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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름 Nov 19. 2021

멍청비용만 날리자고요

살다 보면 멍청비용을 쓰게 될 때가 있다. 멍청비용이란 멍청한 행동으로 인해 발생하는 추가 비용을 말한다. 예를 들면 호텔 예약시 날짜를 착각해 가기로 한 날이 아닌 다른 날짜에 예약해서 취소 수수료를 낸다거나 비행기를 놓쳐서 비행기 값을 날리거나 세금을 내야 할 기간 내 내지 않아서 과태료를 추가로 내는 것이다. 여행을 하다 보면 멍청비용을 쓰게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 이유는 익숙지 않은 환경에 우리 자신을 던지기 때문이다. 

나도 지난주 2박 3일의 밀라노 여행을 다녀오면서 멍청비용을 썼다. 라이언에어에서 이탈리아 밀라노로 가는 왕복 티켓을 샀다. 유럽 내 저가항공은 가격이 저렴해서 평일에는 1~2만 원 정도로 다른 도시로 여행을 다녀올 수도 있다. 그러나 저가항공의 맹점은 비행기표 값보다 비싼 추가 비용을 내게 될 수 도 있다는 거다. 가령 짐을 미리 추가하지 않고 공항에서 추가하면 더 돈을 비싸게 받거나 일행과 같이 앉으려면 돈을 추가로 지불해야 한다. 이러다 보면 처음 결제한 비행기 값 보다 더 비싸지기도 한다. 

내가 산 밀라노행 비행기표는 한국돈으로 약 5만 원인데 동행인과 같이 앉기 위해 자리 지정을 하려니 1만 원에서 2만 원 사이의 금액을 추가로 내라고 했다. 괜히 돈이 아까운 생각이 들어 자리 지정 없이 정해주는 자리에 앉으려고 하니 출발 전 24시간 전에만 체크인이 가능한 거다. 그래서 그 시간을 맞춰 출발 전날 체크인을 해두었다. 근데 막상 공항에 가니 체크인이 안되어 있는 거다. 예약번호 하나에 2명 이름이 떴고 내 이름만 체크해서 체크인을 했는데 어찌 된 일인지 내 핸드폰에는 내 비행기표가 아니라 동행인 비행기표만 있었다. 전날 체크인을 마치고 보딩패스에 뜬 이름을 확인하지 않은 내 실수다. 나는 당연히 내 이름으로 들어가서 체크인을 했으니 내 보딩패스 일거라 생각했지만 그건 동행인의 보딩패스였다. 

생각해보면 처음 라이언에어를 이용했을 때도 멍청비용을 썼다. 그때 미리 온라인으로 체크인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몰라서 공항에서 체크인 비용으로 비행기표보다 더 큰 금액을 체크인 비용으로 날렸다. 이번에도 체크인 카운터에서 체크인 비용으로 78000원가량 더 냈다. 5만 원짜리 비행기표가 13만 원이 돼버렸다. 배보다 큰 배꼽이다. 추가 결제를 위해 카드를 내밀면서 사람들의 사소한 실수로 돈을 벌어먹고 사는 라이언에어가 싫었다. 보다 더 싫은 건 한번 더 확인하지 않은 나 자신이었다. 해야 할 일은 빨리, 대충 해치워 버리고 얼른 그 일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내 성격 탓이다. 내가 멍청해서 안 써도 될 비용을 썼다는 사실에 화가 치밀었다. 라이언에어에서만 두 번이나 체크인 비용을 추가로 내다니.. 처음에는 잘 몰라서 그랬다고 해도 두 번이나 멍청비용을 썼다는 게 바보같이 느껴졌다.

게이트 앞 의자에서 밀라노행 비행기를 기다리면서 나 자신을 한껏 미워하고 있었다. 심지어 비행기는 한시간이나 연착되고 있었다. 그러나 돈도 썼는데 스스로를 미워하기까지 해야 한다니 그건 너무 또 억울하다. 나는 결심했다. 그냥 돈만 날리기로 하자. 멍청한 자신을 용서하기로 했다. 

살다 보면 우리는 사소한 실수로 인해 멍청비용을 쓰고 우리 자신을 자책할 때가 있다. 그러나 미우나 고우나 나는 나와 함께 이 험한 세상을 헤쳐나가야 한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평생 함께 할 사람은 배우자도 자식도 아닌 나 자신이다. 때로는 우리 모두 멍청하다. 왜 그 사람을 사랑했을까, 왜 그 직업을 택했을까, 왜 그랬을까를 외치며 나 자신에게 강펀치를 날리고 싶은 순간들을 참아내며 살아간다. 아마 아리스토텔레스도 공자도 멍청한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멍청한 자신을 견뎌내고 다시 자신을 일으켜 세워야 한다. 이럴 때는 스스로를 빨리 용서하자. 망가진 자존감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 우리 그냥 멍청비용만 날리기로 하자.  

밀라노 여행 내내 흐렸던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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