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낮잠을 자다가 엄청난 왕벌 꿈을 꾸었다.
집 베란다에 나가보니 건조대에 널어놓은 흰 수건에 주먹만 한 말벌이 벌침을 벌렁벌렁 움직이며 딱 붙어 있었다. 처음엔 위협적이었지만 얌전히 수건에 붙어 있는 걸로 봐서 내가 해를 끼치지 않으면 내게도 해를 끼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용기를 내서 수건으로 살포시 덮어 두었다.
태몽인가 싶었는데 꿈 얘기를 들은 사람들은 태몽이 아니라고 했다. 태몽이라면 벌이 내게 확 달려들거나 내가 벌에 쏘였어야 한다고 한다. 몇 년이나 지난 일이지만 아직도 그 꿈이 너무나 생생하다.
비슷한 시기에 엄마가 내게 보라색 보석을 주는 꿈을 꾸셨다고 한다. 모두에게 인정받은 그 꿈이 우리 아이의 정식 태몽이 되었다. 그래서 아이의 태명을 ‘보라돌이’로 지었다.
병원에서 초음파로 아기집을 확인한 다음 날부터 바로 입덧이 시작되었고, 매일 아침 구역질과 구토로 일과가 시작되는 것이 루틴이 되었다. 다행이라면 아침에 그러고 나면 이후에는 별다른 입덧 증상이 없었고, 불행이라면 나보다 먼저 일어나 출근하는 남편은 단 한 번도 나의 입덧을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TV에서 보던 것처럼 한밤중에 갑자기 뭔가 먹고 싶다고 남편에게 사다 달라고 한 적도 없었고, 못 먹던 걸 먹게 되거나, 좋아하던 걸 못 먹게 되는 일도 없었다. 사과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사과가 너무 맛있어서 평소보다 많이 먹었다는 것과 평소보다 먹는 양이 두 배로 늘었다는 것 외에 특이사항은 없었다.
큰 키 덕분에 달수가 차올라도 생각만큼 배가 나와 보이지 않았고, 몸이 무거워 뒤뚱거리며 걷는 일도 없었다. 키가 160이 채 안 되는 우리 언니의 경우 임신 기간에 집에 놀러 가면 등 좀 닦아 달라, 발톱 좀 깎아 달라 항상 도움을 필요로 했는데 난 그조차도 모두 스스로 할 수 있었다.
언제나 그랬듯 퇴근 후 집에 들어오면 청소기를 먼저 잡았다. 남편의 늦은 퇴근으로 인해 청소건, 빨래건, 설거지건 원래 하던 대로 내가 했다. 그래서 태교를 해본 적이 없다. 아이에게 너무 미안했지만 출근하고, 일하고, 퇴근하고, 집안일하고 나면 매일매일 녹초가 되어서 태교에 신경 쓸 시간이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배가 불러오면 태교 여행도 가던데 나는 여행을 갈 만큼의 체력도 없었다. 주말이 되면 밀린 잠을 자고, 쉬기 바빴다.
임신 기간 중에 정말 힘들었던 일은 임신한 몸으로 집안일을 하는 것도, 회사 일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매일의 출퇴근 시간을 견디는 일이었다. 아파트 5층 계단을 내려가서 버스를 타고 지하철 1호선으로 갈아탈 때면 사람들에 떠밀려서 겨우 탈 수 있었다. 지하철을 타는 시간은 10~15분 남짓이지만 자리에 앉아 간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고, 사람들 틈에서 숨이라도 제대로 쉴 수 있으면 다행이었다. 그냥 신도림역에 빨리 내려주기만 빌었다. 신도림에 도착하면 사람들에 떠밀려 겨우 내릴 수 있었고 2호선으로 환승하려면 또 우르르 떠밀려 계단을 한참이나 내려가야 했다. 그나마 2호선은 1호선보다 사람이 적고 쾌적했다. 운이 좋으면 노약자석에 앉아 갈 여유도 있었다. 혹시라도 매우 예민한 아이가 태어난다면 그건 아마도 출퇴근 시간의 스트레스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다.
처음엔 병원도 주말에 남편과 함께 갔다. 그런데 주말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최소 1~2시간은 기다려야 진료를 볼 수 있었다. 두어 번 정도 겪고 난 후에는 주중에 반차를 쓰고 혼자 병원에 다녔다. 그럼 거의 대기 없이 바로 진료를 볼 수 있었다. 어차피 남편은 초음파를 보고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면서도 아이 머리가 어디 있는지 몸통이 어디 있는지 구분하지 못했다.
첫 출산인데 노산이라 해야 하는 검사가 많았다. 필수는 아니고 선택 사항이니까 나더러 선택하라고 했지만 노산임을 강조하며 웬만하면 검사를 하는 게 좋지 않겠냐고 하셨다. 비싼 비용을 지불하고 굳이 모든 검사를 다 받아야 할까 싶었지만 가족들도 모두 내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검사를 받으라고 적극적으로 권했다.
“검사는 아이한테 이상이 있는지 하는 게 아니라 아이한테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말을 듣기 위해서 하는 거야. 나이도 있으니까 비용 생각하지 말고 아이가 괜찮은지 확인하는 게 안심되고 좋지.”
언니의 말이 맞는 것 같아 기본 검사 외에도 병원에서 권하는 검사는 모두 다 받았다.
출산이 무섭기도 하고, 노산이기도 해서 처음부터 자연분만은 생각하지도 않았다. 병원에 가면 제왕절개를 하고 싶다고 말해야지 생각했다.
“오늘 검사 한 거 수치가 다 너무 좋으시네요. 특히 임산부들 비타민D 검사하면 수치 엉망인 분들이 많은데 최근에 본 산모 중에 수치가 가장 좋으시네요.”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께 칭찬을 받았다.
“산모님, 저희 선생님 진짜 칭찬 안 하시는 분인데 저런 말씀하시는 거 정말 처음 들어봐요. 몸 상태 아주 좋으시네요~”
이런 상황에서 제왕절개를 말할 수는 없었다. 아직 임시 초기니까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기형아 검사도 정상이고요, 그때 양수 검사 대신 피 뽑아서 산전 검사 하신 것도 이상 없어요.”
나는 기력도 없고 피곤했지만, 우리 아이는 너무 건강하다니 다행이었다. 이상 없다는 소리를 듣기 위해 피 한번 뽑고 쓴 돈 50만 원이 아깝지 않았다. 지금 제왕절개를 말할 상황은 아닌 것 같았다. 아직 임시 중기니까 다음에 이야기하기로 했다.
“아기 너무 잘 놀고, 양수도 아주 빵빵하네요. 컨디션 괜찮으시죠? 이대로면 자연분만 문제없어 보이세요. ”
병원에 갈 때마다 칭찬을 받는 바람에 매번 제왕절개의 ‘제’ 자도 못 꺼내고 돌아왔다. 나보다 훨씬 일찍 출산한 친구들도 자연분만과 제왕절개의 비율이 거의 반반이었다. 나이가 있으니 병원에서 먼저 제왕절개를 권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늘 자연분만을 응원받고 돌아왔다. 임신 후기가 됐지만 앞으로도 말할 기회는 몇 번 있을 것 같으니 다음에는 꼭 말해야지 하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