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기계의 알람 소리, 벨소리, 환자의 기침소리 하나에도 귀 기울이자.
내가 처음 신규간호사가 되었을 때 가장 적응 안 되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귀를 여는 것이었다. 안 그래도 나에게 일 하나가 맡겨지면 그것을 해결하는 데에 눈, 코, 입을 다 쓸 정도로 몰입을 해야 하는데 일을 하는 동시에 귀를 열어라니.. 하나에 집중하고 파고들면 주변이 안 들리는 나에게는 너무나도 곤욕스러운 훈련이었다.
어느 날은 컴퓨터로 환자에게 난 처방을 보고 있는데 전화를 안 받냐, 주변 상황이 안 보이냐, 귀를 닫고 사냐고 다른 선생님들이 혼을 냈다. 나는 컴퓨터 화면을 보면서 처방의 의미를 해석하느라 머리가 아픈데 자꾸 주변에 관심을 가지라고 하는 것이다.
맞다. 간호사는 자신의 눈앞에 닥친 일뿐만 아니라 양옆 뒤에서도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촉각을 곤두세워야 한다. 왜냐하면 각종 모니터 알람 소리, 기계 알람 소리, 환자의 숨소리, 신음 소리, 기침 소리 등.. 많은 주변 환경들의 소리를 듣고 있어야 언제 어디서 환자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든 대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 병동은 심장내과 환자들이 주로 입원하는 병동이라 심전도 모니터가 다른 병동에 비해 많이 설치되어 있다. 병원마다 다를 수 있지만 우리의 경우 심전도 모니터는 벽에 걸려있는 모니터, 이동식 모니터, 중앙 스테이션에 있는 모니터, 복도에 있는 모니터로 종류가 다양하고 알람 소리 또한 다 다르다. 또한 심전도 모니터 하나에도 혈압, 맥박, 심전도, 산소포화도 중 하나만 이상범위에 있어도 알람이 울린다. 심장은 언제 어디서든 응급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특히 심장내과나 기계가 많은 중환자실에 있는 간호사들은 알람 소리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환자에게 투여되는 약물이 중요할수록, 환자의 상태가 악화될수록 주변에 지지하는 기계들이 다양해진다. 물론 중환자실에서는 더 많은 기계들이 있겠지만 병동에서도 Ventilation, High flow nasal cannula, Gomgo suction, Infusion pump, Curavac 등 다양한 기계들을 쓰는데, 환자의 안전에 직결되는 고위험 기계일수록 간호사는 당연히 이런 기계들의 알람소리에 귀 기울여 야하며 알람이 울렸을 때 적극적으로 대처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주변에 항상 민감해야 한다.
어느 날은 나이트 밤근무를 하다가 멤버들과 야식을 먹는데 간호사실 넘어 저 먼 병실에서 들려오는 어느 환자의 기침소리 하나에 가래를 뽑아줘야겠다 아니다를 분별하는가 하면, 섬망환자가 간호사실 옆 처치실에서 억제대를 풀고 부스럭거리는 지까지도 다 듣고 대처한다. 또한 간호사실에서 먼 병실에서 울리는 Infusion pump의 알람을 듣고 달려가 문제를 해결하기도 한다. 나도 못 듣는 알람소리를 다른 멤버들이 듣는 걸 보면 정말 눈이 휘둥그레질 지경이다. 나와 같이 일하는 간호사들은 이렇게 두 귀를 열고 일하다 보면 너무 신경 쓴 나머지 이명이 들린다는 사람들도 있고 나중에는 아무 소리가 없는데도 마치 알람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환각에 시달리기도 한다. ㅇㅁㅇ;;
환자의 호흡과 관련된 벤틸레이터 알람이라던지, 심장과 관련된 심전도 모니터 알람 소리는 환자의 생명과 직결되기에 정말로 중요하다. 그렇기에 간호사는 각 상황에서의 대처방법을 알고 있어야 하며 응급상황이 발생했을 때 알람을 듣는 즉시 즉각적인 대처를 할 수 있도록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
오전 데이 근무를 시작하고 얼마 안 되어, 병실 라운딩을 돌며 환자들에게 아침 식후 약을 나눠주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다른 병실에서 “환자분, 정신 차리세요! 환자분!”이라는 다른 동료의 목소리가 들리더니 “선생님 코드블루요!!”라는 외침이 들렸다.
‘코드블루’는 즉각적인 심폐소생이 필요한 경우 병원 안에 있는 전 의료진에게 알리는 방송을 의미하는데, 코드블루가 한번 뜨게 되면 위아래 병동의 의료진뿐만 아니라 담당의, 심장내과 및 호흡기내과 전공의까지 다 모여서 한 환자를 살리기 위해 협동한다. 그 간호사는 자신이 라운딩을 갔을 때 아무리 깨워도 환자가 의식도 없고 맥박도 만져지지 않자, 코드블루를 띄운 것이다. 나는 그 외침을 듣는 순간, 복도 끝에 있던 병실에서 환자에게 약을 나눠주려고 하다가 메디카트 위에 약을 던져두고 바로 그 병실로 뛰어들어가 응급처치를 보조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심장내과 준중환자실을 끼고 환자를 보고 있었는데 오전 근무 내내 쏟아지는 추가처방과 검사에 정신없이 일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8명의 환자들의 심전도 모니터를 보며 혈압, 맥박, 심전도는 괜찮은지 체크를 하면서 심장에 들어가는 주요 약물들을 조절해야 할 필요가 있는지 주의 깊게 살펴보면서 일을 쳐내고 있을 무렵, 조금 전까지 대화도 잘하고 컨디션 괜찮다며 편안하게 웃는 모습을 보고 나왔던 환자에게서 심전도 알람이 울리기 시작했다. V-tac (심실빈맥) 알람이었다. 이내 맥박은 300회를 넘게 찍고 있었다. 나는 환자의 상태를 체크하고 pulse(맥박)이 있음을 확인한 뒤, 바로 Defibrillator를 들고뛰었다. 다른 동료들도 V-tac이라고 하는 나의 말에 다 같이 뛰어들어와 손을 보태어주었다. 그래서 나는 환자 상태와 심전도 이상을 담당의에게 알리고 즉각적인 대처를 할 수 있었다.
이뿐 만아니라 맞은편 병동에서도 상태가 악화된 환자를 처치실로 빼서 분주하게 대처하고 있는 모습을 보거나 “D.C shock 좀 빌려주세요!”라고 하면서 달려오면 우리는 병동에 있는 이 작은 기계를 들고 쏜살같이 뛰어가서 함께 응급상황에 대처해주기도 한다. 그만큼 병원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주변 상황에 대해서 항상 귀를 열고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