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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말이 Jun 07. 2023

조리원 동기는 만들지 않겠습니다.

 거실을 오갈 때마다 투명창으로 벽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신생아실의 아기 침대를 한 번씩 들여다보았다. 아기는 때론 침대에서 자고 있었고, 아기 침대가 비어 있으면 선생님 품에 안겨 있었다, 가끔 아기 입 옆에 먹다 남은 분유 흘린 자국이 보이면 토한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고, 왜 안 닦아 주셨나 언짢아지기도 했다. 

 보통 이렇게 예비 방까지 꽉 차는 경우가 별로 없다고 했는데 퇴소를 해도 입소하는 사람이 계속 생겨 조리원은 늘 북새통을 이뤘다. 그러다 보니 아기를 돌봐주시는 선생님들은 쉴 틈 없이 바빠 보이셨다.    

  

 어느 날은 지나가다 선생님 품에 안겨 울고 있는 내 아기를 보았다. 다른 아기들도 몇 침대에 누워 울고 있었는데 선생님 수 대비 아기가 너무 많다 보니 다들 지쳐 보였다. 자석에 이끌리듯 손을 내밀었더니 선생님이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아기를 안겨 주셨다

 “엄마가 좀 안아주세요.”

 아기를 안고 계속 토닥토닥 쓰다듬어 주었다. 그날 이후 신생아실을 지나가다 아기를 보고 있으면 어김없이 선생님들께서 우리 품에 아기를 안겨 주셨다. 우리는 신생아실 옆을 지나갈 때면 서로 복화술로 이야기했다

 “선생님들이랑 눈 마주 치치 마요. 자꾸 아기 안아주라고 안겨줘요.”     


  밤 수유를 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밤에 잠이라도 자면 덜 피곤할 것 같았는데 불을 끄고 침대에 누우면 아기를 낳는 고통이 밤새 계속되었다. 평소에 내가 아는 복통은 아니었고, 마치 다시 진통이 시작된 것 같은 고통에 땀을 뻘뻘 흘리며 배를 잡고 뒹굴었다.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산후 배앓이라고 했다. 출산 후 자궁이 수축되는 과정에서 생기는 통증인데 자궁을 원래 크기로 돌아오게 하고, 노폐물을 배출하기 위한 통증이 규칙적으로 찾아오기 때문에 진통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출산 후에 겪어야 하는 일은 누구에게도 들어보지 못한 이야기라 당황스러웠다.      


 집에 가고 싶었다. ‘조리원 천국’이라고 하던데 모든 게 벅차고 힘들었다. 친정으로 가면 엄마가 아기도 함께 봐주고, 나도 돌봐줄 텐데 환불받고 퇴소할까 싶은 생각도 여러 번 했다. 하지만 어차피 퇴소 후에 친정에서 한 달간 몸을 풀기로 되어 있어서 2주 동안 그냥 남아있기로 했다.     


 나는 애초에 조리원 동기도 만들지 않을 생각이라 식사 시간에 대화하는 것 외에 연락처를 주고받거나 친구를 만들지 않았다. 집은 부천인데 아기를 낳은 병원도, 조리원도 서울(부천과 서울이지만 집에서 병원과 조리원까지는 차로 15분 거리이다)이라 일단은 지역이 맞지 않았다. 그리고 3개월 출산휴가만 마치면 복직하기로 되어 있어서 평일에 모임을 한다고 하면 참석을 못 할 것 같았다. 무엇보다 남편과 나 둘 다 부천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맞벌이 부부라 주중에는 아기를 인천 친정에서 돌보기로 되어 있었다. 주말에 조리원 동기 모임을 한다고 해도 주말에만 볼 수 있는 아기를 데리고 굳이 모임에 참석하고 싶지는 않았다.     

 

 “조리원 동기들끼리 단톡방에 있으면 서로 자기들 얘기하느라 바쁘고, 서로 애들 크는 거 비교해서 별로 좋을 것도 없어. 더 큰애 있고, 작은애 있고, 빠른 애도 있고 느린 애도 있는데 동기들끼리 이야기하면 그게 기준이 되는 것 같아서 괜히 우리 애만 작은 거 아닌지, 느린 거 아닌지 걱정만 더 하게 되더라. 그리고 동기들 중에서 잘 안 맞는 사람 있으면 맞춰가면서 만날 필요도 없고.”

 조리원 동기를 만들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도 내 판단이 맞는지 고민하는 내게 언니가 이야기해 주었다. 정말 필요 없어서 그렇다고 하는 건지, 나를 위로해 주기 위해 단점만을 말한 것인지 몰라도 그 말에 또 위안을 얻었다. 


 “언니, 혹시 출산휴가 급여 신청서 작성해 본 적 있어요?”

 며칠 전에 출산휴가 확인서(회사에서 작성해야 하는 문서인데 이 역시 내가 담당자인지라 직접 작성해서 신고를 했었다)와 출산전후 휴가 급여 신청서를 작성하는 걸 보고 옆방에 있던 30대 초반의 친구가 도움을 요청했다.

 “별로 어렵지 않아요. 출산휴가 확인서는 회사에서 신고하는 부분이니까 신경 쓰지 말고, 출산휴가 급여 신청서에 적으라는 것만 그대로 적으면 돼요.”

 “고마워요, 언니. 근데 언니는 왜 사람들이랑 연락처 안 주고받아요?”

 “어차피 난 출산휴가만 쓰고 바로 복귀하기로 해서 모임 해도 만나러 나갈 시간이 없어요. 사정상 주말에만 아기를 데려올 수 있어서 주말에는 무조건 엄마 아빠랑 함께 하는 시간 갖게 해 주려고요.”

 “나도 출산휴가만 쓰고 복귀할 건데. 근데 언니 회사가 어디예요?”

 “난 회사 서울 쪽 이에요. 1호선 타고 신도림에서 내려서 2호선 타고 다녀요.”

 “어? 나도 2호선 타고 다니는데. 무슨 역 이에요?”

 대답을 주고받으면서 서로 놀랐다. 그녀도 나도 같은 역 같은 출구에 서로의 회사가 있었다.

 “그쪽 출구에 스*벅스 건물 옆 빌딩이 우리 회사예요.”

 “어머 언니! 그 스*벅스 빌딩! 그 빌딩에 우리 회사 있어요!!”

 “어머, 진짜요? 나중에 회사 복귀하면 점심시간에 만나서 밥 한번 같이 먹어요.”

 “좋아요, 언니! 연락처 좀 알려주세요.”

 이렇게 우연히 조리원 친구에게 처음으로 번호가 따였다.     


 메신저에 서로가 친구로 등록되었지만 퇴소 후에 서로 연락을 한 적은 딱 한 번의 짧은 대화였다. 그 친구는 조리원 동기들과 계속 연락을 한다고 했고, 출산휴가 후에 회사에 복귀하지 못하고 결국 퇴사를 했다고 한다. 나중에 서로 볼일 있으면 보면 좋겠다고 했지만 그날 이후 우리는 여전히 서로의 프사로만 안부를 확인하고 있다. 그녀는 지금 이미 두 아들의 엄마가 되어 있다는 것도 메신저 프사로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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