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받아들이기까지
다행히 갑상선암 진단을 받은 다음날부터 설 명절 연휴가 시작됐다. 원래 명절에는 시댁에 가서 하루 자고, 명절 당일 오후에는 친정을 가는 등 바쁜 명절을 보냈었다. 그런데 그때는 정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머릿속을 비우고, 그저 쉬고만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양가에 갑상선암 진단받은 것을 알리고, 이번 명절에는 가지 않겠다고 전했다. 결혼 이후 10년이 넘도록 처음 있는 일이었다.
평소라면 아이들을 돌보느라 정신이 없었겠지만 연휴라 남편이 집에 있어 나는 며칠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누워서 멍하니 쉴 수 있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2년 전만 해도 아무 일도 없었는데, 그때 더 일하지 말고 쉬었어야 했던 걸까? 애초에 그 일을 시작하지 말았어야 했던 걸까?' 등의 생각해도 답이 없는 쓸데없는 잡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이어졌다.
물먹은 솜이 된 것 마냥 머리도, 몸도 무거웠다.
그동안 갑상선암은 '착한 암'이라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다. 그래서 나도 그런 줄만 알았다. 하지만 내가 직접 걸려보니, '암'이라는 단어가 주는 공포는 상상이상이었다. 특히, 처음 갑상선암 진단을 받았을 때부터 마지막 수술이 끝나고 조직검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내가 가장 두려워했던 단 한 가지만 꼽으라고 한다면 단연코 '전이'였다.
진단을 내려준 교수님께서도 엄청 초기에 발견한 것이라 당장 수술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하셨다. 그 말에 안심하려 애썼지만, '혹시라도'라는 생각이 계속 머리에 맴돌았다.
명절 연휴 동안 누워서 쉬고 있을 때, 갑상선암 환우들이 정보를 교류하는 카페를 찾아서 가입했다. 간단한 가입 인사를 마친 뒤, 다른 분들의 글을 쭉 읽어보았다. 그 글들 속 내용은 한결같았다.
'갑상선암이 이렇게 무서운 암인 줄 몰랐어요.'
'전이될까 봐 너무 무서워요.'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길 거라곤 상상도 못 했어요.'
갑상선암 진단받은 분들은 대부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도 다른 더 무서운 종류의 암들이 많은데, 그나마 이거라 다행이라는 글들도 있었다.
다른 분들의 글을 보며 위로를 얻기도 했고, 수술 잘 마친 분들의 후기를 보며 부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수술 후기들을 찾아보면 찾아볼수록 점점 더 마음이 복잡해졌다.
생각보다 상태가 안 좋은 분들이 많았다. 너무 뒤늦게 발견해 목이 움푹 들어가는 상태가 된 분, 계속 재발해서 2번, 3번 수술 한 분, 다른 곳으로 전이돼서 항암치료로 넘어간 분 등 정말 다양한 케이스가 있었다.
평소에 흔히 알고 있던 '갑상선암은 착한 암'이라는 말은, 초기에 발견한 경우에만 해당되는 이야기였던 거였다. 특히 갑상선 옆쪽으로 림프절이 많다 보니, 림프를 타고 다른 곳으로 전이되는 것도 쉬운 것 같았다.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무서워졌다. 애들도 어린데, 그렇게까지 힘든 상황이 되면 어쩌나, 가족에게 짐이 되면 어쩌나 등등 진짜 별 생각이 다 들었다.
한동안 카페에서 그런 글들을 볼 때마다 무서운 생각에 자꾸만 더 힘들어져 더 이상 카페에 들어가지 않겠다 다짐했지만, 나도 모르게 틈만 나면 들어갔다. 처음엔 정보를 얻기 위해 가입했던 거였지만 나중에는 그냥 견딜 수 없어 들어갔던 것 같다.
그렇게 다시는 들어가지 않겠다 다짐하고, 다시 또 들어가고를 반복하던 중 어떤 분의 댓글을 보았다.
사실 대부분은 수술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가서 이 카페에 더 이상 글을 남기지 않을 거라고. 여기 남아서 계속 글을 쓰는 분들은 그중에서도 상태가 심각한 분들일 텐데, 일상으로 돌아가 암을 잊고 사는 사람들이 더 많을 거라는 이야기였다.
그 글을 보고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정보를 얻기 위해 들어갔던 카페였는데, 지금 나는 정보를 정보로 구분하지 못하고 그 모든 글을 내 이야기처럼 받아들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동안 다른 글들을 읽을 때마다 자꾸만 스트레스받는 것을 알면서도 틈만 나면 들어가서 긁을 읽는 것을 반복했었는데, 그날 이후로 카페에 들어가는 것을 그만두었다. 대신 도서관에서 갑상선뿐만 아니라 다양한 건강 주제에 관한 책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냥 막연하게 두려워하기보다는,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생각해 보기로 했다.
그냥 무섭고 속상하다고 마냥 누워만 있을 수는 없었다. 당장 케어해야 하는 어린아이들이 있었고, 아이들이 계속 내가 누워서 힘없이 처져 있는 모습을 보면 불안해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이런 일이 생긴 건 정말 속상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니 '왜 이렇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은 그만두기로 했다. 대신 다행히 운 좋게 초기에 발견한 것에 감사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