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집사 Apr 17. 2023

반찬가게가 이렇게나 많은데!

강남에서 부산까지 반찬을 보내며

우연한 시작이었다. 거의 1년 가까이 요리수업을 다니시며, 임신과 출산과정을 거쳐 지금은 한창 육아 중인 한 단골 수강생님의 부탁이었다. 남편의 건강관리를 위해 저염으로 조리한 선생님의 반찬을 조금 부탁드려도 될는지 하는 수강생님의 조심스러운 문의였다. 2년도 더 지난 얘기라 조금 희미하지만, 내 기억에는 남편분께서 신장 수술을 하셨다고 했나 그랬다. 이에 선뜻 응해드리며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에 반찬 사진들을 업로드했더니 그 후 곧바로 많은 분들의 연락이 줄을 이었다.


깜짝 놀랐다. 요즘 세상에 반찬가게가 흥한다는 거야 만천하가 아는 사실인데, '저염반찬/저당반찬' 타이틀에도 많은 관심을 보이실 줄 예상 못했다. 게다가 집 근처에서 직접 눈으로 보고 골라 사 드시는 게 아니라, 우리를 모르는 분들도 단순히 온라인으로 연락을 주셔서 실물로 보지 않은 반찬을 구매하신다니. 


사진 출처: 본인 제공


수업을 자주 오시며 친하게 지내는 많은 단골 수강생님들께서는 '선생님, 저도 반찬 시켜볼래요. 너무 맛있어 보여요', '수업 가는 날에 맞춰서 픽업해갈 수 있을까요?' 하시며 입소문에 입소문을 타고, sns 피드에 노출된 사진들로 시선을 끌더니 결국 우리를 아예 모르시는 분들까지도 연락을 정말 많이 주셨다. 이미 평일에는 매일 요리수업을 운영하고 있는지라, 반찬 주문까지 동시다발적으로 받기엔 우리 스케줄상 불가능했다.


그래서 초반에는 나름 규칙을 정했다. 반찬을 받고자 하실 경우,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주문 접수를 받고 매주 일요일에만 일괄적으로 배송했다. 그것도 인근 주민들에 한해서만 주문을 받았다. 직접 스튜디오로 방문 픽업을 오시거나, 퀵으로 보내드리거나.



사진 출처: 본인 제공


그러던 어느 날. 아직도 기억한다. 재작년 12월 30일. 쓸데없이 이 날을 왜 기억하냐면 그날 우리 집 인터넷 통신사를 교체하고 와이파이 수신을 다시 바로잡는 바람에, 한 3일 동안은 티비가 불통이었다. 연말에 티비도 못 보고, 집 안에서 와이파이도 안 터진다니. 와중에 고객님 연락을 받은 것이다. 부산에 계신 남자분이었다.


정확한 병명까진 기억이 확실지 않아서 굳이 쓰진 않겠지만, 고객님께서는 꽤나 까다롭고 어려운 불치병을 앓고 계셨다. 원래 건강하셨던 분이 결혼을 하고 신혼 중에 갑자기 느닷없는 병을 앓게 됐고, 이 때문에 몇 년간 안 다녀본 병원이 없고, 안 드셔본 반찬도 없으셨다. 아내분까지 덩달아 전국 방방곡곡 명의를 수소문하며 많이 애쓰셨다. 병원에서 알려준 대로 00도 먹지 마라, 00도 먹지 마라, 리스트를 체크하다 보면 정녕 먹을 게 없다며. 당연한 결과겠지만 살도 많이 빠지셨는데 건강을 위해 뭘 좀 먹긴 해야겠고, 그런데 시중에 '저염반찬'이라고 판매하는 유명 반찬가게들의 반찬들도 다 드셔봤지만 하나같이 입맛에 맞지 않아 늘 실패하셨다고.


그러던 중 아내분이 우연히 인터넷에서 우리의 저염반찬을 발견하셨고, 블로그 링크를 남편분께 보내서 한번 살펴보라고 하셨단다. 예민해진 남편이 원래 평소대로라면 '아 안 먹어' 하고 보지도 않았을 텐데, '여기는 한번 전화해서 물어보고 싶다'며 선뜻 연락하신 거라는 말까지 덧붙이시면서.



사진 출처: 본인 제공


반찬을 택배로 받아볼 수 있냐는 질문에 엄마는 조금 난감해하며 '아니요, 택배로는 안 보냅니다. 인근에 계신 분들께만 주문을 받아서 퀵이나 방문픽업으로 전해드리고 있어서요' 말씀드렸더니, 고객님께서는 '아, 찾고 찾다가 여기까지 온 건데..' 하며 아주 크게 낙심해하셨다. 그리고는 잠시 뒤, '아, 다시 생각해 보니 제가 서울로 다니는 병원이 여기 스튜디오 바로 근처인 것 같아요. 매달 병원일정이 있어서 서울을 가는데, 그때마다 직접 들려서 픽업해 가면 어떨까요?' 말씀하셨고, 엄마는 흔쾌히 그럼 그렇게 하자고 했다.


곧바로 고객님께서는 병원일정에 맞춰 우리 스튜디오에 오실 날짜를 예약했고, 주문하실 반찬까지 확정 지었다. 한 번은 아내분께서, 다음 한 분은 고객님께서 직접 차례차례 부산에서 스튜디오를 찾아주셨고 오셔서 반찬도 반찬이지만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가셨다. 심지어 아내분께서는 1:1로 요리수업까지 신청해 듣고 가시기도 했다. 입맛 까다롭고 예민해진 남편이 여기 반찬은 참 맛있게 먹는다며, 실제로 병원에서 수치가 좋아져서 영향이 있는 것 같다는 아주 감사한 후기까지 종종 전해주시곤 했다.



사진 출처: 본인 제공


부산에 계신 분이 이렇게 한번 다녀가시자, 그 다음엔 대전. 최근 면역력이 떨어져 큰 수술을 해서 음식을 저염으로 드셔야 하는데, 우리 반찬 사진들이 너무 정갈하고 맛있어 보여서 꼭 한번 드셔보고 싶다 했다. 그간 다른 건 몰라도 반찬은 택배로 보내진 않겠다는 본인의 신념을 고집하던 엄마는 망설이다가 제안을 드렸다.


'원래 저희가 지방으로 택배는 안 보냈는데요, 아시다시피 택배는 기사분들이 상자를 막 던지기도 하고 물건이 파손될 수도 있잖아요. 저는 제 음식이 막 뒤집어지고 지저분해진 상태로 고객님들께 도착하길 바라지 않아요. 고객님들이 반찬 뚜껑을 열었을 때, 음식이 지저분해져 있을까 봐 그게 싫어서 그간 택배를 안 보내려고 한 거라서요' 혹시 이 점만 양해를 해주신다면 택배로 보내드리겠다고 했다.


그러자 고객님께서는 '아유, 선생님 당연하죠! 그건 하나도 문제가 되질 않아요! 얼마든지요'



사진 출처: 본인 제공


이 날을 기점으로, 대전의 이 고객님께서는 거의 매주 다양한 반찬을 주문하셨다. 사진 그대로 반찬이 무사히 잘 도착했다는 말씀과 함께. 연말연시를 비롯해 명절마다 꼭 안부문자도 보내시면서, 서로 여태껏 실제로 얼굴은 못 뵀지만 반찬으로 연을 맺은 아주 가까운 사이가 된 셈이다. 이렇게 대전으로 택배를 보내기 시작하자, 이후에는 망설일 게 없어졌다.


전국으로 주문 범위를 넓혔다. 그만큼 반찬용기에 포장을 꼼꼼히 해서 아이스박스에 담아 보내드린다. 혹시나 음식이 뒤집히지 않도록, 반찬뚜껑 안쪽에 양념이 지저분하게 묻지 않도록. (크게 의미는 없겠지만) 파손주의 스티커를 꼭 붙여달라 우체국에 매번 부탁을 하면서 말이다. 우체국을 얼마나 자주 드나들었으면 직원분께선 아이스박스를 들고 오는 나에게 '반찬이에요?' 먼저 물어보시기까지.



사진 출처: 본인 제공


기준을 두기 위해 만들어놓은 반찬 리스트가 따로 있긴 하지만, 그 외에도 고객님들 각각의 요청에 맞춰 일품요리들, 나아가 건강을 위한 맞춤 식단까지도 계획해 전해드리고 있다. '시부모님 결혼기념일이라 가족들 식사를 해야 해요', '남편 생일이 다가와 손주들까지 모두 모이는 날이에요', '전 서울에 있는데 지방에 계신 엄마아빠에게 반찬을 보내드리고 싶어요' 등등...


원래도 우리 음식이 대체로 자극적이지 않고, 담백하면서 식재료 고유의 특성과 맛을 살리는 데에 포커스를 두고 있는지라. '선생님 음식은 믿고 먹는다', '주기적으로 음식을 받고 싶다', '선생님 스케줄 되실 때 그냥 선생님이 알아서 바로 조리 가능한 반찬들로 보내주셔도 된다'는 말씀들에 감사드린다.


심지어 '혹시 오늘 수업하시고 남은 음식 사갈 수 있나요?' 라는 귀여운 막무가내 카톡을 보내시는 수강생님들도 계신다.



사진 출처: 본인 제공


무엇보다 깔끔하고 정갈하게 전해드리는 데에 중점을 둔다. 택배로 받았던, 퀵으로 받았던 설레는 마음으로 도시락 뚜껑을 열어보면서부터 기분 좋을 수 있도록. 그리고 모두들 좋은 음식 드시고 건강하시길 바란다.




현재 우리 스튜디오에서는 고객님들의 보다 편리한 온라인 주문을 위해 오픈마켓 준비가 한창 마무리 단계에 있다. 조만간 오픈마켓 운영 후기를 가져와보는 걸로.

작가의 이전글 엄마가 나의 브런치 활동을 알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