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콤말이 Apr 12. 2023

비자발적 자연분만

 간호사 선생님 한 분이 신발을 벗고 침대 위로 올라왔다. 그리곤 엄청난 힘으로 내 배를 밀기 시작했다. 아이가 왼쪽으로 치우쳐 있어서 잘 내려오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너무나 고마웠다. 땀을 뻘뻘 흘려가며 온 힘을 다해 아이를 밀어내며 나를 돕고 있었다. 비명소리 같은 건 입에서 나올 새도 없었다. 그냥 끙끙거리면서 간호사 선생님과 2인 1조가 되어 온 힘을 다해 아이를 밀어냈다.      


 그때 밑에서 뭔가 느낌이 났다. 올게 왔구나 싶었다. 자연분만을 하면 아이가 나오기 전에 밑에 부분을 어느 정도 잘라준다고 들었다. 근데 그게 아픈 게 아니라 오히려 시원하게 느껴진다고 했다. 마취 없이 그냥 생 살을 자른다고 했는데 실제 마취를 한 건지 그냥 생 살을 자른 건지 그건 나도 모르겠다. 시원한 느낌도 없었다. 고통은 없었지만 그냥 지금 살을 자르고 있구나라는 건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가위인지 칼인지 몰라도 그걸로 내 몸을 난도질한다고 해도 그 고통조차 느낄 수 없을 것 같은 시간이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힘주세요. 머리가 보여요.”

 힘을 주다가 너무 숨이 차서 본능적으로 숨을 쉬었다.

 “힘주다가 멈추시면 절대 안 돼요!!! 지금 아기가 나오다가 다시 들어갔거든요. 다시 또 아기가 나올 때 힘주는 거 멈추시면 나오다 입구에 목이 졸려서 질식사할 수도 있어요!”

 최악이다. 너무 숨이 막혀서 숨 쉬려고 잠깐 호흡한 건데 살기 위해 숨을 쉬면 내 아기가 죽을 수도 있다는 거다. 몸이 아픈 건 둘째치고 어미로써 아이를 죽일 수도 있다는 말이 엄청난 공포로 다가왔다. 

     

 임산부들이 아기 나올 때가 되면 문화센터 같은 곳에 가서 호흡도 배우고 출산 체조도 하고 한다는데 나는 출산 일주일 전까지 출근을 했기 때문에 문화센터 같은 곳에 가본 적이 없다. 제왕절개로 낳아야지 생각했기 때문에 호흡을 연습해 본 적도 없다. 

 할 수 있는 모든 힘을 쥐어짜서 힘을 줬다. 다시 숨이 찼다. 지금 호흡하지 않으면 내 숨통이 끊길 것 같았다. 본능적으로 라도 호흡하게 될까 봐 온 신경을 집중해서 아래로는 힘을 주고 위로는 숨을 쉬지 않기 위해 온 신경을 집중했다. 

 ‘나와라 아가야.. 제발 나와라’

 근데 정말 숨이 꽉 막혀서 더 이상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정말 그냥 여기서 죽겠다는 각오로 호흡을 멈췄다. 

 ‘내가 죽을게, 네가 살아.’     


 “나왔어요!!! 아기 나왔어요!! 정말 고생하셨어요!”

 아이의 우렁찬 울음소리 나 이런 건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냥 한 가지 생각만 났다

 ‘둘 다 살았구나.’


 “아기가 왜 이렇게 작지? 3킬로도 안될 거 같은데. 초음파상에서 3.3 키로 정도 된다고 나왔는데 이상하네. 이렇게 많이 차이가 날 리 없는데. 이렇게 작은 아기가 나오는데 왜 그렇게 힘들었지?”

남편을 내보냈기 때문에 아이의 탯줄도 선생님이 잘라주셨다. 침대에 늘어진 채로 손가락 하나 까딱 할 수 없이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 선생님이 나누시는 대화만 들었다.

 “선생님~ 아기 3.48 이예요~”

 “그렇지? 초음파가 얼마나 정확한데. 그렇게 크게 차이가 날 리 없지.”

 아기가 많이 작아 보였던 이유는 얼굴이 작고, 몸통이 말랐기 때문이고, 그럼에도 무게가 많이 나갔던 건 팔, 다리가 매우 길었기 때문이었다. 보통 신생아 평균 키가 50cm인데 우리 아기는 54.5cm로 보통 신생아에 비해 10% 정도가 더 길었다.


 의사 선생님이 다시 오셔서 배를 꾹꾹 누르셨다. 안에 남아 있는 태반 등 찌꺼기들을 내보내는 후반 작업이었다. 아이 낳는 것보다 이게 더 아프다는 친구도 있었는데 이때도 난 아무런 아픔도 느끼지 못했다. 뭔가 왈칵 쏟아지는 느낌이 났던 것 같기도 하다. 난 그냥 축 늘어진 채로 스스로 기력을 회복해가고 있었다.     


 아기가 배 위에 올려졌다. 보통 엄마들은 그때 처음 아이를 안아주며 아이에게 첫인사를 건넨다. 하지만 나는 정말 숨 쉬는 것 외에 몸을 전혀 움직일 수가 없었다.

 “산모님, 아기 나오면 안 나와도 제일 먼저 젖 물려야 되는데… 아무래도 힘드시겠죠?”

 고개를 가로저을 수도, 어렵겠다고 말을 할 수도 없었다.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못했는데 간호사 선생님은 다 이해한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여 주셨다.

 “아이는 데려가서 씻길게요. 이제 남편분 들어오시라고 할게요.”

 남편이 들어왔고 무언가 내게 말을 한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도 고생 많았다거나, 수고했다거나 그런 말을 한 것 같다.   

“남편분은 잠시만 나가주세요. 선생님께서 후속 조치 해주실 거예요.”

 이제 정말 마지막 작업이 이루어진다. 내가 할 일은 없다. 그냥 얌전히 누워만 있으면 되었다. 선생님께서 찢었던 살을 다시 정성스럽게 꿰매 주셨다. 이때도 마취를 하고 꿰매는 건지 그냥 꿰매는 건지 그건 모르겠다. 역시나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못 하지만 바느질을 하고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모든 게 끝나고 다시 남편이 들어왔다. 좋은 아빠 될 자신이 없다는 이유로 아빠가 되기를 원치 않았던 남자다. 말갛게 씻긴 아이가 속싸개에 싸여 모자를 눌러쓰고(체온 보호 차원에서 모자를 씌워줍니다) 얼굴만 빼꼼히 내민 채로 남편 품에 안기었다. 어떻게 안는지를 몰라 간호사 선생님께서 자세를 잡아주고 아이를 안겨주셨다. 처음 아이를 안고 아이를 바라보던 남편의 얼굴을 잊지 못한다. 소중한 것을 품에 안고 어쩔 줄 몰라 쩔쩔매던 그 모습을 보면서 확신이 들었다.

 ‘이 남자는 좋은 아빠가 되겠구나.’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남편의 리얼한 표정은 저 혼자 간직하겠습니다..^^



                     

이전 05화 생생한 출산의 현장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