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공방을 정리했다.
내 몸을 스스로 챙기지 않은 결과.
참 어리석게도, 대상포진으로 힘든 시기를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종합검진 결과가 괜찮게 나오고 컨디션이 조금씩 회복되자마자 다시 예전 생활 패턴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가장 큰 이유는 '바빠서'라고 스스로 변명했지만, 솔직히 돌아보면 그보다는 '귀찮아서'가 더 큰 이유가 아니었나 싶다.
오늘 처리해야 할 일이 있고, 내일 마감할 작업이 쌓여 있고, 수업도 해야 하고, 퇴근 후엔 아이들 챙겨야 하고, 토요일엔 새벽부터 출근해야 하고, 일요일엔 아이들과 나들이라도 가야 하고….
눈앞에 당장 해치워야 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보니, 내 몸 상태까지 신경 쓰지 못했다.
몸이 힘들다고 이렇게 신호를 보냈으면 일을 줄이거나 뭔가 대책을 세웠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런 와중에 하루하루 다이어리에 빼곡히 적힌 일정을 들여다보면, 몸은 힘들어도 가끔은 뿌듯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나 이렇게 열심히 살고 있구나.'
그게 내 건강을 조금씩 갉아먹고 있는 줄도 몰랐다. 남들도 다 이렇게 바쁘게 산다고 생각하면서.
아이들 챙기는 일에는 최선을 다했지만 정작 내 건강은 늘 뒷전으로 미뤘다. 검진 결과에서도 괜찮았으니까. 앞으로도 괜찮을거라는 막연한 믿음 속에서, 스스로를 또다시 소홀히 대했다.
그렇게 몇 달 뒤, 다시 몸 상태가 나빠지기 시작했다. 30분도 운전하기 어려울 만큼 피로감이 몰려왔다.
나는 그 상태를 항상 "전원이 꺼지는 느낌"이라고 표현했는데, 그런 느낌이 들 때 조금이라도 잠을 자지 않으면 곧바로 심한 두통이 찾아왔다. 이어서 컨디션이 급격히 나빠져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곤 했다.
지난번 대상포진이 찾아왔을 때는 그저 너무 아프고 또 아플 뿐이었지만, 이번에는 그때와는 분명히 다른 느낌이었다.
그때는 근육통처럼 너무 아파서 잠을 못 잘 정도의 통증이었다면, 이번에는 완전히 다른 양상이었다.
해일처럼 밀려오는 피로감에 눈이 저절로 감겼고, 그 잠을 참으려 하면 두통이 시작되었다. 이어서 눈두덩이나 눈 아래에 경련이 오고, 눈이 건조하고 따가운 느낌 때문에 제대로 눈을 뜨고 있기도 어려웠다.
나중에서야 알았지만, 그것이 갑상선암의 증상이었던 것 같다. 정말로 일상생활을 이어가기 어려울 정도로 엄청난 피로감이었다.
이렇게까지 피곤할 수 있나 싶을 정도로 힘들던 그 시기에, 몇 달 뒤 큰아이 초등학교 입학까지 앞두고 있었다. 원래는 아이들이 학교에 입학한 이후에도 계속 일을 이어 갈 생각이었지만, 몸 상태가 점점 더 나빠지면서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아무리 전날 일찍 잠을 자고 충분히 쉰다고 해도, 20~30분 운전하는 것조차 힘겹게 느껴지는 일이 매일 반복되었다.
도저히 이렇게는 안 되겠다 싶었다. 고민 끝에 공방을 통째로 인수할 사람을 한 번 찾아보고,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넘기고,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든 계속 운영해 보자고 마음을 먹었다.
그렇게 결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생각보다 빠르게 공방을 통째로 인수하겠다는 분이 나타났다.
그동안 정말 최선을 다했는데, 아무래도 이제는 잠시 쉬라는 뜻인가 보다 하고 마음을 접었다. 시원섭섭한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잠시 다른 이야기지만, 이 시기에 정말 소름 끼치는 일이 있었다.
공방을 통째로 넘기기로 하고, 인수자와 임대인이 계약서를 쓰러 간 짧은 사이에 작업 중 내 머리카락에 불이 붙은 것이다.
시럽을 만들기 위해 가스레인지에서 작업을 하던 중에 불이 붙었던 모양이다. 한참 일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단백질이 타는 냄새가 공방 안에 진동을 했다.
"뭐지?" 싶어 살펴보니, 하나로 묶어 둔 내 머리 뒤쪽에서 불길이 활활 타오르며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너무 놀란 나는 급히 물을 끼얹어 머리에 붙은 불을 껐다. 하지만 이미 단백질 타는 냄새가 공방에 가득 퍼져 있었고, 불에 탄 머리카락을 가위로 덩어리째 잘라낼 수밖에 없었다.
일단 급한 마음에 뭉탱이로 잘라냈던 머리카락 중 일부
일을 마치고 미용실에 가서 상태를 확인해 보니, 머리는 이미 엉망이었다. 가슴 밑까지 길게 내려오던 긴 머리를 완전 단발로 잘라야 했다.
집에 돌아와 확인해 보니 옷 뒷부분도 많이 녹아 있었다. 손가락 몇 개가 들어갈 정도로 큰 구멍이 나 있어서 다치지 않은 것이 정말 다행이었다.
'정말 다 그만두라는 건가.' 별별 생각이 다 들었지만, 흔치 않은 해프닝 정도로 여기고 넘어갔다.
그날 계약을 마치고, 며칠 안에 가게를 비워주기로 했다. 그동안 받아 놓은 주문과 수업을 마무리하며, 하나부터 열까지 내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던 정든 공간에서 나왔다. 정말 아쉬웠지만, 당분간은 좀 쉬어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대략 일주일 뒤, 코로나 3번 확진자 사건이 터졌다.
아마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1번과 2번 확진자는 큰 이슈를 일으키지 않았던 반면, 3번 확진자는 온 사방을 돌아다니며 코로나 확산에 큰 영향을 미쳤던 사람이다.
그 사건 이후로 코로나가 급격히 퍼지기 시작했다. 학교는 문을 닫았고, 큰아이는 초등학교 입학식도 하지 못하고 1학년 한 해 동안 학교에 30일도 채 가지 못했다.
그렇게 아이들이 학교와 어린이집에 등교하지 못하게 되면서 반 강제로 집콕생활을 시작했다.
집에 있는 몇 달 동안 그래도 컨디션이 많이 좋아졌다. 이때도 그대로 쉬었어야 했는데... 계속해서 이어지는 주문 문의에 자꾸만 마음이 아쉬워졌다.
이 정도 컨디션이면 다시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할 즈음, 운 좋게 마음이 맞는 다른 케이크 공방을 운영하시는 분과 공방 셰어를 할 수 있었다.
코로나 때문에 수업은 더 이상 하지 않고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며 주문제작을 이어나갔다. 그렇게 1년 이상 운영하던 중 함께 하시던 선생님이 지방으로 내려가게 되셨다.
그때 그 공방을 통째로 인수할 의사가 있는지 물어보셨는데, 그즈음 나는 다시 세 번째 컨디션난조에 시달리고 있어서 공방을 인수하지 않기로 했다.
이 때는 대상포진이 왔을 즈음 첫 종합검진을 받은 지 2년 조금 넘었을 때였다. 한동안 집에서 쉬며 나아졌던 컨디션이 다시 일을 시작하면서 또다시 나빠졌다.
다시금 전원이 꺼지는 듯한 피로감이 반복되자, 결국 공방 셰어를 끝내고 곧바로 두번째 건강검진을 받았다.
검진 결과, 처음 받았을 때는 없었던 갑상선 결절이 발견되어 정밀검사를 받아보라는 소견서를 받았다.
그때까지 만해도 '그냥 별거 아니겠지'라는 생각으로 집에서 가까운 분당 서울대병원에서 세침 정밀검사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