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콤말이 Apr 28. 2023

아기를 낳을 땐 조금 이기적이어도 된다

출산 후에 후회한 것들

 아기는 얼굴은 주먹만 했지만 머리 모양이 콘헤드를 연상시켰다. 

 “산모님, 아기 낳을 때 아기가 나오다가 한번 들어갔잖아요. 그때 머리가 눌려서 뾰족해졌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차차 돌아오는 경우도 있는데 간혹 돌아오지 않는 경우도 있어요.”

 그러니까 내가 아기 낳을 때 나 살겠다고 숨을 쉬는 바람에 쉬는 바람에 우리 아기의 머리가 저런 모양이 되었다는 것이다. 아기가 태어난 순간부터 미안한 엄마가 되었다. 제발 머리 모양이 돌아와 주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병실에 와서 전반적인 내 상태를 보니 눈의 핏줄이 다 터져서 핏빛이었다. 나는 아기 나오는 순간에 힘을 줘서 그런 줄 알았는데 언니 말로는 초기 진통 때부터 이미 핏줄이 다 터졌다고 한다. 그리고 배는 온통 멍 투성이었다. 간호사 선생님이 내 위로 올라와서 배를 밀어주실 때 하도 힘을 주셔서 배가 다 멍든 거였다. 그래도 나는 그분이 너무나 감사했다. 아기가 태어나고 선생님이 내 배에서 내려왔을 때 그분 역시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던 걸 기억한다. 나와 하나가 되어 온몸으로 아기를 밀어주시던 고마운 분이다. 

    

 나중에 형부가 말하길 그날 초기 진통을 지켜본 언니는 며칠을 꼼짝없이 앓았다고 한다. 자연분만을 처음 지켜본 언니는 아직도 그 순간을 너무 무서웠던 순간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래도 괜찮다. 나도 언니도 더 이상 아기를 낳을 일은 없으므로.


 올해 일곱 살이 된 아들의 여섯 번째 생일이 바로 지난주였다. 아이를 낳은 후 몇 년이 지난 후에야 후회되는 일들이 하나씩 곱씹어졌다.


 아기가 태어나던 날 오늘이구나 하는 느낌이 있었을 때 남편을 출근시키지 말았어야 했다. 남편의 출산 휴가는 3일이었고, 그날 아이가 나온다는 보장도 없었기 때문에 혹시라도 그날 아이를 낳지 않으면 아까운 출산 휴가를 하루 날리는 셈이 됐을 것이다. 그 계산으로 우선 출근시켰는데 그 대가로 아기를 낳을 때 혼자 택시 타고 병원에 가야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출근하라고 해도 가지 말았어야 했어. 나도 처음이라 몰랐거든. 자기가 그냥 괜찮다고 출근하라고 하니까 괜찮은가 보다 하고 출근했던 거지. ”

 아마 미래를 알 수 있어서 그날이 출산 당일인 것을 알았다면 남편을 그렇게 출근시키지 않았을 거다.   

  

 진통이 시작되었을 때도 회사에서 당장 출발하라고 했어야 했다. 회사에서 남편이 중책을 맡고 있는 걸 알기 때문에 업무가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나도 남편도 늘 회사를 우선으로 생각하고 살았다. 어쨌든 아이는 내가 낳는 거고 나는 의사와 간호사가 있는 안전한 병원에 있으니 회사에 있는 남편은 업무처리를 대충이라도 끝내고 오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해서 급한 업무는 처리하고 천천히 출발하라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나고 이제 와서 그때의 일이 서운하다. 

 “와이프가 애 낳는 상황인데 일 처리 할 건 다 하고 오란다고 정말 다 하고 오는 사람이 어딨어? 그땐 정말 괜찮았는데 생각하면 할수록 서운해. 아픈 거 다 아프고 무통 맞은 후에 도착해서 내가 얼마나 아팠는지 보지도 못했잖아!”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아마 남편이 아이를 낳는 상황이었어도 내가 업무 중이었다면 나도 당장 급한 일은 처리하고 나왔을 것이다. 남편도 아마 급한 일만 대충 처리하고 출발했을 것이다. 지금껏 괜찮았는데 이제 와서 그때의 일이 왜 서운한 것일까.     


 아기를 낳는 순간에도 남편을 내보내지 말고 옆에서 내가 아기 낳는 모습을 보여줬어야 했다. 혼자 감당하는 게 낫다고 판단해서 남편을 내보냈기에 남편은 내가 얼마나 힘들게 아기를 낳았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몇 해 전 산후조리원이라는 드라마를 보면서 오열을 했다. 그 울음에 남편은 전혀 공감하지 못했다. 만약 분만실 안에 남편도 나와 함께 있었다면 어느 정도 내가 울 때 나를 공감해 주지 않았을까?     


 지금 생각하면 모두 내가 잘못했다. 이 모든 후회와 서운함의 근본은 바로 나였다. 남편을 향한 배려라고 생각했던 나의 생각과 행동들이 일 년이 지나고 이 년이 지나고 시간이 더 지나면 지날수록 그때의 나를 더 초라하게 만들어갔다. 

  아기를 낳을 땐 조금 이기적이어도 된다. 남편을 배려함으로써 결국은 그를 나쁜 사람으로  만들었다. 또한 아기가 태어나서 제일 처음 만나고 싶었던 사람은 의사 선생님이 아닌 아빠가 아니었을지.        


  나의 시점에서 보면 이런 이야기가 되겠다

 “출산할 때 남편이 출근하고 집에 혼자 있어서 콜택시를 불러서 혼자 택시 타고 갔습니다. 병원에서 초기 진통도 남편 없이 언니가 지켜봐 줬고, 아기를 낳을 때도 남편은 내보내고 저 혼자 낳았지요.”     


 남편의 시점에서 보면 이런 이야기가 되겠다

 “오늘 아이를 낳을 거 같긴 한데 진통인지 확실치 않으니 우선 출근을 하라고 하더라고요. 진통이 오면 연락을 줄 테니 혹시 모르니 급한 일은 처리하면서 대기하라고요. 워낙 확고하게 그리 말하니 그렇게 하면 되는 줄 알았죠. 아기를 낳을 때도 옆에 있겠다고 했는데 굳이 나가라고 하더라고요. 중간에 옆에 있어주려고 들어가면 안 되냐고 여쭤봤었는데 와이프가 거절한다고 했어요.”     


 그날 아기를 낳은 후에야 부모님께 출산 소식을 알렸다. 엄마에게 이야기하면 분명 열 일 제치고 병원으로 달려와 언제 나올지 모를 아기를 기다리고 있었을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 힘듦을 엄마와 나누고 싶지 않았다. 남편은 나의 고통을 눈에 담았겠지만 엄마는 나의 고통을 온몸과 온 마음으로 담을 것을 알았기에 엄마를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엄마가 정말 원했던 게 아기를 낳은 후에 받은 통보였을까? 딸이 아기를 낳는 순간에 옆에 있어 주고 싶지는 않았을까? 그런 선택을 한 내게 서운하진 않으셨을까?


 그러니까 아기를 낳는 순간엔 그냥 아무도 배려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게 옆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예의 일 수도 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내가 힘들고 아픈 순간에 떨어져서 지켜보기보다는 옆에서 나와 아픔을 함께하길 바랄 수도 있으니.


영화 '콘헤드 대소동' 포스터  ->  내 눈엔 아이의 머릿통이 이렇게 보였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