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는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이를 늘 찾고 있다.
호흡곤란 증상을 호소하는 심장질환 환자가 입원했다. 평소 환자는 일주일에 3번씩 투석을 받는 환자였는데 가지고 있던 부정맥이 재발해 증상이 심해졌고 우리 병동으로 입원하면서 부정맥을 치료하는 시술을 받게 되었다. 시술을 마친 뒤 심전도 모니터링을 위해 준중환자실에 입실하고 있던 그녀는 증상이 호전되어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병실 라운딩을 돌면서 오늘 맡은 환자들을 한 명 한 명 파악하고 있었는데, 마침내 그녀 앞에 서서 자신을 소개한 뒤 전반적인 상태에 대해 체크하기 시작했다.
여느 환자들처럼 친근하게 다가가서 컨디션에 대해 물었고 환자는 필요한 질문에 대해 답도 하고 눈을 마주치며 이야기했지만, 환자와의 라포를 형성하기 위해 던지는 칭찬과 농담에 대해 한편으로는 상대에 대한 기대도 없는 사람처럼 필요한 것만 말했다.
“환자분, 오늘 컨디션은 어떠세요?”
“시술하기 전보다 그래도 나은 거 같아요. 내가 여기 많이 와봐서 알거든.
내 느낌에 치료가 잘되고 있는 거 같아.”
“오 그래요? 안 그래도 투석까지 받고 있는데 많이 힘드셨겠어요.
저 같으면 매번 투석 4시간 동안 받는 거 쉽지 않았을 거 같은데, 대단하세요~!
어지럽거나 숨차지는 않으세요?”
“아뇨. 그런 증상은 없었어요.”
환자는 자신의 대답이 끝나면 바로 시선을 돌렸기에, 환자와 라포를 형성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더 이상 대화를 이어 나가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 환자를 매번 찾아갈 때마다 그녀의 반응과 상관없이 똑같이 환자의 상태와 관계적인 대화를 조금씩 덧붙였고, 따뜻하게 대하려고 노력했다.
(왜냐하면 나는 사람을 좋아하는 ENFP라서 자석에 이끌리는 것처럼 나도 모르는 사이
관계적인 대화를 하고 있다.ㅋㅋㅋ)
다음날 오후, 이브닝 근무번으로 출근해서 여느 때처럼 다른 환자들의 상태를 한 명씩 확인한 뒤, 그녀가 있는 자리로 갔다. 환자는 침상에 앉아서 폰으로 어떤 수채화 하나를 보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녀의 팔에 혈압계를 감으면서 대화를 시작했다.
“어머~~ 환자분 꽃그림이네요~! 너무 예뻐요~”
“그렇지? 이거 내가 그린 그림이에요.”
“우와~! 어떻게 그림을 이렇게 잘 그리세요~?
꽃잎 하나하나가 엄청 섬세하고 색도 딱 잘 어울리게 입혀놨네요~! 너무 멋져요!”
“아 그런가? 그렇게 또 칭찬을 해주니까 다른 걸 안 보여 줄 수가 없네~
사실 저는 네이버로 활동하고 있는, 협회에 등록된 화가예요. 이거 보세요.”
한껏 신난 나머지 자신의 다른 그림들도 하나씩 보여주는 환자.
그림을 좋아하는 나로서, 그녀의 작품들을 보면서 구체적인 요소를 하나하나 짚어가면서 진심으로 칭찬을 이어갔다. 진심으로 반응해 주는 내가 신기했는지 환자는 금세 사탕을 받아 신난 아이처럼 연신 자신의 이야기를 해나갔다. 자신이 원래 투석하고 있던 병원이 있었는데 왜 우리 병원으로 오게 되었는지, 자신이 왜 투석을 하고 있는 사실을 자녀들에게 알리지 않고 혼자서 견뎌왔는지, 자신의 심정은 어떠한지 등등. 이렇게 말이 많으신 분이었나 싶었을 정도로 환자는 자신의 이야기들을 쭉 내 앞에 풀어내고 있었고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한 사람의 인생에 대해 알아가는 것 같아서 뭔가 모르게 가슴이 벅찬 나머지, 어느새 내가 들고 있는 환자 차트를 뒤집어 놓고 흥미롭게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반응하고 있었다.
“와. 내가 이런 걸 또 다 선생님한테 이야기하고 있네.
내가 또 바쁜 사람 붙잡고 이렇게 얘기하고 있는 거 아닌가 몰라.
내가 병원생활 많이 해봐서 알거든. 간호사들 바쁘잖아”
“아니에요~ 저는 어머니 이야기 들으면서 한 개인의 삶을 알아가는 거 같아서 너무 좋아요.
정말 대단하세요. 투석이라는 그 힘든 걸 이렇게 견뎌오신 걸 보면.
그러면서도 본인이 하고 싶어 하는 그림 그리는 일을 꾸준히 이어가시는 것도요.”
“아 그런가? 내 앞에 아무리 많은 간호사가 지나가더라도 이렇게 내 이야기를
이렇게 끝까지 들어주는 사람은 없더라고.”
마치 그런 사람을 기다렸지만 어느샌가 포기했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는 환자.
나는 그렇게 말하는 환자를 보며 참 많은 감정이 오갔던 것 같다. 바빠서 환자의 얼굴을 바라보고 이야기할 수 없는 간호사의 상황도 이해가 되고, 자신의 몸상태보다는 진심으로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한 환자의 마음도 이해가 가고.. 그래서 나는 그런 환자의 힘없는 손을 잡고 환자를 토닥이며 옆에 한참을 있어주었다. 이럴 때면 정말 내 몸이 3개였으면 좋겠다.
하나는 환자의 치료에 발 빠르게 뛰어다니는 사람,
다른 하나는 잠깐이라도 밥을 여유롭게 먹고 쉬는 사람,
또 하나는 환자와 눈을 마주치며 마음 다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
나는 누가 뭐래도 감정형인 사람이다.
물론 사람을 이렇다 저렇다 나누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지만 주로 사고보다는 감정이 앞서는 사람인 것은 확실한 거 같다. 그래서 때로는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적재적소에 발 빠르게 대처하는 사고형 사람들을 많이 부러워했었다. 그리고 그들처럼 되기 위해 노력한 적도 많았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원래 사고형인 사람들이 하는 것에 비하면 차이가 나기 마련이듯이, 사고형 사람들이 잘 안 돼서 노력하고 있는 부분을 힘들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해나가고 있는 나를 보면 사고형에 대한 부러움들이 누그러들곤 한다.
그중 하나가 다른 사람과 자연스럽게 진심이 오가는 관계를 맺어가는 것이다.
림프종으로 입원한 한 중년의 남성이 입원했다.
온몸이 퉁퉁 붓고 호흡곤란과 발열, 의식 혼돈까지 있어 환자의 케어가 여간 쉽지 않았다. 처음 이 환자가 우리 병동에 왔을 때 의식 혼돈으로 대화도 잘 안되고 알 수 없는 말들을 하면서 밤새 수면을 취하지 않아 보호자는 물론 담당 간호사들도 골치 아파했었다. 사실 처음 이 환자를 봤을 때 환자가 며칠간 해열제를 계속 투여해도 열이 지속되고 호흡곤란도 호소해서 바빠서 뛰어다니는 데, 자꾸만 나의 질문에 동문서답하는 환자를 보고 답답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는 나의 환자이고 나는 그의 담당간호사이기에 짜증을 내서도 안되었고,
어쩔 수 없는 상황에 힘 빼지 말자고 생각해서 환자의 헛소리에 그저 재미있게 반응하며 맞장구를 쳐 주기로 했다.
“환자분, 여기가 어디예요?”
“여기 제주도.”
“여기가 제주도라고요? 제주도면 참~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여긴 병원이에요.”
“병원이라고? 요즘은 결혼식 때 밥 안 먹고 가면 뭐 따로 줍니까?”
“네? 갑자기 결혼식을 물어보시네요?
아버님 요즘은 밥 안 먹고 가도 비누나 수건같이 조그마한 선물 같은 거 나눠주기로 해요~”
“우리 딸이 결혼식 하는데 그냥 물어봤어요.”
대화가 되고 있는 건지 아닌지 잘 모르겠을 혼란상태의 환자. 그렇게 열심히 항생제를 비롯한 약물 치료를 한 지 2주가 다되어갔지만 환자의 상태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며칠만 입원하면 금방 나아질 거라고 믿었던 보호자도 하루종일 환자를 케어하다가 몸이 안 좋아지고 말았다. 매번 환자의 자리로 가서 보호자를 볼 때면 안쓰러운 마음도 들고 환자뿐만 아니라 보호자를 케어하는 것도 간호사의 역할이라는 생각이 참 많이 들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조금이라도 나아지고 있는 환자상태를 보호자에게 인식시켜주고 싶어서 일부러 짚어서 이야기하곤 했다.
“환자분, 여기가 어디예요?”
“여기 음… 남천동”
“우와~! 제주도에서 남천동까지 올라왔네요!
이야~~ 조금만 더하면 여기 해운대까지 오겠는데요?”
“여기 남천동 아닌가?”
“여기 해운대에 있는 병원이에요. 아버님 혹시 몸이 춥거나 떨리진 않으세요?”
“그런 건 지금 없어요.”
“오오~ 이제 열 나는 횟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네요~ 괜찮아지고 있나 봐요 환자분~”
이런 이야기를 할 때마다 보호자는 허리가 아파 누워있다가도 희망 한 움큼을 품은 눈으로 바라보곤 했다.
그렇게 한 달간 입원했을 때쯤 온몸이 부어 누워있기만 한 환자는 걸어 다니는 재활치료를 받기 시작했고,
산소를 투여하지 않아도 호흡곤란을 호소하지 않을 상태가 되었다. 내 눈으로 이 환자의 나아지는 경과를 보면서 감탄한 나머지 볼 때마다 엄지를 치켜세우며 최고라고 칭찬했고, 함께 있던 보호자도 자신도 믿기지 않는다며 나와 함께 매일매일 놀라곤 했다. 정말 내과 병동에서 일하다 보면 오래 입원할 것 같이 보였던 환자가 나아지는 경과를 보게 되는데, 이게 그렇게 가슴 벅찬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느 날은 그 환자가 속한 병실이 아닌 다른 병실의 환자들을 보고 있었는데, 여느 때처럼 바쁘게 복도를 오가며 근무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보호자처럼 보이는 한 분이 복도를 두리번두리번 거리며 무언가 찾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그 중년 남자 환자의 보호자였다.
“저 보호자분, 뭐 필요한 거 있으세요?”
“오 선생님! 안 그래도 선생님 찾고 있었어요. 우리 아저씨가 조금 있으면 퇴원하는데,
자꾸만 선생님한테 뭐 좀 챙겨주라고 해서. 제일 고마운 선생님이라고.”
라며 내 손에 비닐봉지를 쥐어주셨다. 그 안에는 과일모둠과 커피가 들어있었다.
혼란 상태로 나와 대화조차 잘 되지 않은 상태의 환자가 나를 기억할 거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는데..
환자가 나와 대화 나눈 것을 기억하고 고맙다며 보호자에게 감사의 표시를 해달라고 한 것이 아닌가..!
선물이 뭐가 됐든 난 이미 그 마음 하나만으로 가득 차서 연신 내 동료들에게 자랑하고 다녔다.
참 간호사로 일하기 잘했다고 생각이 드는 뿌듯하고 감사한 순간이었다.
나는 이렇게 환자와 마음을 나누는 순간들이 참 좋다.
이외에도 꽤 까다롭게 군다고 알려진 환자와 보호자들도 이야기를 들어주고 진심으로 공감해 주며 반응했더니 나에게 고맙다고 하면서 "선생님이 제일 좋아요."라는 말을 해줄 때가 많았다. 칭찬하는 글들을 하나씩 써주시거나 다른 선생님들과 나눠먹으라며 거하게 간식들을 챙겨주시거나 아니면 손을 잡으며 진심으로 응원의 메시지를 주시는 환자와 보호자분들을 보면서, '늘 바빠서 제대로 못해준 것이 미안하게만 느껴지지만 어떻게든 환자분들에게 잘해주고 싶어 하는 내 진심이 전해진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의 진심은 어떻게든 전해지게 되어있나 보다. 발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 비록 한걸음 느리더라도, 다른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는 관계를 자연스럽게 해 나가는 내가 더 좋아지는 순간이다.
간담도암 4기로 입원한 한 여성환자.
다른 대학병원에서 희망이 없다고 4개월이라는 시한부 선고를 받고 남은 치료를 위해 우리 병원에 온 환자였다. 나는 처음 이 환자의 차트를 봤을 때 이미 간담도로 시작된 암이 온몸에 전이된 상태이며 환자의 컨디션이 언제든지 갑자기 나빠질 수 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환자를 보러 가기 전 문 앞에 섰을 때, 환자가 요구할 만한 것들이나 환자의 모습이 어느 정도 머릿속으로 그려진 상태로 환자를 대하려고 했다.
똑똑똑.
내 눈앞엔 온몸에 황달 증상이 보이는, 복수로 배가 볼록해진 한 중년의 환자가 누워있다. 간호사가 들어와도 환자는 천장을 바라보며 눈을 깜빡이고 있었고, 나는 환자의 팔에 혈압계를 감고 투여되고 있는 약물들을 확인하며 대화를 시도했다.
“환자분, 오늘 컨디션은 좀 어떠세요?”
“어제 입원할 때에 비해서 황달이 조금은 줄어든 거 같아요. 숨도 덜 차고”
“배가 아프거나 붓는 느낌은 없던가요?”
“네, 통증은 아직까지는 견딜만한 거 같아요.”
그렇게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고 돌아서려는 순간, 나는 그녀의 눈을 보고 깜짝 놀랐다. 4기로 진단받고 누워있을 환자에게서 보기 힘든 반짝거리는, 희망에 가득 차보이는 눈동자였다. 환자에게는 뭔가 지금 현재의 불편함을 해소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는 것 같다는 눈빛이었다. 그래서 나는 간호사실로 돌아가려는 발걸음을 멈추고 환자에게 물었다.
“와, 환자분 아까는 제가 환자분 상태를 확인하느라 자세히 못 봤었는데,
눈이 참 예쁘시네요~ 그리고 눈빛에도 엄청 힘이 있어 보여요.
보통 환자분처럼 비슷한 경우에 있는 분들을 보면 힘없이 축 쳐진 채로 있는 분들이 많은데
환자분은 오히려 안색이 더 좋아 보여요.”
나의 말에 그녀는 놀란 듯이 쳐다보며 말했다.
“아 그래요? 사실 선생님, 저는요. 제가 지금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어떤 점이 감사하게 느껴지세요?”
“저는 제가 여기 오기 전에 처음 들렸던 병원에서 얼마 못 살 거라고 얘기 들었거든요.
기껏해야 3-4개월 정도라고 하면서 거기서는 더 이상 치료해 줄 것이 없다면서 포기했었던 상태라서
너무 절망적이었는데, 여기 병원 응급실에서 만난 종양학과 교수님은 더 오래 살 수 있다고,
반드시 낫게 해 주겠다고 하셔서 희망을 걸고 왔어요.
다른 분들처럼 분명 오래 못 살 거라고 하실 줄 알았는데
제 주치의 선생님이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확신을 심어주시니까 정말 안심이 되고
정말 그분 말씀대로 더 오래 살 수 있을 거 같아요.
그래서 제 치료를 위해 애써주시는 주치의 선생님뿐만이 아니라
저를 도와주시는 모든 의료진 분들에게 너무 감사한 마음이 들어요.”
환자는 그 이후로도 자신이 처음 암 진단을 받았을 때의 심정은 어땠는지, 보호자와 가족분들의 반응과 자신을 어떻게 챙겨주고 있는지, 첫 병원에서 시한부 선고를 받고 어떻게 여기까지 오면서 버텨왔는지 등에 대해 글을 쓰는 것처럼 또렷하고 선명하게 기억하며 30분이 넘도록 나에게 말해주었다.
환자는 자신의 상태를 모르는 것이 아니었다. 암이 어디까지 전이되었는지, 자신의 암이 완치될 수 없다는 것도, 앞으로 자신의 몸이 안 좋아질 힘든 일 밖에 남지 않음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 환자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이 암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었고 암에 걸린 환자도 예정된 죽음 앞에서도 당당하게 하루하루 살아갈 수 있다는, 지금도 살아 존재한다는 희망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이 환자에게 필요한 것은 심적으로 함께 공감해 줄 존재였다고 판단해서 비록 이 환자를 돌보는 것 말고도 할 일이 많이 쌓여있었지만 나는 환자 옆에서 기나긴 이야기를 가만히 들으며 반응하고 있었다.
그렇게 쭉 30분 동안 들으면서 나는 문득 이 환자의 긍정적인 생각들이 같은 처지에 있는 다른 암환자들에게도 희망이 될 거라고 생각해서 환자에게 종이와 펜을 줄 테니 지금 했던 이 이야기들을 글로 써보라고 제안했다. 그저 병원에서 입원하는 동안 침상에 앉아서 치료만 받고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환자가 현재 감사해하는 마음들을 계속 기억하며 심적으로도 계속해서 이겨내길 응원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제가 어떻게 글을.. 저는 예쁘게 쓰는 법을 몰라요.”
“굳이 잘 쓰려고 애쓰실 필요 없어요.
지금 저에게 편하게 쭉 얘기하듯이 그대로 종이에 옮겨 담으면 돼요.
부족하면 종이를 더 드릴 테니 일단 가볍게라도 시작해 보세요 환자분.”
그렇게 건네준 종이와 펜. 이후로 내가 환자를 보지 못한 며칠 동안 환자는 약속대로 정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종이로도 썼다가 기운이 없는 날에는 자신의 핸드폰으로 끄적인 몇 줄의 이야기들을 모아서 내가 그녀를 보러 올 때마다 자랑스럽게 보여주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녀가 글을 쓰면서 하루하루 암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기를 간절히 응원하고 있었다.
그 이후로 4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았던 그녀는 4개월이 지나도 잘 버텨주면서 중간중간에 항암치료도 받았다. 비록 항암치료를 몇 차례 받은 후 컨디션이 악화되어 세상을 떠났지만, 나는 아직도 하루하루 암에게 지지 않을 거라는 희망에 찬 환자의 눈동자를 잊을 수가 없다. 그녀는 이미 세상에 없지만 결코 암에게 진 것이 아니다. 하루하루 암에게 몸과 마음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마지막 순간까지 애썼을 것이다. 그런 그녀가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에도 나의 마음을 다한 응원이 그녀에게 전해졌기를 진심으로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