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수술로 수술 방법을 선택한 뒤, 정말 조심하며 지냈다. 하지만 그때는 코로나 확진자가 매일 최고 기록을 경신하며, 주변에서 한 번도 걸리지 않은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운 시기였다. 하루하루가 불안하고 두려웠다.
너무 불안했기에 친구들 결혼식도 못 가고 계속해서 집콕 생활을 이어갔다. 수술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라 마음이 더욱 초조했다.
그 사이, 아이들은 매일 마스크를 쓰고 학교에 갔다. 우리 가족 중에서 가장 철저하게 마스크를 쓰던 사람은 바로 큰아이였다.
어느 날 저녁, 잠자리에 들기 전 큰 아이를 안아주었는데, 체온이 심상치 않았다. 사실 큰 아이는 돌 이후부터는 열이 나는 일이 거의 없었다. 돌 이후로는 예방접종을 받고 온 날에도 열이 거의 나지 않었다.
그랬던 아이의 몸이 불덩이 같았다. 코로나일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집에 준비해 두었던 키트로 확인을 해보니 아주 희미하게 두줄이 보였다. 눈앞이 캄캄해지는 기분이었다.
수술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코로나라니.. 처음에는 머리가 띵한 느낌이었지만, 일단 아이가 아픈게 먼져였다. 미리 준비해 둔 해열제를 먹이고 마스크를 씌웠지만 아이의 열은 멈추지 않고 38도 이상을 기록했다.
아침이 되자마자 집 근처 병원에 가서 PCR을 한 뒤 약을 받았다. 아마 이미 온 가족이 걸렸을 거라 생각했지만, 혹시 모르니 하루정도 아이를 방에 격리를 했다. 하지만 결국 그다음 날 다른 가족들도 코로나 확진을 받았다.
그때까지 좀처럼 아이 열이 잘 잡히지 않아, 평소 약이 굉장히 잘 맞던 이비인후과에 오픈시간에 맞춰 가서 PCR을 하고 약을 여유 있게 받아왔다. 워낙 잘 맞던 병원에서 처방받아온 덕분인지 큰아이 열은 그날 오후부터 잡혔고, 둘째도 하루정도 열이 나고 나랑 남편도 목이 좀 불편한 정도로 수월하게 코로나를 보냈다.
병원에도 코로나 확진된 것을 알렸더니 추후에 날짜를 다시 잡기로 했다. 최종 한 달 정도 뒤로 날짜가 잡히긴 했지만 그때 다시 PCR을 했을 때 코로나 균이 남아있으면 수술할 수 없을지 모른다는 설명을 들었다.
속상했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니 어쩔 수 없었다. 그냥 그 안에 균이 다 사라지길 바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