애들 학교 보내고 나면 낮잠을 꼭 잤는데 낮잠을 못 자서 너무 힘드네요. 이번 기회에 확실히 알았어요. 나는 회사랑 안 맞는다는 거. 차장님 없는 동안 3개월은 잘 지키고 있을게요. 돌아오시면 다시는 회사 다닐 생각 접으려고요.”
“… ….”
출산 마지막 한 달을 남겨 놓고서는 발과 다리가 부어 올라 남편 신발을 신고 출‧퇴근을 했다. 배는 곧 터질 것 같고 몸이 너무 무거웠다. 걸어도, 앉아 있어도, 누워 있어도 힘들었다. 출산 예정일 일주일 전까지 출근을 하기로 했으나 어차피 인수인계가 끝났기 때문에 내일부터 휴가 쓰겠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매일매일이 나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하지만 어차피 휴가가 3개월로 정해져 있다면 하루라도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을 더 만들고 싶었다.
“선생님, 제가 아직 출근하고 있는데 언제까지 출근해도 괜찮을까요?”
“아기 낳기 전까지 일해도 상관없어요. 우리 와이프도 출산 이틀 전까지 출근했거든요.”
출산 전 마지막 진료에서 선생님께 여쭤봤는데 아마 진통이 올 때까지 일해도 괜찮은 것 같았다.
“팔, 다리가 다른 아이에 비해 좀 길고요, 얼굴은 좀 작은 편이네요. 조인성 같은 아들 낳으시겠어요. 축하드려요.”
길어봤자 다른 태아들보다 몇 미리 길 텐데 그게 뭐라고 또 그런 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좋았다. 내 뱃속에 조인성 같은 건강한 아이가 들어 있다니 뭘 더 바랄까. 이제 입을 열어서 제왕절개로 출산하고 싶다는 말만 하면 된다. 그전에 마지막으로 선생님께서 내진(내진이 뭔지 궁금하시다면 검색창을 이용해 주세요 ㅜㅜ)을 해주셨다.
“지금 2cm 정도 열려 있는데 신축성도 아주 좋고, 모든 게 다 좋아요. 자연분만 하는데 전혀 문제없겠네요. 5분 간격으로 진통이 오면 내원하시면 됩니다. 그럼 출산하실 때 뵐게요.”
결국 제왕절개를 하고 싶다는 말은 마지막 진료를 받는 날까지도 하지 못했다. 자연분만이 가능한 컨디션인데 제왕절개를 하겠다고 말하는 게 뭔가 죄를 짓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중에 출산하러 와서 말해야겠다. 어차피 낳다가 못 낳으면 자연분만 준비하다가 제왕절개 하기도 하는데 당일에 해달라고 해도 수술해 주시겠지.’
막상 출산휴가를 내고 집에 있으니 청소, 빨래, 설거지 외에는 딱히 할 일이 없었다. 엄마가 보내주시는 반찬으로 밥도 야무지게 챙겨 먹었다. 원래는 정말 어린이 먹는 만큼 먹었었는데 아이를 가진 후에는 밥 한 그릇도 뚝딱 이었다. 처음 가져본 일주일이란 휴가는 참 평온했다. 힘들어도 그냥 진통이 올 때까지 출근할 걸 그랬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래야 하루라도 아이와 더 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까.
예정일이 되었는데 출산의 기미는 없었다. 병원에서는 예정일에 진통이 없으면 일주일만 더 지켜보고 그래도 진통이 없으면 유도분만을 시도해 보자고 하셨다.
2017년 4월 18일. 예정일에서 이틀이 지났고 그날은 조카의 생일이었다. 출근 준비를 위해 5시 반에 일어난 남편을 따라 눈이 떠졌다. 그리고 오늘이구나 싶은 예감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