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낳은 후에 병실로 올라갔다. 제왕절개는 보통 일주일 정도 입원 하지만 자연분만은 2박 3일 입원 후 퇴원한다고 했다. 어차피 3일간 머무를 공간이고 남편도 나와 함께 해야 하니 1인실을 달라고 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출산으로 인한 입원이니 다인실은 불편할 것 같았다. 병실에 올라오자마자 조리원에 연락해서 퇴원 날짜에 맞춰 입실 예약을 했다.
“보호자분, 식사는 일반식과 특식이 있는데 어떤 걸로 드릴까요?”
“특식으로 주세요.”
“영양제는 3만 원, 5만 원, 7만 원, 13만 원짜리 있는데 어떤 걸로 드릴까요?”
“13만 원짜리로 주세요.”
아무래도 병원의 철저한 계획임이 분명하다. 내가 없는 자리에서 남편에게 물어봐도 될 것을 내가 너무나도 잘 들리는 곳에서 물어본다. 어차피 주삿바늘이 팔에 꽂히면 그 주사가 얼마짜리 인지 내가 알 리 없지만 남편의 대답에 당연한 대우라고 생각했다.
병실에 도착하고 얼마 안 있어 부모님과 동생이 도착했다. 엄마도 아파서 병원에 갔었다고 들었는데 집에 도착하자마자 출산 소식을 듣고 바로 서울로 와 주신 거다.
“엄마도 아프다면서 뭐 하러 오늘 와. 좀 쉬고 내일 왔어도 됐는데.”
“무슨 소리야 엄마가 당연히 와야지.”
출산 현장을 함께 하지 못했지만 엄마는 내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다 알고 있었다.
“씻고 싶어도 절대 씻으면 안 돼. 몸에 바람 들어가면 평생 고생해. 찬물에 손 담그지 말고, 찬물도 절대 마시지 말고, 절대 바람 쐬면 안 되는 거 알지?”
절대 안 된다는 게 너무 많았다. 하지만 엄마가 하면 안 되는 걸 계속 나열하는 동안에도 조리원에 가면 샤워 먼저 해야지 하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일단 아기를 낳고 병실에 올라가면 누구도 아기를 직접 볼 수 없다. 투명한 유리관 속에서 빛나는 보석처럼 아기는 유리벽 안에서 이름표를 붙이고 보고 싶어 하는 손님들에게 아주 잠시 공개된 후 다시 커튼 뒤편으로 사라진다. 아무리 아기의 아빠라도 허락된 시간에 잠시 아기를 감상하고 돌아와야 했다. 유일하게 아기를 만질 수 있는 사람은 아기를 낳은 나뿐이었다. 그것도 수유 시간에만 일시적으로 허락이 되었다.
부모님과 동생도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만질 수 없는 아기를 보고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돌아가셨다. 임산부였을 때 가족 모두의 관심과 사랑을 한 몸에 받는 건 나였지만, 아기가 나온 그 순간부터 오로지 아기만이 모두가 추앙하는 대상이 된다. 이전까지 하나뿐인 조카가 우리 집안의 왕이었다면 10년 만에 왕좌의 주인이 바뀌었다. 안 그래도 열한 살 된 조카가 언니에게 아기가 태어난 후 본인의 입지가 줄어드는 것 아니냐고 물어본 적이 있단다. 그에 대한 언니의 답변은 이랬다고 한다.
“십 년 동안 했으면 이제 물려줘도 되지 않니?”
병원에서 남편이 주문해 준 특식의 정체는 삼계탕이었다. 무지개다리를 건너다 돌아왔는데 그래 이 정도는 먹어도 되지 라는 생각으로 닭을 뜯어먹었던 것 같다.
한 번씩 신생아실에서 수유하러 내려오라고 호출이 오면 내려갔다. 이름표가 아니면 내 아기인지 남의 아기인지 모를 아이를 안고 젖을 물렸다. 그냥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이 잘되지 않았다. 아기를 낳았음에도 전혀 배가 들어가지 않아 체감이 되진 않았지만 모두가 내 아기라고 하니 이 아기가 내 아기인가 보다 했다. 그러면서도 젖을 물고 있는 아기가 신기했고, 젖이 잘 나오지 않으면 칭얼대는 아기가 신기했다.
수유가 끝난 후 아기를 반납하고 나오면 모르는 할머니들이 말을 걸었다.
“자연분만 했어요?”
“네..”
“아유 우리 딸은 제왕절개 해서 아기 낳고 한 번도 아기를 안아보지도 못했어. 걸을 수 있어야 내려와서 기도 보고 젖도 물리고 할 텐데…. 우리 딸도 자연분만 했으면 벌써 아기도 안아보고 했을 텐데. 아기 언제 낳았어요?”
“어제요.”
“아유 부러워라. 우리 딸은 수술한 지 삼 일째인데 통 일어나지를 못해.”
그랬다. 자연분만을 한 산모는 제왕절개를 한 산모의 부모, 혹은 남편, 혹은 시부모에게 너무나 부럽고 대견한 존재가 되어 있었다.
자연 분만을 하면 먹는 것도 걷는 것도 자유로웠… 다고 할 것 같나? 물론 걸을 수는 있다. 그런데 아랫부분이 미친 듯이 아팠다. 제왕절개는 일어나지도 못하고 누워 있기 때문에 더 아프고, 회복도 더디다고 하지만 자연분만도 미치게 아프단 말이다. 다른 데가 아픈 게 아니라 생살을 찢고 꿰맨 회음부가 너무나 아팠다. 앉다가도 깜짝 놀라서 소리를 지르고, 걸을 때도 미칠 것 같았다. 따가우면서 뜨겁고, 내 살이 타들어 가고 있나 싶기도 했다. 상처야 아물기야 하겠지만 그게 언제인지 알 수 없었다. 그렇다고 반찬고나 메디폼을 붙일 수도 없는 일이었다. 나는 제왕절개의 고통을 알지 못하고, 제왕절개를 한 언니는 나의 아픔을 알지 못한다. 아기를 낳으려면 찢고 꿰매야 한다는 건 같다. 찢는 곳의 위치가 배냐 회음부냐 이것의 차이일 뿐. 그래도 회복은 확실히 자연분만이 빠르다는 건 인정한다. 제왕절개를 하고 일주일 내내 시체처럼 누워만 있던 언니를 떠올려 보면 확실히 그런 것 같다.
출산 당일 저녁과, 둘째 날을 보내고 셋째 날 아침이 밝았는데 퇴원을 해도 좋다고 했다. 병원에서 채 48시간을 채우지 않은 채로 퇴원을 하게 되었다. 병원비를 정산하러 갔던 남편이 들고 온 진료비영수증은 본인부담비가 100만 원 정도 되었다. 자연분만을 하면 병원비가 거의 10만 원 정도이고, 제왕절개를 하면 100만 원 정도라고 들었었는데 병실은 1인실에 식사는 특별식 신청을 하고, 영양제를 맞고 아기 유전자 G스캐닝 검사도 요청했더니 딱 100만 원에 맞춘 비용이 계산되었다.
G스캐닝 검사는 선택사항인데 아기의 혈액을 채취해서 DNA를 분석해 염색체 이상이 있는지 검사를 하는 거라고 했다. 유전자 검사는 아기의 유전자에서 선천적인 이상이 있을 경우 미리 알 수 있다고 해서 추가금을 내고 신청했었다. 인터넷에 검색해보면 굳이 돈 주고 비싼 검사를 받을 이유는 없다는 의견이 전적으로 많았으나 노산이므로 검사란 검사는 모조리 다 받았다. 혹시라도 뭔가 이상이 있을 경우 미리 알고 있어야 대처가 빠를 것 같기도 했지만 우리 아기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걸 미리 확인받고 싶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