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눈을 떴는데 아랫배가 싸하게 아팠다. 화장실이 가고 싶은 것도 아니고 생리통과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다른 느낌이었다.
“배가 좀 싸하게 아픈데 나 아무래도 오늘 출산할 것 같아.”
“많이 아파? 바로 병원에 갈까?”
“아니, 근데 아주 확실하지는 않아서 이게 진통이 맞는지 모르겠네. 근데 그냥 느낌이 그래. 확실하지 않으니까 자기는 우선 출근해. 혹시 진통이 맞으면 난 택시 타고 병원에 갈 테니까 자기는 집에 와서 내가 싸둔 짐 싣고 병원으로 와줘.”
아침 6시에 남편을 출근시키고 난 뒤 고민에 빠졌다. 배가 계속 싸한 느낌이 있는데 진통이라는 걸 한 번도 겪어 보지 않아서 이게 진통이 맞는지 아닌지 알 수가 없었다. 5분 간격으로 진통이 오면 병원에 오라 했는데 계속되는 싸한 느낌에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진통인 건지 판단이 되지 않았다. 아이를 낳는 고통은 말로 할 수 없다고 했는데 이 정도 통증이 진통이라면 출산이라는 거 별로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찌릿찌릿하고 싸한 느낌이 조금 더 강해졌다. 시계를 보니 아침 9시였다. 집에 혼자 있다가 덜컥 아기가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우선 욕실에 들어가서 머리를 감고, 대충 말렸다. 콜택시를 부르고 택시가 오는 동안 머리를 마저 말려야지 싶었는데 2분 뒤 도착이라는 안내가 떴다. 바로 옷을 갈아입고 부랴부랴 5층 계단을 내려갔다.
택시가 병원으로 달려가는 동안 내가 진통 중이라는 걸 알면 기사분께서 겁을 먹으실 것 같아서 그냥 진료받으러 가는 임산부인 것처럼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그리고 근처에 사는 언니에게 카톡을 보냈다
- 나 지금 아기 낳으러 병원 가는 중인데 김서방은 출근해서 혼자 택시 타고 가고 있거든. 우선 언니가 와줄 수 있어?
- 나도 콜택시 불러서 바로 출발할게.
병원에 도착해서 출산센터로 갔다. 그리고 가방에 넣어간 제대혈키트를 제출했다.
“예정일은 이틀 지났는데 진통이 있어서 왔어요. 아기 낳으면 제대혈을 기증하기로 했는데 채취 후에 여기 밀봉하셔서 이쪽 연락처로 연락해 주시면 담당자가 방문해서 수거한다고 하셨거든요. 부탁드릴게요.”
아기를 낳을 후 제대혈 기증을 하면 탯줄에서 제대혈을 뽑아 기증을 할 수 있다(아기에게 주삿바늘을 찌르는 게 아니라 아기는 안전해요). 기증된 제대혈은 연구 자료로 쓰이기도 하고 백혈병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쓰이기도 한다고 들었다. 혹시라도 우리 아이가 나중에 아프게 됐을 때 아이의 제대혈이 쓰이지 않고 남아 있다면 그 제대혈로 아이를 치료할 수도 있다. 제대혈은 태어날 때 딱 한 번 탯줄에서 채취할 수 있고 보관이나 기증을 하지 않을 경우 그냥 버려진다. 나중에 언급할 일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우리 집에도 조혈모세포이식을 받아야 하는 환자가 한 명 있다. 살면서 나와 내 주변에 그런 이식을 받을 환자가 생길까 싶겠지만 나 역시 그들 중 한 명이었다.
혹시라도 이 글을 읽는 임산부가 있다면 제대혈 기증 너무나 추천합니다!!
여기서 제왕절개를 하고 싶다고 말했어야 했다. 결국 끝끝내 그 한마디 말을 뱉지 못해서 그대로 침대에 누웠다. 일단 자연분만 하는 척하다가 힘들면 수술해 달라고 말해야지 생각했다.
“환자분 본인 37세 맞으세요?”
“네 맞는데요.”
“굉장히 어려 보이시는데. 차트가 바뀐 줄 알았어요.”
살면서 동안이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는데 평생에 단 한 번 어려 보인다는 말을 출산 하러 와서 들어봤다. 늘 회사와 일에 찌들어 있었는데 출산휴가로 집에서 쉬는 7일 동안 말도 안 되게 피부가 좋아져서 나를 어리게 봐주셨다. 역시 나의 노안의 이유는 회사였던 것일까.
입원을 하자마자 언니가 와주었고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에 안도감이 들었다. 침대에 누워 있는데 상태 체크를 하겠다며 배에 무언가를 부착하고 나가셨다. 침대 옆에 숫자가 30이라고 쓰인 기계가 있었다. 그땐 몰랐다 그 기계가 무슨 기계인지.
갑자기 쓰나미처럼 통증이 몰려왔다. 갑자기 당한 일이라 ‘헉’하고 소리를 뱉고 주먹을 꼭 쥐었다. 잠깐이었지만 순간적으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살면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통증이었고 무슨 일인가 싶어 어안이 벙벙했다. 침대 옆에 기계에 숫자가 70으로 올라갔다 떨어졌다. 그때 병실 문이 열리며 간호사 선생님이 뛰어 들어오셨다.
“이런 통증 얼마에 한 번씩 있었어요?”
“지금 처음인데요.”
그때 처음 겁이 났다. 내가 진통이라고 생각한 건 실제 진통이 아니었다.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사라지는 생전 처음 겪어보는 이 통증이 5분 간격으로 오면 그때 병원에 왔었어야 하는 거였다.
“출산하려면 아직 더 있어야 할 거 같은데. 산모님 아무래도 집에 갔다가 다시 오셔야 될 것 같아요.”
내 귀를 의심했다. 지금 이 상황에서 다시 택시를 타고 집에 가라고? 못한다. 죽어도 난 못 간다. 무슨 일이 있어도 병원을 떠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절실했다. 나 혼자 집에서 이런 진통을 겪다가 택시를 타고 다시 병원에 오는 일은 상상만 해도 너무 겁이 났다. 심지어 내가 진통하는 모습을 보고 옆에 있던 언니가 더 겁을 먹고 있었다. 임신 당시 상태가 너무 안 좋았던 언니는 진통 전에 날짜를 잡고 제왕절개로 아이를 낳았기 때문에 이런 상황을 본적도, 겪어 본 적도 없던 거였다. 집에 다녀오라고 하면 죽어도 못 간다고 선생님 다리라도 붙잡고 늘어질 결심을 했다.
“선생님, 그런데 밑에서 피가 너무 많이 나와요.”
마지막 진료를 했을 때 내진을 받았는데 그날부터 피가 조금씩 나왔었다. 그걸 내진혈이라고 하는데 오늘은 그 피가 조금 더 많이 나왔다.
“내진 한 번 해볼게요.”
간호사 선생님이 내진을 하는 동안 하늘에 빌고 또 빌었다. 그냥 이렇게 아기 낳게 해달라고.
“산모님, 아무래도 아기 낳으셔야 될 것 같아요. 준비할게요.”
이 상태로 집에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 이제 살았다 싶었다. 이제 진통 좀 하다가 제왕절개 해달라고 사정하는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