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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말이 Mar 27. 2023

봄에 태어날 아이를 가져라!

 더 늦기 전에 아이를 가져야 했다.      


 나는 완벽한 파워 J다. 모든 건 계획대로 되어야 한다. 다음 해 3~5월에 맞춰 아이를 낳으려면 봄~여름 사이에는 임신해야 했다. 봄은 너무 춥지도 너무 덥지도 않아 아이를 낳기에 완벽한 계절이며 몇 월에 태어나던 같은 나이라면 일 년 중 이른 시기에 낳는 게 아이에게 유리할 것 같았다. 


 비혼주의자였던 남편은 굳이 아빠가 되길 희망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아이 한 명은 꼭 낳고 싶다고 했다. 그게 더 늦기 전에 결혼하고 싶은 큰 이유였다.

 ‘아이는 엄마가 키워줄게. 너는 네 일 해.’ 십 년 전쯤 엄마가 했던 말도 떠올렸는데 엄마도 아마 내가 이렇게까지 늦게 결혼할 줄은 몰랐을 것이다. 그렇지만 아마도 엄마는 아이를 키워 줄 것이다.    

 

 내 의지가 확고하면 남편도 한 명은 낳는 데 동의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적은 나이도 아니고 온전하게 아이를 가질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도 없었다. 언니도 조카를 어렵게 낳았다. 임신 기간 내내 하혈을 해서 갑작스럽게 회사도 그만두었고, 전치태반에 역아라 애초에 자연분만도 불가능했다. 그렇게 목숨을 걸고 낳은 아이가 하나뿐인 조카다.

 엄마도 몇 번의 유산이 있었다고 했다. 임신, 입덧 이런 건 어느 정도 유전이라고 들었다. 더군다나 엄마와 언니는 20대였는데 30대 후반을 바라보는 내가 임신과 출산이 가능할지 의문이었다.

 ‘생길지 안 생길지 몰라도 우선 해보자. 그리고 유산 두 번까지는 감수하자. 안 생겨도 슬퍼 말고, 잃어도 절대 속상해하지 말자’ 단단히 마음먹었다.       


 생리주기가 일정하니 배란일도 일정할 텐데 아주 정확한 배란일을 확신할 수는 없으니 앞, 뒤로 며칠이 애매했다. 남편의 협조가 필요한 일이었는데 대놓고 입 밖으로 말을 꺼내기는 뭔가 자존심이 상했다. 내가 배란일이라고 생각한 그날, 자려고 자리에 누울 때까지 오늘 안 하면 안 되는데 라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 찼다. 말은 못 하겠고, 덮치지도 못하겠고. 조바심이 났다. 다행히도 그날 거사가 있었다. 

 완벽하지 않았다고 생각은 했지만 예정일에 어김없이 생리가 시작되었다. 

 ‘첫 번째 프로젝트는 실패구나. 3월생은 안 되겠네.’

 하지만 아직 4월생 만들기와, 5월생 만들기 두 번의 기회가 남아 있었다.     


 7월이 되었다. 이번에도 대략적인 배란일은 예측이 됐는데 정확한 날짜를 알 수 없었다. 앞 뒤로 +,- 5일을 더해서 총 11일 동안 신혼부부의 야근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대놓고 내색은 못 했지만, 괜히 매일 밤 달력을 쳐다보고 이젠 아이를 가져야 될 것 같다는 둥 무언의 동의를 구했다. 나는 늙어가고 있었지만, 남편은 젊었다. 원하는 걸 얻으려면 가질 수 있는 확률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면 되는 거다.

 11일의 프로젝트 진행 기간 중 하루는 하지 못했다. 그 하루가 불안했지만 이렇게까지 했는데 안 생기면 정말 힘들겠구나 생각했다. 할 수 있는 최선은 다했다고 생각했고, 혹시 내 안에서 세포 분열중일지도 모를 아이를 위해 당장 커피부터 끊었다. 


 예정일이 지났는데 아직 생리가 없었다. 테스트기를 사서 테스트를 해봤다. 이게 뭐라고 심장이 터질 듯이 요동쳤다. 선명한 한 줄이었다. 찰나의 순간 심장이 쿵 하고 떨어져 나갈 것 같았다. 그런데 잠시 뒤에 아주 연해서 잘 보이지도 않는 얇은 선이 하나 더 생겼다. 설명서를 읽어보니 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 두 줄이 될 수도 있으나 한참 뒤에 생긴 두 줄은 임신이 아니라고 나왔다. 

 “이게 두 줄이 나오긴 했는데 한 줄이 너무 희미해서 임신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래도 두 줄은 두 줄이거든.”

 “설레발치지 말자.”

 TV에서 보던 그런 신명 나는 반응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게 우리의 일상 표현 방식이라 딱히 서운하지는 않았다.      


 아침 첫 소변이 가장 정확하다고 하기에 다음 날 아침 다시 테스트를 했다. 그런데 역시나 너무 선명한 한 줄이 나타나고 한참 뒤에 아주 흐릿한 한 줄이 더 나타났다. 너무 임신 초기라 그럴 수 있을 것 같아 일주일을 더 기다렸다가 병원에 갔다.     


 초음파를 보신 선생님께서 아직은 아기집이 안 보인다고 하셨다. 근데 내 눈에는 아기집이 보였다! 다음 주에 와서 다시 초음파를 보자고 하시던 순간 선생님도 작은 동그라미를 발견하셨다. 

 “아, 여기 있네요, 아기집.”

 임신확인서를 써 달라고 말씀드렸는데 아직은 안 된다고 하셨다. 심장 소리가 들리면 그때 써 주신다고 하셨다.      


 부모님께 말씀드리기는 이를 것 같아서 언니와 동생에게만 소식을 전했다. 

 “안 그래도 언니 임신 소식이 없다고 엄마가 보약이라도 지으러 가야겠다고 하던데.”

 “보약? 나 이제 결혼한 지 4개월인데?”

 내가 급한 만큼 엄마도 급했구나.     


 뭐든지 계획대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나. 임신도 계획대로 잘 진행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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