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콤말이 Apr 07. 2023

생생한 출산의 현장

남편에게 바로 메신저를 보냈다.

 - 지금 아기 낳을 거 같아. 초산이라 아마 시간이 좀 걸릴 거니까 회사 일 마무리하고 집에 들러서 짐 싸둔 거 갖고 병원으로 와줘

 - 괜찮아? 급한 일만 대충 마무리하면 1시나 2시쯤 출발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괜찮겠어?

 - 응 아마 그때까지도 나오진 않을 거야. 언니가 옆에 있어서 괜찮긴 한데 조카 하원 하기 전에는 언니 보내줘야 해. 그전에만 도착하면 될 것 같아.


 그때부터 모든 게 아주 빠른 속도로 진행이 되었다. 

 “관장할게요. 약 주사 할 건데 10분간 참았다가 화장실 다녀오세요. 힘들어도 10분은 꼭 참았다가 가셔야 해요.”

 관장을 해 본 적이 있는가? 10분 절대 못 참는다.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게 아니다. 병원복에 똥칠하지 않으려면 그냥 화장실로 달려가는 수밖에 없다. 그다음은 간호사 선생님이 면도칼을 들고 와 아랫부분 면도를 해주고 가셨다. 수치심? 개나 줘라. 모든 준비를 마치고 무슨 수액인지 모르겠지만 팔에 링거가 꽂혔다. 그리고 바로 시작되었다.     


 침대 옆 기계가 3~40을 유지하다가 점점 수치가 늘어나면서 80까지 올라갔다 내려왔다. 기계가 측정한 내 고통의 수치가 80이다. 주먹을 꽉 쥐고 숨이 턱 막혀오는 고통을 견뎌내면 다시 평온이 찾아온다. 그리고 내 옆에는 나보다 더 겁을 잔뜩 먹고 있는 언니가 지키고 있었다.

 “괜찮아? 숫자 또 올라간다. 힘들지? 힘내. 어떻게 해~~”

 나보다 언니가 더 안 괜찮아 보였다. 그다음부터는 기계의 계기판이 99를 찍었다. 기계가 측정할 수 있는 고통의 수치는 최대가 99였다. 계기판의 숫자가 정점을 찍고 다시 떨어지면 잠시나마(그래봐야 몇 분) 평온이 찾아왔다. 아마 한 시간 정도 기계도 측정하지 못하는 고통과 평온 사이를 오락가락한 것 같았다. 나중에 알았지만 이미 이때 내 눈의 흰자는 핏줄이 다 터져서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산모님, 지금 무통주사 놓을 수 있는데, 놔 드릴까요?”

 “네!!!!!!”

 묻지 말고 그냥 놔줘라. 말할 힘도 없다. 무통주사는 내게 구원과도 같은 존재였다. 주사 바늘을 타고 약물이 주입되자마자 천국의 문이 열렸다. 고통 없이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카톡도 할 수 있었다. 그때 남편이 도착했다. 시간은 오후 3시쯤이었다. 진통이 시작되었다고 해서 왔는데 평온하게 핸드폰을 들여다보면서 카톡이나 하고 있던 내가 어떻게 보였을까. 남편이 도착하면서 언니는 해방을 얻었다. 남편은 분만실에 와서 한 시간 동안 내내 평안했던 나의 모습만 기억할 것이다. 

 한 시간이 지나고 다시 조금씩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선생님한테 가서 무통 주사 한 번만 더 놔달라고 해줘.”

 다시 한번 무통 천국을 경험하고 있어도 될 거라고 생각했다.


 “산모님 이제 아기 낳으셔야 해요.”

 남편의 부름에 달려오신 간호사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자기야, 이제 나가 있어.”

 고통은 함께 나눈다고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마음으로 힘듦을 나눌 수 있을지 몰라도 몸의 고통은 오로지 나 혼자 견뎌야 하는 것이다. 

 “산모님, 어차피 아래쪽은 공개 안 하고 남편분은 위쪽만 보실 수 있어요. 여기 계셔도 괜찮아요.”

 그러는 순간에도 기계조차 측정하지 못하는 나의 통증은 계속 찾아왔다 잠잠해지기를 반복했다. 점점 더 강도는 세졌고, 통증이 왔다 가는 속도가 빨라졌다.

 “아뇨, 남편은 그냥 내보내 주세요. 괜찮아요. 나가!!”

 아이 낳는 걸 보면 트라우마가 생기는 남편도 있다고 했다. 그런 가능성까지 생각했을 때 남편은 그냥 내보내는 게 맞는 것 같았다. 남편이 내 옆에 붙어 있는다고 내 고통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찾으면 바로 들어올 수 있는 곳에 있었기 때문에 그가 문 밖에 있어도 괜찮았다. 


 “양수 터트릴게요, 놀라지 마세요.”

 남편이 나간 후 다시 2차전이 시작되었다. 양수는 터지기도 하지만 출산이 임박하면 병원에서 터트리기도 하는 모양이었다. 뭔가 조치를 한 것 같은데 나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힘을 주려면 무언가 잡을게 필요했다. 그게 내 다리가 될 줄은 미처 몰랐다. 침대에 누워서 다리를 힘껏 벌리고 무릎은 구부린 채로 오른팔로 오른 다리를, 왼팔로 왼 다리를 잡는다. 무슨 자세인지 상상도 안 되겠지만 그런 이상하고 치욕스러운 자세로 힘을 줘야 했다. 진통이 가라앉았을 때는 힘을 줘도 소용이 없고 미친 듯이 아파올 때 힘을 주면 되었다. 근데 대체 어디에 어떻게 힘을 줘야 하는지 또 알 수가 없다. 


 “산모님, 변 보듯이 힘을 주세요. 그거 아니고요.. 변 보듯이!!! 지금 그렇게 말고요! 잠시 쉬었다가.. 곧 옵니다.. 지금!! 변 보듯이!!! 방금 아~주 잘하셨어요. 그렇게 힘주시면 돼요.”

 항문에 힘을 주라는 말이었다. 침대에 누워서 대변을 밀어낸다는 생각으로(너무 적나라해서 죄송합니다) 주면 되는 거였다. 

 간호사 세 명이 붙었다. 이제 힘주는 방법도 깨달았으니 절반 이상은 왔다고 생각했다. 여기서부터는 ‘아 몰라 나몰라’다. 제왕절개로 낳고 싶다는 말을 입 밖에 못 내서 지금 이 상황까지 왔다.   

   

 아직 의사는 오지 않았다. 의사가 아직 분만실에 들어오지 않았을 때는 출산 임박이 아니라고 어디선가 주워 들었다. 

 “산모님, 남편분이 지금이라도 들어오고 싶으시다는데 들어오시라고 할까요?”

 “아니오!!! 들여보내지 마세요.”

 이런 모습을 남편에게 보이고 싶지도 않았다. 난 이미 사람이 아니었다. 단호한 내 모습에 간호사 선생님이 몇 번 더 설득하다 포기하고 돌아가셨다.

  ‘하다 안되면 제왕절개 시켜주겠지. 아이가 안 나오면 기구를 써서라도 빼 주겠지.’

 그때 의사 선생님이 분만실로 들어오셨다. 


  ‘이제 본 게임 시작이구나.’




이전 04화 진통을 구별하는 방법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