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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냥이 Nov 09. 2023

마흔, 백수가 되었다.

마흔. 

사십이 되던 그 해 나는 다르게 살아보기로 했다.     


어린 나이에 결혼을 했다. 스물 다섯이었다. 대학을 갓 졸업한 그 해 가족을 떠나 아무도 없는 곳으로 왔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낯선 도시의 삶은 마치 여행 같았고, 어색했다. 맘 붙일 곳은 내 가족 뿐이었다. 남편 그리고 아이들이 나에겐 세상이고 우주였다.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던 남편은 늘 술과 가까웠다. 일주일이면 5일을 늦게 돌아오는 남편을 기다리며, 아이 둘을 키웠다. 주말이면 일박 이일 낚시를 다니던 그 사람은 결혼 전과 같아 보였다. 일과 육아에 지쳐 쓰러질 것 같던 날들이 부지기수였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원래 부모란 그런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기억 속의 부모님은 항상 일을 하고 계셨다. 한 달에 2번 쉬는 일요일엔 우리를 데리고 소풍을 다녀오시거나 다 함께 대청소를 했다. 분명 잠이 부족하셨을 것이다. 내 시간이 전혀 없는 날들 속에서도 부모님들은 항상 웃음을 잃지 않으셨고 그 안에서 안심하며 자랄 수 있었다.      


주 5일 일했던 나는 주말이 되면 쉬고 싶었다. 부모님이 우리에게 해 주신 만큼 해낼 자신이 없었다. 토요일 하루를 잠으로 보내는 동안 아이들은 저희들끼리 놀아야 했다. 미안했다. 일요일엔 아이 둘을 데리고 무작정 출발했다. 엄청난 에너지를 가진 활동적인 엄마는 아니었지만, 최선을 다했다. 


카페에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서점에 들러 책 한 권씩 사는 정도였다. 가끔 영화를 보기도 했는데, 아이들만 들여보내고 커피 한잔하며 쉬던 기억이 난다. 힘든 날들이었지만 그 안에서 최선을 다했던 우리들. 아이들과 나는 그렇게 삶을 만들어왔다.     


아침에 아이들 등교 준비를 하고, 서둘러 청소와 빨래를 한 뒤 출근 준비를 했다. 3, 4 시간 남짓한 시간이 주어졌고, 미친 듯 뛰어다녔다. 죽을 듯 힘든 날들이 이어졌다. 그때 마다 나를 다시 뛰게 만들었던 건 아이들이었다. 시간은 흐르고 있었고, 아이들은 자라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시간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아이들을 잘 키우면서 내 일도 완벽하게 해낼 수 있을까 고민하하면서 커리어를 만들어가는 30대를 보내며 나의 40대는 꽤 마음에 들거라 생각했다.   


2019년 5월 나는 드디어 마흔이 될 터였다. 그렇게 기다리던 마흔. 마흔이 되면 내 생활은 안정되어 있고, 내 일에 전문가가 되어 있어야 했다. 하지만, 늘 그렇듯 현실은 계획과 일지 하지 않는다. 나는 여전히 30대의 우왕좌왕하는 그 모습으로 일을 하고 아이들을 돌보고 있었다. 불안했다. 생일을 3개월 앞둔 어느 날 죽을 것 같은 공포를 느꼈다. 식은땀이 나고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곧 쓰러지고 심장이 멈출 것 같은 압박. 공황장애였다.      


숨이 막히고 곧 쓰러질 것 같은 경험을 한 후, 처음 보는 사람과 마주하는 것은 죽을듯한 경험을 다시 하는 고통이었다. 1월과 2월은 학년이 바뀌기 직전이다. 새 학년이 되면 새로운 학원에 보내볼까 하는 부모님들이 학원 상담을 도는 시기다. 매일 걸려오는 문의 전화와 상담예약에 춤을 춰야 하는데, 두려움에 손이 덜덜 떨릴 뿐이었다. 말을 제대로 못 하면 어쩌지. 입술이 말라  붙어버리면 어떡하기. 걱정이 이어졌다.     


심리상담을 받기 시작했고, 아주 오랫동안 응어리진 답답함이 터져 나오는 중임을 알게 되었다. 결혼과 시댁이라는 굴레 안에서 뱅뱅 돌아야 했던 '나'는 무기력해졌고, 타협했다. 나답지 않은 하루를 행복한 척 포장하며 악바리로 버텨 오던 중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내가 정했던 '마흔'이라는 숫자를 만나며 그 힘이 사라진 것이다.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었다. 


급히 학원을 양도했다.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처음엔 아주 가까운 친구들을 잠깐씩 보기도 했는데, 여전히 새로운 식당에 가야 했고 곧 쓰러질듯 한 경험이 이어졌다. 한 달을 집에 숨어 지냈다. 책을 읽고 낮잠을 자고, 퀭한 눈으로 인터넷을 떠돌았다.      


갑자기 찾아온 불안과 모든 일에 실패했다는 우울함, 앞으로 내 인생은 망하게 될 거라는 불안에 내 삶을 통제할 수 없던 그때, 하루를 기록하고 일주일을 계획하고 내 인생의 방향을 글로 남겼다. 그 과정에서 알게 된 것이 있다. 나다운 모습을 많이 포기하며 살아온 것 같았지만 완전히 포기하진 않았단 사실이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었고 내가 가고자 하는 길에서 아주 멀리 벗어나 있진 않았다. 내 삶을 조금만 리모델링하면, 내 생긴 모습 그대로 즐겁게 살아갈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그 해 가을 나는 새로운 일, 강의를 시작한다.      


이제부터 나의 결혼, 이혼, 그리고 일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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