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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말이 May 23. 2023

우선 나부터 살고 봐야 했다

 아기를 낳으면서 무통 천국도 경험해 보고, 죽음의 문턱 바로 앞에서 다시 돌아오는 경험도 해보았으나 나에게는 하나의 천국이 더 남아 있었다. 바로 조리원 천국! 앞으로 2주 동안 나와 아기를 케어해 줄 산후조리원에 드디어 입성하게 되었다.     


 산부인과와 붙어 있던 조리원을 가면 엘리베이터만 타고 올라가면 돼서 좋을 것 같았지만 2주 동안 병원 밥을 먹어야 될 것 같아서 병원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조리원을 예약했었다. 보통 조리원 만실 인원의 2/3 정도만 차 있다고 했었는데 그 시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조리원 방은 물론 비상시 사용하는 여분 방까지 모두 만실이었다. 물론 퇴원일에 맞춰 미리 입실 예약을 했던 내 방은 남아 있었다. 천국이라고 하기에 시설은 좀 오래된 듯한 느낌은 있었지만 이용하는 데 큰 무리는 없어 보였다. 방 중간 등이 나가 있었긴 했지만 어차피 2주만 사용할 방이고 메인 등은 괜찮아서 별다른 클레임은 걸지 않았다. 이 조리원 최대의 장점은 음식이 잘 나온다는 것과, 원장님이 산모들의 가슴 마사지를 직접 해주신다는 거였다.      


 “산모님, 새벽 수유 콜 해드릴까요?”

 모든 친구들이 입 모아서 조리원에서 새벽 수유는 절대 하지 말라고 했었다. 조리원에서 나오면 마르고 닳도록 하게 될 테니까 조리원에 있는 2주 동안 편히 지내다 나오라고 했다. 그렇지만 나는 이미 엄마 아닌가. 엄마는 아기를 위해 모든 걸 희생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했다.

 “네, 그렇게 해주세요.”


 3일의 출산휴가를 다 쓴 남편은 내일의 출근을 위해 저녁에 집으로 돌아갔다. 조리원에는 아기와 나만 남았지만 나는 방에 남고, 아기는 신생아실로 들어갔다. 방에 들어가자마자 따뜻한 물로 샤워를 먼저 했다. 이제야 살 것 같았다. 그런데 아무래도 이상했다. 아기를 낳았다고 해서 한 번에 배가 쑥 들어가지 않는다는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내 몸뚱이가 만삭의 몸 그대로였다. 양수 1리터에 아기 무게만 3.48Kg이고, 태반이나 이런 것들까지 합하면 못해도 최소 5Kg은 빠져야 될 것 같은데 몸무게도 그대로였다. 우째 이런 일이….     


 임신을 하면 한 달에 1Kg씩 해서 10Kg이 찌는 게 가장 이상적이라고 했지만 나는 내 몸무게보다 17Kg 정도가 더 쪄 있었다. 이렇게 살이 많이 찌면 병원에서 조절하라고 한다던데 원래 살집이 없던 몸이라 그런지 병원에서도 불어나는 몸무게를 한 번도 문제 삼지 않았었다. 출산 후에는 서서히 살이 빠지지만 원래 내 몸무게에서 3~4Kg 정도 더한 무게는 남는다고 했다. 근데 이렇게 조금도 몸의 변화가 없다면 대체 내 몸은 언제 돌아오는 걸까? 더군다나 나는 3개월 후에는 다시 출근해야 하는 몸이었다. 그때까지 최소한 임산부 몸은 벗어나야 했다.      


 재빠르게 마사지를 예약했다. 마사지사는 두 분, 베드도 두 개뿐이었다. 산모가 넘쳐났기 때문에 시간이 없어 마사지를 받지 못하는 불상사가 발생하면 안 될 것 같아서 서둘러 예약을  했다. 원장님은 2주 동안 하루 90분씩 8회 받을 수 있는 VIP 코스를 추천하셨고, 나 역시 마사지는 돈을 아끼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제일 비싼 코스로 결제를 했다. 안 그래도 빽빽한 스케줄을 요리조리 짜 맞춰 넣느라 원장님께서 아주 고심해서 시간표를 짜주셨다. 


 드디어 조리원에서의 첫날밤. 고단했던 나는 눕자마자 깊은 잠에 빠졌다.

 “띠리리리리리 띠리리리리리”

 잘 못 들은 줄 알았다. 

 “띠리리리리리 띠리리리리리”

 “여보세요.”

 갈라진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산모님, 수유하러 오세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시계를 보니 새벽 두 시였다.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이게 바로 새벽 수유라는 것이로구나. 정신은 비몽사몽 했으나 엄마를 기다리고 있을 아기에게로 가기 위해 몸을 끌었다. 옆방에서도 계속 전화벨이 울리고 있었다. 아마도 전화벨 소리를 못 듣고 계속 자고 있는 것 같았다. 

 나오는지 안 나오는지 모르겠지만 아기에게 젖을 물렸다. 나는 너에게 영양이 풍부한 초유를 반드시 먹이고야 말 것이다. 뿌듯함은 없었다. 그저 잠을 좀 더 자고 싶었다. 수유가 끝난 후 등을 토닥여 트림을 시키고 신생아실에 아기를 반납했다. 그리고 방에 가서 기절했다.


 “띠리리리리리 띠리리리리리”

 그냥 끊어버리고 싶은 유혹을 참고 수화기를 들었다.

 “산모님, 수유하러 오세요.”

 새벽 시간인데도 콜을 주시는 선생님의 목소리는 참으로 밝았다.

 시계를 보니 새벽 네 시였다. 정신력으로 일어나 아기에게로 갔다. 몸이 너무나 무거워 일으키기도 벅찼다. 몸은 아기에게로 가고 있으나 정신은 거의 나가 있었다.

 거의 반 시체 상태로 아기에게 젖을 물렸다. 아가야 너만 행복하면 됐다. 배부르니 행복하니? 이 어미는 네 배가 부른 것만 봐도 행복,, 행.. 복이 뭐더라?

 다시 아기를 반납하고 방으로 갔다. 방까지 갈 기력도 없어서 그냥 거기서 아무렇게나 너부러져서 자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띠리리리리리 띠리리리리리”

 “여보세요”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산모님, 수유하러 오세요.”

 실눈을 뜨고 보니 아침 여섯 시였다. 어떻게 수유를 했는지 모르겠다. 아기는 배가 불렀는지 어쨌는지 모르겠다. 먹이고 트림시키려면 최소 30분 이상은 소요가 됐고 나는 중간중간 1시간 혹은 1시간 반 정도 잘 수 있었다.

 엄마는 아기를 위해 모든 걸 희생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했다. 그런데 나는 엄마 자격이 없나 보다. 희생할 준비가 됐다고 생각했는데 우선 나부터 살고 봐야 했다.     



 “선생님, 내일부터는 새벽 콜 안 받을게요…, 그냥 분유 먹여주세요…”



젖소야,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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