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은 Dec 20. 2021

자기 밥은 자기가, 가족의 식탁은 누가?

52일 채식주의자 6

1년 365일 엄격한 채식 식단을 실천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생각했다. 일주일에 딱 하루만 채식 지향의 음식을 해 먹으며 건강한 생활 습관을 만들어 가자. 당장 실행할 수 있고, 오래 지속가능한 실천만이 삶을 바꿀 수 있다 믿기 때문이다. 지난 화요일은 <52일 채식주의자>의 네번째 그린데이였다.
The 4th Green Day
엄마의 배추김치 & 시어머니의 총각김치

혼자 먹는 점심으로는 간단한 면요리가 제격이다. 냉동 칼국수에 얇게 썬 감자를 넣고 끓였다. 마지막에 미리 풀어놓은 달걀을 섞고, 파를 송송 썰어 넣고 김가루와 들깨가루 고명을 올렸다. 부모님께 얻어온 김치 두 종류를 곁들이니 혼자 먹어도 맛있고 만족스러운 점심.

사온 반찬들: 두부스테이크, 두부조림, 메추리알 장조림, 취나물, 간장 떡볶이, 시래기 된장국, 쇠고기 미역국

이번 주에는 다시 반찬을 주문했다. 날씨가 추워지며 코로나 확진자가 늘어나니 웬만하면 집에 있는 게 상책이다. 잘 아는 반찬가게라 배민으로 주문해도 안심할 수 있는 곳, 굳이 안 나가도 되니 편리하기까지 하다. 이번 주에 먹을 반찬을 한꺼번에 주문했다.

아이들 식사에는 여전히 식판을 자주 이용한다. 아이들은 밥과 메인반찬(주로 고기류)만 먹는 경향이 있어 며칠 경고를 한 뒤, 공동 반찬이 계속 남을 경우엔 바로 식판에 식사를 차려준다. 식판에 받은 밥과 반찬은 가능한 다 먹는 것이 식사 룰이다.


오늘의 반찬 중 둘째는 새우가 들어간 두부스테이크와 호박죽을 먹지 않겠다고 했다. 그래서 이건 내가 대신 먹었다. 골고루 먹는 것은 중요하지만 억지로 참고 먹어야만 하는 음식은 없다고 믿기에. 호박죽은 시판 상품이나 죽집에서 파는 것보다 훨씬 담백하고 맛있었는데 애들은 별로라고 했다. 다행히 내 입맛에 잘 맞아 다음 날 점심에 혼자 치웠다.




이렇게 식사를 해결하고 나면 집안에 별다른 음식 냄새가 베지 않는다.  냉장고에 넣어둔 반찬을 식기에 덜고, 데울 음식만 렌지에 돌리면 식사 준비가 끝난다. 이런 식사는 수월하고 부담스럽지 않다. 저녁식사 후에도 늘어지지 않고 움직일 에너지가 남는다.


하지만 순식간에 준비가 끝나기에 주방에서 풍기는 음식 냄새를 맡고 궁금해진 아이들이 "엄마, 오늘 저녁은 뭐야?" 묻는 일도 없다. 아이들은 "집밥"이나 "엄마의 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아이들이 너무 솔직하게 대답할까봐 묻지를 못하고 있다. 아직 대답을 들을 준비가 안 됐다.


 "집밥 = 엄마의 손맛 = 정성과 사랑이 담긴 밥" 등의 공식에 갇혀 있는 건 어쩌면 나일지도 모른다. 반찬을 사먹는다는 사실을 공공연하게 말하고 다니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는 그래도 직접 해먹는 게 더 낫지 하는 마음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결국 건강하고 회복적이라는 삶이라는 게 정성껏 "요리하는 엄마, 요리하는 여자"로의 귀결이라면 굳이 하루 식단을 기록하고 남길 필요가 있을까. 이런 기록이 삶을 더 자유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점점 약화되고 사라져가는 규범과 역할되돌리미화시키는 것일까봐 걱정된다.


먹고 사는 일은 분명 중요한 일이다. 그렇다면 모두가 행복한 식탁은 어떻게 차려질 수 있을까?"어떻게"를 물어야 하나, "누가"를 물어야 하나. 결국 "제 밥은 각자 알아서", 이것이 대안일까. 그렇다면 가족의 식탁은 어떻게 해야하지?아직 아이들이 어리니 당장 대답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당장은 가족의 식탁을 떠날 수 없는 지금, 집밥과 부엌일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본다.


타이틀 이미지 출처: Pexels

매거진의 이전글 코로나 시국의 돌봄: 코로나보다 무서운 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