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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말이 May 26. 2023

산후조리원은 누구를 위한 곳인가?

   조리원 일과 중 중요했던 일은 하루 세끼 식사와 두 끼 간식 챙겨 먹기였다. 먹는 게 뭐 어려운 일인가 싶겠지만 아침에 눈 뜨면서부터 밥을 먹고 숨 돌리고 나면 간식 시간이고, 다 먹었나 싶으면 또 점심시간이 되었다. 오후에 출출하다 싶으면 방으로 간식이 배달되었고 이제 좀 살만하다 싶으면 또 저녁 시간이었다. 몸을 회복하고 아기에게 좋은 젖을 주기 위해 우리는 배불리 먹어야 했고, 누구도 거부감 없이 하루 5식을 거뜬하게 먹어 치웠다.    

  

 “모유 수유 하면 살 빠진데요.”

 사실인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그 말에 위안을 삼았고, 조리원 거실 한구석에 있는 체중계는 쉴 틈 없었으나 누구 하나 저울에서 내려오며 밝은 표정을 지은 사람은 없었다.

    

 식당에는 4인 식탁이 몇 개 있었는데 그냥 앉는 순서대로 앉아서 다 같이 밥을 먹었다. 매일 한 두 사람씩 입소와 퇴소가 이루어졌기에 인원은 조금씩 변동이 있었다. 대체적으로 30대 초반인 사람들이 많았고 40대 언니들도 두어 명 있었지만 30대 후반인 나는 여기서도 나이가 많은 축에 속했다. 생판 모르는 사람들이었지만 별다른 자기소개가 없었음에도 비슷한 시기에 아기를 낳았다는 이유로 동지애를 형성해 가며 거리낌 없이 대화를 주고받으며 식사를 했다.      


 회음부 통증은 날로 심해졌다. 도넛 방석이 없으면 앉아 있는 것도 힘이 들었다. 불에 덴 듯 뜨겁고, 따갑던 통증. 따뜻한 물로 좌욕을 할 때면 그나마 통증이 느껴지지 않아 하루 5식 외에 하루 4~5회 좌욕도 스케줄에 추가가 되었다. 앉았다 일어설 때조차 손으로 땅을 짚지 않으면 일어날 수 없었다.

 “일어날 때 그렇게 손으로 짚고 일어나면 손목 나가요. 주먹 쥐고 주먹으로 일어나세요.”

 손으로 땅을 짚는 것도 금기사항이었다.


 “아기 모빌 만드실 분 거실로 모이세요~”

 갓 태어난 신생아는 모든 게 흑백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래서 흑백 모빌을 보여주는 게 좋다고 했다. 우리 아기는 흑백 모빌이 없었으므로 거실에 나가서 모빌을 만들었다. 만드는 게 별로 어렵지는 않았으나 모빌 교구를 가져온 강사님은 끊임없이 아기에게 자극을 주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발달 단계에 따라 교구를 바꿔주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설명하고 본인들이 파는 학습지와 교구가 얼마나 체계적인지를 열심히 설명하시고는 회원 관리 차원에서 우리의 연락처를 받아 갔다. 나중에 조리원 퇴소 후에 이 분의 연락을 끊임없이 받았는데 아기는 놀아야지 학습이 필요치 않다는 나의 설득에 결국 그분이 포기하셨다.  

   

 “아기 마사지 배우실 분 거실로 모이세요~”

 나는 초보 엄마이기 때문에 아기 마사지를 어떻게 하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배워야 했다.

마사지를 알려주신 강사님은 본인들이 만든 화장품이 얼마나 좋은 성분으로 만들었는지를 어필하셨다.

 “성분이 너무 좋아서 아기 입에 들어가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아요. 볼래요? 난 직접 먹을 수도 있어요. 나쁜 성분이면 절대 내 입에 못 넣지.”

 심지어 화장품을 직접 먹어 보이기까지 하시는 그분이 좀 무서웠다. 이 분 역시 나를 카톡 친구로 등록하고 한동안 내게 안부를 물어오셨지만 난 끝내 대답을 하지 않았다.  

   

 하루 일과 중 내가 가장 반기는 시간은 마사지 시간이었다. 14일 동안 8번의 마사지와 4번의 한의원 진료(조리원 바로 아래층에 한의원이 있었다)가 예정되어 있어서 입소와 퇴소 날짜를 제외하곤 매일 마사지나 진료를 받았다. 동그란 돔에 들어가 있으면 몸이 뜨끈해지면서 땀이 났고 조물조물 주물러 주시는 마사지가 좋았다. 그리고 처음 마사지를 받고 나올 때마다 저울에 올라서면 몸무게가 조금씩 줄어 있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됐다. 아무래도 땀이 배출되면서 몸무게가 줄었거나 부기가 빠지면서 그런 게 아닐까 혼자 추측만 해볼 뿐이었다.     


 “아기 발 도장 제작 하시는 분들은 아기 데리고 거실로 모여주세요~”

 나는 조리원 이벤트 기간에 예약을 해서 추가비용 없이 아기 발 도장을 제작할 수 있었는데 실제 13만 원이라는 비용을 추가하고 발도장 제작을 의뢰한 산모들은 왜 자기만 추가 비용을 내야 하는지 원장실에 가서 따지기도 했다. 나는 임신 초기에 조리원을 예약했었는데  그때가 이벤트 기간이어서 저렴한 비용에 옵션도 무료로 추가할 수 있었지만 조금 늦게 조리원을 알아본 산모들은 이미 비용이 올라 있었고 이벤트 기간도 아니었기 때문에 옵션 상품도 추가로 지불해야 했다. 조금 더 발 빠르게 준비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스케줄은 매일매일 가득 차 있었다. 시간에 맞춰 식사하고, 간식 먹고, 좌욕을 하고, 마사지를 받는 것 외에 수시로 수유하고, 만들고, 배우고, 제작하고, 하루 2시간 신생아실을 소독하는 시간은 아기가 엄마 방으로 배달이 되었다. 신생아 이기 때문에 매일 잠자는 아기를 봤지만 한 번씩 눈을 뜨고 있는 시간에도 아기는 얌전했다. 그런데 나는 매일 소화해야 하는 스케줄로 조금씩 지쳐갔다. 해야 할 일들이 너무나 많았고, 배우기와 만들기를 하고 싶지 않은 산모는 건너뛰어도 상관이 없었지만 육아를 잘 모르기 때문에 뭐라도 배워야 했다. 조리원 천국이라고 했는데 성치도 않은 몸에 모든 게 벅차고 힘들었다. 회사 다닐 때 보다 더 바쁜 것 같았다.


 “차장님, 대표님께서 공기청정기를 사달라고 하시는데 어떤 거 사 드려야 될까요?”

 “그냥 인터넷 검색해서 대표님 방 평수에 맞는 걸로 하나 사드리면 될 것 같은데요.”

 “어머 아기가 울고 있네요. 미안해요 계속 전화해서….”

 별로 중요치도 않은 일로 회사에서는 수시로 연락이 왔다. 내가 지금 휴가 중인 건지 재택근무 중인 건지 나도 구분이 되지 않았다.


 뭔가 아래서 아주 뜨거운 것이 울컥하고 쏟아지는 느낌이 났다. 빨리 걸을 수 없었기 때문에 거의 기다시피 해서 화장실에 들어가 보니 바지가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서둘러 바지와 기저귀를 벗으니 화장실 바닥에 두어 근은 되어 보이는 핏덩이들이 우르르 쏟아져 있었다. 너무 놀랐지만 고함도 나오지 않았다. 출산이란 원래 이런 것인가.

 샤워기를 틀어 피투성이가 된 화장실 바닥을 청소했는데 핏덩어리들은 하수구를 통과하지 못해 손에 담아 변기에 넣어 물을 내렸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이런 경우가 종종 있는 것 같았다. 특이사항은 아닌 것 같아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신생아 촬영이 있으니 산모님들 모두 아기 데리고 거실에 모여주세요~.”

 스케줄은 끝이 없었다. 번호표가 없었기에 아기 컨디션 좋을 때 눈치껏 찍었어야 했는데 끼어들기를 하지 못해서 맨 마지막 순서에 사진을 찍게 되었다. 사진 찍겠다고 데리고 나왔을 땐 수유를 끝낸 후라 아기 기분이 좋았는데 열댓 명 아가들이 사진 찍는 걸 기다리는 사이에 잠이 들어 버렸다. 오늘이 아니면 일주일 뒤에나 다시 촬영이 있기 때문에 잠든 아기 사진이라도 찍어야 했다. 눕히고 찍고, 찍는 중에 잠에서 깬 아기는 울음을 멈출 줄 몰랐다. 그래서 자는 사진과 우는 사진만을 남기게 되었다.      


자는 중에 찍힌 사진


중간에 깨서 울면서 억지로 찍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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