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원 원장의 좌충우돌 브런치 입문기
여러분 모두가 각자, 브런치를 시작한 계기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나에게도 그런 계기가 있었다. 내가 브런치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참외, 그러니까 정확히는 참외 판매 때문이었다.
이 무슨 어이없는 소리야? 하실 독자님들을 위해 지난 이야기를 좀 더 풀어보도록 하겠다.
고시원 사업을 시작하고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만들었던 나는 또 다른 도전에 목말라 있었다. 그것은 바로 스마트 스토어 사업이었다!
하루 2시간 월 1천만원을 벌 수 있다고 나를 현혹했던 고시원 사업처럼, 스마트 스토어 또한 하루 한 두시간만 꾸준히 투자하면 돈을 벌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야심차게 시작한 것이 바로 참외판매였다. 고급스런 말로 온라인 ‘과일 위탁 판매 사업’이 되시겠다. 언제나 그렇듯 유튜브에서는 이걸로 돈을 벌었다는 성공 사례들이 넘쳐나고 있었다.
뭐든지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탓에 일단 한 번 도전해보기로했다. 약 한달 간 준비하여 참외 공급 업체(농장, 과일 유통사, 경매사 등등)를 소싱하고, 상세페이지를 만들고, 상품 등록, 마케팅/판매, 발송 관리, CS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을 혼자서 하나씩 해냈다.
그리고 첫달 매출은 정확히 약 300만원이었다. 마진률은 15% 내외 였다. 한달을 미친듯 고생해서 상품을 팔았는데 내 손에 쥐어진 돈은 50만 원 남짓이었다.
지인들은 첫 달 매출이 300만원이 나왔다는 것은 굉장히 고무적인 일이라고 했다. 대단하다고도 말해줬다. 그러나 나는 어딘가 모르게 공허하고, 속상하고, 이 일을 지속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마찬가지로 고시원 사업 또한 준비 기간이 길었고 안정화 하는데도 꽤 많은 노력이 필요했지만, 그때는 그래도 뭔가 다른 흥분됨이 있었다.
하지만 온라인 참외 판매는 그렇지 않았다. 하는 과정도 괴롭고, 참외를 팔아도 기쁘지 않았고, 참외를 맛있게 먹어 즐겁다는 후기를 봐도 그닥 행복하지 않았다.
그 때, 나는 어렴풋이 깨달았다. 이 일은 내가 좋아하는 류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다른 사람들의 말처럼 첫 판매 성적이 나쁘지 않았으니 조금만 더 노력하면 매출도 금방 올리고 돈도 벌 수 있을것도 같았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
그 때부터 나는 돈 보다 중요한 일의 가치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분명 참외를 팔아서 장사가 잘되면 마냥 좋을 줄 알았는데 내 마음은 왜 이런 것일까? 제 아무리 편하고, 돈을 많이 벌고,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고 한들 스스로 ‘재미‘와 ’가치‘를 느끼지 못하면 소용 없는 것이라는 걸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 날부터 나는 온통 이 고민에 빠졌다.
- 도대체 내가 좋아하는 일은 무엇이란 말인가?
- 좋아하는 일로는 돈을 벌 수 없을까?
- 나는 언제 즐거움과 보람을 느끼는가?
그 때 문득 글쓰기가 떠올랐다. 누가 등 떠민것도 아닌데 매일 같이 글을 쓰고 댓글 하나에 울고 웃는 나는 분명 글쓰기를 꽤 좋아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지금 당장 돈도 안되고 남들은 힘들고 귀찮다는 글쓰기를 어떻게 이렇게 군소리 없이 꾸준히 할 수 있단 말인가!! (여러분이 만약 매일 자청해서 글을 쓰고 있다면, 기억하라. 여러분은 분명 글쓰기를 좋아하는 것이다.)
사뭇 진지하게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나는 글쓰기의 어떤 구석이 좋은 걸까?
1. 글쓰기는 효율적이다.
그렇다. 글쓰기는 사진이나 영상에 비하면 정말 효율적이다. 머리와 손가락만 있으면 된다.
2.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다.
펜이 없으면, 모바일에, 모바일이 없으면 노트북에. 정말 언제 어디서든지 글을 쓸 수 있다. 이런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음은 직장생활에만 갇혀 있던 나에게 묘한 해방감을 선사했다.
3. 무자본이다.
고시원 사업은 억대가 들었고, 참외팔이는 몇 십만원이 들었다. 하지만 글쓰기는 정말로 0원으로 시작할 수 있다. 그만큼 가볍게 시작할 수 있고, 리스크도 없다. 꾸준히 할 수 있는 의지가 가장 큰 리스크이긴 하지만 말이다.
4. 쓰다 보면 스스로를 더 잘 알게된다.
글을 쓰다 보면 생각이 정리된다. 생각이 정리 되면 몰랐던 나 자신을 알게 되고, 더 잘 살필 수 있게 된다.
5. 나를 더 잘 알게 되니, 성장하게 된다.
스스로에 대해서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알게된다. 그러면 진정한 앎이 시작된다. 내가 모르는 것을 더 배울 수 있고 결국 성장할 수 밖에 없다.
6. 타인과 깊이 연결된다.
온라인에 쓴 나의 글들은 사람들과 교감하는 창구가 된다. 나는 글쓰기가 말을 건네는 것이라는 말에 깊이 공감한다. 나의 글은 언제 어디서나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그들과 깊이 연결될 수 있다.
7. 심지어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
그렇게 누군가에게 연결되기 시작하면, 어떤 이에게는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준다. 좋은 글을 쓰면 좋은 변화를 만들고, 나쁜 글을 쓰면 나쁜 변화를 만든다. 그러니 나는 늘 좋은 글을 쓸 수 밖에.
8. 그저 두근거리고 설레인다!
그렇게 효율적이고 자유롭게 나래를 펼친 나의 글이 세상에 나서 누군가에게 연결되고, 용기를 주고, 변화를 준다는 생각을 하면 심장이 떨린다. 이것에 가치는 너무나도 크다.
알고보니 나는 글을 좋아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왜 나는 지금까지
글을 좋아하고 있음을 몰랐던 것일까.
고시원을 하기 전까지는 몰랐다. 내가 누군가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마음을 나누는 업에 보람을 느낀다는 것을. 참외를 팔기 전에는 몰랐다. 모니터 앞에 앉아서 단순 상품을 팔거나 유통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다는것을 말이다. 마찬가지로 글을 써보기 전에는 몰랐다.
이유는 이처럼 간단했다. 그 동안은 써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른 중반이 훌쩍 넘어 마흔을 향해 달려가도록 나는 글쓰기를 제대로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 내가 1년 넘게 글을 꾸준히 쓰고 나서야, 내가 좋아하는게 무엇인지 알게 된 것이다.
그 길로 나는 블로그 보다 좀 더 본격적인 글을 써보고 싶은 마음으로 브런치스토리에 지원하게 되었다.
블로그에서 고시원 창업 정보나 소소한 에피소드를 재미로 쓰던 '고시원 사업하는 n잡러 워킹맘 블로거'는 좋아하는 일을 찾아 글쓰기를 하기로 결심하고 브런치 작가가 된 것이다! 이게 다 참외 때문이다.
무엇이든 해보자, 그리고 이왕이면 글을 써보자.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어쩌면 글쓰기가 천직일지도 모르니 말이다.
- 브런치에서 고시원 원장 이야기로 에세이를 쓰다 브런치 독자의 사랑으로 출간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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