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코스프레

by 서원



길을 가다 지렁이를 밟았다

"아악, 징그러워!"

내가 먼저 소리치며

생 호들갑을 뜬다


지렁이는 꿈틀거리며 아픈 몸을 비트는데

나는 몸서리치며 소리치고 있다


물컹한 촉감이

내 양심보다 더 빨리 반응했고

왜 땅속에 있지 않고

기어 올라왔냐고

지렁이에게 화풀이를 해댄다


밟힌 지렁이는 조용히

몸을 접었다 폈다

꿈틀거리며, 꾸역꾸역

자기 아픔을 정리했다


사람들은 같은 마음으로

"아휴, 정말 징그러웠겠어요

나도 밟으면 기분이 별로 안 좋더라고요."

한 목소리로 말한다


밟힌 지렁이는

사람들을 피해 가려고

소리 없이 꿈틀거렸고

조용히, 그리고

묵묵히 참고 견뎌야 했다


물컹한 그 찝찝함을 느끼며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


"앞으로 조심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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