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감정은 옳지만 모든 행동이 옳은 것은 아니다.
어느 날은 폐암환자가 입원했다. 이 환자는 자신이 다른 병원에서 허리통증으로 입원했으나 허리 부분 척추에는 종양이 자라고 있었고 통증이 완화되지 않자 더 큰 병원을 찾아 우리 병원으로 치료를 받으러 입원했다. 입원한 사이 척추에 있던 종양은 다른 곳에서 퍼진 제2차 종양임을 알게 되고 폐에서 시작된 암이 이미 허리, 머리, 간으로 전이된 상태임을 알게 되었다. 단순한 허리통증으로 생각하고 시작했던 치료는 항암치료, 방사선치료, 감마나이프 치료 등 기나긴 입원치료로 그녀를 몰아가고 있었다.
여느 때처럼 바쁘게 환자들을 오가며 보고 있던 어느 저녁. 그녀는 갑자기 숨이 가쁘다며 콜벨을 눌렀고 한껏 머리를 세워 놓은 침상에 기대어 식은땀을 흘리며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나는 환자가 이미 산소를 투여하고 있는 상태였고 산소포화도 또한 안정적이었다. 그래서 그녀에게 산소농도를 올려주며 심호흡을 하며 진정할 수 있도록 도우려고 하였으나 환자는 화를 내며 나의 처치에 강력하게 거부하였다.
“여기 간호사들은 왜 그래요? 내가 숨이 차다는데 아무것도 안 해주고 그전부터 계속 숨차다고 했는데 왜 그냥 가만히 있기만 하냐고요!”
“환자분,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아니라 환자분 치료를 위해서 지금 산소도 투여하고 있고 의사 선생님에게도 와서 봐달라고 전화도 했어요. 환자분이 저희의 판단에 협조해주시지 않으면 저희도 어떻게 할 수 없어요.”
“내가 숨차다고 할 때마다 아무것도 안 했으면서 이제 와서 뭘 한다고? 참”
환자는 한껏 나에게 화를 내면서 마치 장난감을 사주지 않는다고 삐쳐버린 어린아이처럼 나를 등지고 돌아누웠다. 그러고는 그녀의 상태를 묻는 나의 질문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입을 꾹 다물고 있었고, 내가 돌아서면 내 등뒤로 흉을 보면서 다른 환자들과 이야기하는데 그것이 나를 점점 더 화나게 하고 있었다. 당직 의사가 오기를 기다리면서 나는 화가 나도 담당간호사로서 환자에게 대하기 위해 마음을 다스리려고 애썼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노년의 환자가 어린아이처럼 행동하는 것이 유독 나에겐 용납되지 않는 일이었다. 나의 말과 처치에 입을 꾹 다문채로 아무런 응답도 하지 않는 환자. 나는 결국 간호사로서의 책임을 다했음을 남기기 위해 차팅을 남기기로 결정하고 환자에게 말했다.
“환자분 이렇게 치료에 비협조적이면 아무리 도와주고 싶어도 저희도 도와줄 수 없어요. 내일 주치의 선생님이 볼 수 있도록 저희는 기록으로 남겨놓을 겁니다. 그러니 저희를 믿고 한 번 더 치료에 협조해 주세요.”
물론 환자는 나의 이 말에도 아무런 변화도 없이 나에게 등을 지며 여전히 치료에 응하지 않았고 그 사이 당직의가 도착했다. 그리고 환자의 흉부 X-ray를 촬영한 후 영상을 확인하더니 흉수가 차있음을 환자에게 설명하고 흉수천자를 시행하여 그녀의 호흡곤란 사태는 일단락되었다.
나는 퇴근한 이후에도 이날 있었던 일을 되돌아봤을 때 나의 마음이 왜 유독 어린아이처럼 토라진채 누워있는 그 환자에게 단호해질 수밖에 없었는지 정신분석 상담사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의 마음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서 따라가 보니, 나는 어렸을 때부터 어리광을 피울 수 없는, 받아줄 수 없는 환경에서 자랐기에 그 나이에 맞게 행동하는 것이 억압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유독 나이에 맞지 않게 어리광을 피우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그렇게 화가 났던 걸 거예요. 본인은 그러지 못했으니까요.”
이날 상담 이후 요동치는 나의 마음 속 깊이 묻혀있던 내면 아이와 만나고 그 아이의 감정을 받아주고 기다려주기까지 한 달이라는 시간이 걸렸다.(정신분석에서는 '무의식의 의식화'라고 한다.) 그만큼 어리광을 부리고 싶었지만 어른스럽게 행동해야 했던 어린아이가 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억압된 채 내 속에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아이를 받아주고 나니 며칠이 지난 후에야 그 환자의 입장을 생각하게 되었다.
‘자신이 암이라는 사실을 처음 갑작스럽게 받아들여야 했을 때 얼마나 힘들었으면 자신의 나이에 맞게 행동하는 것을 잊은 채 어린아이가 될 만큼 부정하고 싶었던 것일까.
의사로부터 며칠 못 살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얼마나 그 사실을 부정하고 싶었을까.
살날이 많지 않은 환자에게 좋은 기억만 남겨 주고 싶다.’
뒤늦게 알게 된 진실은, 전부터 환자의 가족들은 환자가 어디까지 암이 퍼져있는지 알게 되면 더욱 힘들어할 것이라고 판단해서 환자에게 비밀로 하고 있었다. 그런데 환자는 자신이 암에 걸린 것을 알고 있으나 계속해서 입원치료가 길어지고 상태가 갑자기 나빠지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했고 자신의 상황이 좋지 않음을 어느 정도 직감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처음 만난 나에게 투정을 부리며 모든 사실에 대해 부정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이렇게 나의 감정을 이해하고 수용하고 나니 환자의 행동 너머에 있는 마음을 헤아릴 수 있게 되면서 더 이상 화가 나지 않았다.
모든 감정은 옳다. 그러나 한순간의 감정으로 내 마음을 빼앗겨버리면 앞을 내다볼 수 없다. 상대방의 입장을 바라볼 여유조차 없다. 그리고 감정은 옳으나 감정에 의해하는 모든 행동은 옳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간호사에게 감정조절을 하는 능력은 정말 중요하다. 병원에서 사람을 상대로 하는 일이기에 간호사는 자신의 감정을 수용하며 마음을 돌아볼 수 있어야 하고 환자의 입장에서도 바라봐줄 수 있는 통합적인 시각이 필요하다. 그래야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환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분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침 6시 반, 퇴원설명을 하러 들어갔다가 환자에게
“에이 XX 지금 와서 퇴원 설명을 한다고 XX이야!!”라는 소리를 듣거나
커튼 바로 뒤에서 간호사를 욕을 하는 것을 듣거나
자신이 분명 설명했던 부분인데 처음 듣는다며 컴플레인을 하는 환자를 마주하거나
그전 의료진에게 있던 모든 불만을 간호사에게 다 쏟아내는 경우
와 같이 갑작스럽게 맞이하는 당황스러운 상황이나 견디기 힘든 상황에서 아무리 간호사라고 하지만, 감정을 완벽히 조절하고 자신을 힘들게 하는 환자를 천사처럼 대하기란 힘들다. 그리고 로봇이 아니라면 이런 상황에서 자신의 감정을 배제하고 이성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을 것이며, 이 또한 한 사람의 정신적인 건강을 생각했을 때 옳지 않은 선택이다.
병원 생활이든 사회생활이든 사람을 대하는 입장에서 실제로 내가 해를 입거나 다른 사람을 해하려는 의도가 아니라면, 감정대로 행동했을 때 바람직하지 않은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다. 또한 감정이 격해져 있을 때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없기에 시야가 좁아질 수밖에 없으므로 주관적인 입장에서 일을 그르칠 경우가 많다. 게다가 같은 말이라도 감정이 격해질 때의 말과 가라앉힌 뒤에 하는 말은 다르게 들릴 수밖에 없다. 따라서 감정이 올라오는 경우에는 자신의 감정을 찬찬히 인지하고 수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1층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가야 하듯이,
실제로 우리의 뇌는 뇌 안의 변연계를 통해 감정을 먼저 수용하고 공감을 한 뒤,
2층인 전두엽으로 합리적인 생각을 하여 행동을 선택할 수 있게 된다.
(책 ‘내 아이를 위한 감정코칭’ -최성애, 조벽, 존 가트맨)
격해진 감정을 가라앉히기 위해 억지로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자 하면 생각과 감정이 일치하지 않고 자신의 감정을 외면하는 것이 되므로 옳지 못한 방법이다. 행동을 하기 전에 먼저 그 자리를 피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지만 그 외에 추천할 수 있는 다른 방법으로는 ‘15초 호흡법’이다.
먼저 오른손을 심장 위에 얹고 5초간 숨을 천천히 들이마신다.
숨을 들이마시면서 자신의 심장이 뛰고 있는 것을 느껴본다.
이후 5초간 천천히 숨을 내뱉는다. 평소보다 천천히.
이렇게 평소보다 약간 느리고 깊게 호흡을 하면, 이성보다 감정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심장이 안정적으로 뛰면서 중립상태로 돌아올 수 있다. 감정이 올라온 상황에서 이 호흡을 한다고 자신의 마음이 드라마틱하게 변화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15초간 호흡을 하는 동안 그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한걸음 뒤로 온 셈이다.
나의 감정의 소용돌이와 상대의 감정의 소용돌이가 보인다면 어떻게 행동해야 옳은지 판단할 여유가 생긴다. 행동은 그때해도 늦지 않다.
실제로 새벽 6시 반에 퇴원설명을 하러 문 열고 들어갔다가 환자에게 쌍욕을 들었던 건 나의 경우인데, 한 두 마디는 심호흡하며 넘기다가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해야겠다 싶어 나도 따졌다가 큰소리가 난 적이 있었다.
이때도 만약 내가 환자의 욕에도 흔들리지 않는 자존감이었다면,
환자가 나에게 욕을 하는 것과 나의 가치는 별개라고 분리했을 것이며,
환자의 그 어떤 말에도 나의 가치가 흔들릴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욕을 하는 환자 앞에서 다음에 설명하겠다고 태연하게 그 방을 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당시 욕을 듣는 순간, 환자 자신을 도우려고 하는 간호사에게 욕을 하는 것은 무례한 행동이며 그냥 넘어가면 간호사를 욕되게 하는 행동이라고 생각해서 환자에게 욕을 하면 안 된다며 더 따지고 들었다. 당시 간호사를 욕되게 하는 행동이라고 말은 했지만 이는 더 깊이 들어가면 결국 나를 욕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기분이 나쁘고 화가 났던 것이다. 외부 상황과 나의 가치를 같은 카테고리 안에 둔 것이다.
이런 경험을 하고 나니 간호사는 정말 마음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고, 자신을 잘 돌볼 수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잘 돌볼 수 있기 때문이다. 냉철한 판단과 동시에 따뜻한 가슴을 겸비해야 하는 그 어려운 직업이 바로 간호사이다.
간호사뿐만이 아니라 일반적인 사회생활에서도 대인관계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면, 자신이 인식하고 있는 의식의 세계가 아닌 의식하지 못하는 무의식에서의 문제일 가능성이 높다. 우리의 무의식은 과거의 부정적인 경험을 통해 자존감에 타격을 주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빙하 저 깊은 곳인 무의식에 가라앉아있는 ‘나’를 수면 위의 의식세계로 떠오르게 하는 것이 바로 정신분석의 한 과정인데, 이는 아래의 글을 참고하기 바란다.
https://blog.naver.com/youn_morning/2226816185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