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당 서울대병원 세침검사, 내가 갑상선암이라니
갑상선암은 착한 암이라고 누가 그래?
갑상선암 진단을 받았던 그날의 기억은 2년이 넘은 지금도 여전히 생생하다.
분당서울대병원에 세침검사 결과를 듣기 위해 갔던 날, 나는 별일 아니겠지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방학이라 집에 있던 큰아이와 함께 병원을 찾았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3차 병원이었기에 그곳에서 검사를 받았지만 사실 갑상선 정밀검사를 받기 전 몇 년간은 이 병원 근처에도 가고 싶지 않았다.
내가 처음 공방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친정아버지 돌아가시고 온 우울증을 어떻게든 떨쳐내기 위해서였다.
아빠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이곳 분당 서울대병원에서 몇 달 동안 여러 번의 고된 개복 수술을 받고 중환자실에서 고생을 정말 많이 하다가 가셨다.
병원 냄새, 지하 보호자 휴게실에서 쪽잠 자며 아빠를 지키던 엄마, 하루 중 면회가 허락되는 단 몇 분이라도 보기 위해 매일 찾아갔던 중환자실에서 나던 냄새, 방금 전까지 숨 쉬던 아빠 얼굴을 흰 천으로 덮던 모습, 복도에서 기절하듯 울며 남편에게 전화했을 때 기억.
잊고 싶어 애써 마음 한쪽에 묻어두었던 그 모든 일이, 병원에 들어서는 순간 바로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떠올랐다.
생각하고 싶지 않아도 이 병원은 자동으로 그때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곳이라 정말 가고 싶지 않았다. 세침검사할 때도 병원에 들어가자마자 몇 년 전 기억이 너무 생생하게 나서 눈물이 날뻔했었는데...
지금 내가 방금 무슨 말을 들은 건지 두 귀를 의심했다.
"갑상선 암입니다."
순간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내가 너무 놀란 표정을 지었기 때문일까. 교수님은 곧바로 자세히 설명해 주셨다.
"다행히 초기에 발견돼 크기가 아직 작습니다. 0.7cm 정도예요. 수술을 바로 진행할 수도 있고, 조금 더 지켜봐도 괜찮습니다."
무슨 말을 먼저 해야 할지 몰랐다. 그냥 머리가 잠시 멈춘 느낌이었다.
차근차근 설명해 주시는 교수님 말씀을 듣고 있다 보니 일단 사이즈에 상관없이 수술하는 게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바로 수술을 원한다고 말씀드렸다.
진료실에서 나와 중증환자 등록하는 방법을 설명 들었다. 하지만 무슨 말인지 제대로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도 지금 잘 들어두지 않으면 다시 와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필요한 것들을 종이에 적었다.
그러는 와중에 당장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진료실 앞 의자에 큰아이가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지금 울면 안된다는 생각에 이를 악물고 울음을 꾹 참았다.
아이를 데리고 중증환자 등록을 위해 병원 곳곳을 돌아다녔다. 아이는 중증환자 등록이 무엇이냐고 이것저것 물어봤는데, 조금 있다가 설명해 주겠다 하고는 그냥 손 꼭 잡고 같이 다녔다.
도중에 남편에게 전화가 왔을 때에도 "조금 있다가 전화할게"라며 끊었다.
모든 등록을 마치고 차에 돌아가는 길에 아이가 놀라지 않도록 최대한 차분하게 설명했다. 아이도 암이라는 소리에 깜짝 놀랐지만, 의사 선생님이 다행히 지금 당장 수술 안 해도 되는 거라고 하더라. 그런데 알면서 그냥 두는 건 찜찜해서 엄마가 그냥 수술하겠다고 한 거라고 잘 설명하자 안심하는 눈치였다.
차에 타서 집으로 가는 길, 아이에게 패드와 이어폰을 건네주며 말했다. "보고 싶은 영상 아무거나 틀어서 봐도 돼." 아이가 영상 보는 모습을 확인한 후, 나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 나 갑상선 암 이래.."
남편에게 한마디 했을 때, 병원에서 내내 참고 있던 눈물이 터졌다.
남편은 설명을 듣고싶어 했지만 눈물이 계속 나오는 그상황에서 더 이야기 할 수가 없었다. 자세한 건 이따 이야기하자며 전화를 끊고 노래를 크게 틀었다.
혹시라도 아이가 들을까 봐, 나는 소리 한 마디 내지 않고 조용히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