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저 평범한 30대 중반의 워킹맘이었다. 두 아이를 키우며 작은 케이크 공방을 운영하고, 매일 수업과 제작에 몰두하며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보냈다. 저녁에는 아이들을 돌보며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일이 너무 많을 때는 잠을 줄이며 작업을 해야 했다. 주말이면 새벽 3시에 출근하곤 했다. 그렇게 끊임없이 일하고 아이들을 챙기느라 내 건강에는 미처 신경을 쓰지 못했다. “아직 젊으니까 괜찮겠지”라고 생각하며.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등이 너무 아파 잠을 설친 적이 있었다. 병원에서 대상포진 진단을 받았고, 그 뒤로는 신경통 후유증까지 겪었다. 그때 잠시 쉬었지만,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곤 했다. 건강을 무시한 내 오만이었다.
큰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즈음, 30분 운전하는 것도 어려울 정도의 피로감에 시달렸다. 이건 그냥 피곤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결국 나는 오랫동안 운영해 온 공방을 내놓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가게를 넘기기로 한 계약서를 쓰던 날, 작업 중에 하나로 묶고 있던 머리카락에 불이 붙었고, 불길이 제법 커서 옷에 구멍을 낼 정도였다. 그날 저녁, 긴 머리를 귀밑까지 짧게 잘라낼 수밖에 없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지만 정말 그만두어야 할 때인가 보다 생각하며 마음을 정리했다.
그런데 가게를 넘긴 지 일주일도 되었을 때 코로나가 터졌다. 어안이 벙벙했다.
코로나 때문에 큰 아이는 1학년 입학하고 1년 동안 학교에 한 달 정도밖에 나가지 못했다. 코로나로 외부 활동을 하지 않고 아이들과 집에 있었다. 계속 집에서 쉬는동안 컨디션이 조금 나아져 다시 일을 조금씩 시작했다. 1년정도 쯤 지났을 때 다시 컨디션이 나빠져 건강검진을 받았다. 건강검진에서 2년 전 검진 때는 없던 갑상선에 결절이 발견되었다. 정밀검사를 받아보라는 의사의 소견을 받았다.
분당 서울대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았고, 결과를 들으러 간 날,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집에 있던 큰아이를 데리고 갔다. 그때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결과는 ‘갑상선 암’이었다.
그 후, 코로나로 인해 수술이 한차례 연기되고 여러 우여곡절 끝에 분당 서울대병원에서 로봇수술을 받게 되었다. 그렇게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나에게는 그 어느 때보다 길게 느껴졌다. 하루하루 피가 마르는 것 같았다.
수술 후에도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기까지 컨디션 회복이 쉽지 않았다. 사람들은 쉽게 이야기하지만 직접 겪어본 갑상선암은 그렇게 만만한 암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조금씩 나아지기 위해 노렸했다. 지금은 매년 정기검진을 받고, 건강해지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하고있다. 덕분에 수술 후 2년 가까이 호르몬 약을 복용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컨디션이 좋아졌다.
다시 공방을 운영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해 지금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아이들을 케어하고, 운동을 다니고, 주말에는 여행도 다니며 평범한 일상에 감사하며 살고 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괴로워했던 날들이 있었다. 너무 막막해서 인터넷에서 이런저런 글을 찾아보기도 했지만,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 그 경험 덕분에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되었다. 내 몸을 더 소중히 여기고 가족들 건강에도 더 신경 쓸 수 있게 되었다.
처음 갑상선암 판정을 받았을 때, 나조차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래서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는 가까운 지인들과 가족 몇 명에게만 이야기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그 모든 과정을 겪어낸 지금은, 이제는 덤덤하게 그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갑상선 암 수술 전후로 겪은 모든 일들, 그리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기까지의 과정을 나누고자 한다.
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와 희망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