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보내는 신호였을까? 대상포진

부제: 그때 쉬었더라면. 더 나를 챙겼더라면 괜찮았을까

by 이몽

공방을 운영하기 시작하면서 바쁘지 않은 날이 없었다. 매일 작업과 수업을 병행했다. 일 끝내고 집에 가면, 다른 워킹맘들과 마찬가지로 쉬는게 쉬는 것이 아니라 다시 집으로 출근하는 것 같았다.


많이 피곤하긴 했지만, 너무 피곤한 날에는 일을 빼고 쉴 수도 있었기에 나름대로 괜찮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이렇게 바쁘게 공방이 잘 돌아가는 것에 감사한 마음도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날개뼈 쪽 윗등이 너무 아파서 잠을 설쳤다. 매일 같은 자세로 작업하다 보니 근육통이 왔나 싶어 여러 가지 안마기를 써보고 찜질도 해봤지만, 통증이 너무 심해 며칠 동안 밤에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그렇게 2~3일 정도 고생하다가, 통증이 너무 심해 하루는 일찍 작업을 마무리하고 친정엄마께 아이들을 맡기고 병원에 갔다. 원래 다니던 정형외과에서 물리치료를 받을까 했지만, 예약을 하지 않으면 최소 1~2시간 이상 대기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병원을 나와 목욕탕으로 향했다. 병원에서 그렇게 오래 기다리기보다는 차라리 오랜만에 몸을 따뜻하게 찜질하고 세신과 마사지를 받으면 통증이 풀리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한참 찜질을 하고 세신 할 순서가 되어 누웠다. 그런데 세신사 분이 내 등을 마사지해주실 때, "혹시 대상포진 난거 아니에요?"라고 물으셨다. 나는 "제가 지금 30대 초반인데 대상포진일 리가요...?"라고 답했다. 그분은 자기가 보기엔 대상포진이 맞는 것 같으니 한번 지켜보라고 말씀해 주셨다.


그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목욕탕에 다녀오면 조금 좋아지지 않을까 생각했던 상태가 점점 나아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아파지는 걸 느껴 불안한 마음에 결국 피부과를 찾았다.


'아닐 거야'라고 생각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간 거였는데, 의사 선생님은 대상포진이 맞다고 하셨다. 보통 50~60대 이상 분들에게 오는 것인 줄만 알았던 대상포진이 생겼다는 것에 적잖이 놀랐다.


그나마 세신사 분 덕에 더 고생 안 하고 빠르게 알 수 있어서 다행이다 싶었다. 그날부터 약을 처방받아서 먹었는데 처음엔 더 넓은 범위로 수포가 번졌다. 원래 처음에 약을 먹자마자 바로 멈추는 것이 아니라 더 번졌다가 가라앉는 것이라고 의사 선생님께서 안심시켜 주셨다. 시간이 지나며 나중에 몸에 난 수포는 다 가라앉았지만 안타깝게도 그게 신경통 후유증으로 넘어가버렸다.


병원에서는 대상포진이 신경통 후유증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흔치 않다며, 나이도 젊은데 왜 이렇게 몸이 약해졌냐고 하셨다. 결국 간질약을 처방받았다. 하지만 통증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몇 군데 통증클리닉을 전전하며 치료를 받아봤지만, 효과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선택한 곳은 분당에 있는 2차 병원 통증클리닉이었다.


계속 치료를 이어가던 어느 날부터인가 내 하루는 아이들 등원 시간과 하원 시간에 잠깐 눈을 뜨는 것뿐이었다. 밥을 차리는 일조차 버거워 대부분 음식을 시켜 먹거나, 친정엄마가 해주신 음식을 데워 아이들에게 먹였다. 아이들 케어도 그야말로 겨우겨우 하는 수준이었다.


아이들이 없는 시간에는 하루 종일 잠만 잤는데도, 저녁 7~8시만 되면 또다시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졸렸다. 그렇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날들이 이어지다 보니, 결국 공방도 잠시 휴업한다는 공지를 올리고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그 힘든 시기 동안, 아이들 때문에 억지로 눈을 뜨고 있어야 할 때도, 머릿속은 늘 멍한 느낌이었다. 분명 눈은 떠있는데, 내가 지금 잠을 자고 있는 건지 깨어 있는 건지조차 모호한 느낌이었다. 머릿속에 짙은 구름이 가득 낀 것처럼 멍하고 흐릿했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상태를 '브레인 포그'라고 부른다고 했다.


두어 달을 그렇게 지내다 문득 '이러다 애들도 어린데 일찍 죽으면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상포진이 처음 왔을 때는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언제부터 이렇게 심해졌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니 2차 병원 통증클리닉에서 약을 처방받았을 때부터 그랬다는 걸 깨달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약 성분을 모두 인터넷에서 찾아봤더니, 놀랍게도 그 약이 암환자 진통제로도 처방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무리 신경통이 심해도 암환자 진통제를 먹을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왜 이걸 처방해 줬지?'라는 생각에 기분이 나빠져 남은 약을 전부 처분했다. 그날 저녁, 정말 오랜만에 남편이 퇴근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남편이 집에 들어오더니 "오늘은 웬일로 깨어있네??!"라며 깜짝 놀라길래, 나는 낮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그날 밤, 정말 오랜만에 11시가 넘도록 잠을 자지 않고 깨어 있을 수 있었다. 그때 확신했다. 내 컨디션이 그렇게까지 나빴던 이유는 마지막에 처방받은 약 때문이었다는 걸.


그때까지는 병원에서 처방해 주면 약 성분을 확인하지 않고 그냥 먹곤 했다. 하지만 이 일을 겪은 후로는 내가 먹는 약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처방받는 약도 어떤 약인지 반드시 확인하고 먹는 습관이 생겼다. 물론 전문가가 처방해 주는 것이니 믿고 먹어야 하는 건 맞지만, 확인해 보고 의문이 드는 부분이 있다면 꼭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아마 이런 일을 겪지 않았다면, 지금도 나는 그냥 주는 대로 받아서 먹었을 거다. 하지만 약이 너무 강하거나 과하면 일상이 무너질 수 있다는 걸 경험하면서, 아무런 확인도 없이 주는 대로 먹는 것은 무책임한 행동이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그 뒤로, 처음 대상포진 때문에 갔던 피부과에 다시 방문했다. 그곳에서 처방해 주는 강도가 약한 약을 먹으며 서서히 회복해 나갔다. 그즈음 난생처음 종합검진을 받아보았는데, 전체적으로 딱히 어디가 안 좋다 하는 특별한 이슈는 없었다. 걱정을 많이 했는데 그래도 참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어느 정도 컨디션이 돌아왔을 때 나는 다시 작업과 수업을 이어나갔다. 다시 할 때는 좀 더 건강을 챙기며 했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이전처럼.

전과 똑같이.


처음 대상포진이 시작되었던 그때가 내 몸이 나에게 보내는 건강의 적신호였던 걸까?

더 이상은 버틸 수 없다고, 내 몸이 나에게 신호를 보냈던 걸까?


아이들의 변화에는 그렇게 민감하게 챙기면서 나 자신에게는 왜 그러지 못했을까.

엄마가 건강하고 행복해야 아이들이랑도 더 좋은 시간 보낼 수 있는 건데, 왜 그랬던 걸까.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니 그때 내 몸이 더는 힘들다고 막 신호를 보냈던 것 같은데, 난 내가 아직 젊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그걸 무시했다. 치료하는 동안 몇 달 동안 쉬었으니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작업을 하고 수업을 하면서도 이전과 같은 생활을 유지했다. 바보같이.


그 흔한 영양제도 매번 까먹고, 운동도 하지 않았다. 건강한 음식을 챙겨 먹으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매일 바쁘다 보니 외식과 배달음식이 주였다. 운동할 시간이 없었다. 일 끝나면 집 가서 애들 챙기기 바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누구도 그렇게 하라고 한 적 없었다.


일주일에 몇 번 만이라도 운동하겠다며 시간을 비운다고 해서 나에게 뭐라고 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직장에 다니는 것이 아니다 보니 내가 마음만 먹었다면 운동할 시간을 충분히 만들 수 있었다. 그저 내가 당장 챙겨야 하는 목록에 '건강'이 없었을 뿐이다.


대상포진이 처음 왔을 때 일을 그만두었다면.

아니면 그때 일을 하더라도 좀 더 내 건강을 챙겨가며 했더라면, 이런 결과는 없었을까?


왜 사람들은 잃고 나서야 그게 소중했다는 것을 깨닫는 걸까?

왜 남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걸까?

왜 나는 안 그럴 거라고 생각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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