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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집사 May 01. 2023

약과, 이토록 정성스러운 디저트

한식디저트의 대표주자

내가 난생처음 약과란 존재를 인식하게 된 것은 다름 아닌 10년 전 강남의 한 출판사 그룹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였다. 같이 일하는 동료 언니와 회사 근처 새로 오픈한 카페를 갔다가 카운터 앞에서 파는 미니약과를 처음 사본 날. 평소의 나라면 카운터 앞에서 파는 자잘한 주전부리류에는 시선도 안 두는데, 그날은 엄지손톱만큼 작은 약과 3개가 쪼로록 들어있는 봉지를 들고 같이 결제를 했다. 단순히 나중에 일하다가 입 심심할 때 먹어야지, 생각을 하면서.


근데 희한하게도 기대보다  더 맛있게 먹어버린 거다.


그날 이후 나는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다다음날도 점심을 사 먹고 후식으로 커피를 사러 들른 카페에서 미니약과까지 꼭 더 사 왔다. 어느 날은 근무하다가 중간에 찌뿌둥하다며 오후에 잠깐 나갔다가 미니약과를 사 들고 온 날도 있었다.



사진 출처: 본인 제공


뭐 하나에 꽂히면 지독하리만큼 '한 놈만 팬다'주의인 나는 그렇게 며칠간 손톱만 한 약과를 열심히도 사 먹고, 엄마에게도 이 사실을 쪼르르 전했다. "엄마 내가 요즘 이러저러한 걸 사 먹었는데 그거 되게 맛있더라? 약과? 약과인가 그게?"


엄마의 반응은, "에에? 너가 그런 것도 사 먹어?"


"됐어, 엄마가 더 맛있게 만들어줄게."

"엄마가 그런 것도 만들 줄 알아?"


요리연구가 엄마를 둔 딸이 한 말치고는 지금 생각하면 너무 어이없는그때의 나는 그랬다.



사진 출처: 본인 제공



왜 몰랐을까. 내가 밖에서 맛있다고 열심히 사 먹던 (당시) 1천 원대의 공장형 미니약과보다 엄마는 사실 더 비싸고 더 맛있는 제대로 된 약과를 만들고 있었다는 걸.


직장인이었을 당시엔 밖에서 보내는 내 시간이 많고, 내 생활이 바쁘단 이유로 엄마가 세세히 뭘 만들고 뭘 요리하는지 일일이 알지 못했다. 늘 엄마는 그냥 요리를 다 잘하시니까. 엄마는 다 잘 만들 줄 아니까. 엄마가 하는 건 그냥 다 맛있으니까. 막연하지만 당연한 진리였다.


심지어 그때까지도 나는 약과가 약과로 불려지는 것도 모를 때였다. 아니, 사실 조금 핑계를 대보자면 그땐 지금처럼 전통디저트, 한식디저트 같은 타이틀도 생소했을 뿐더러 떡 정도나 알고 있던 20대에겐 낯선 존재였다. 드라마 ppl로 많이 나오는 카페베네에 가서 한예슬이 광고하는 커피에 와플이나 먹을 줄 알지, 지금처럼 할매니얼 입맛이라고 오픈런 줄 서서 사 먹는 K-디저트가 다 어딨었게.



사진 출처: 본인 제공



결대로 찢어지는 크로와상 빵처럼, 약과 역시 측면에서 봤을 때 결이 높이 높이 살아있는 한국식 패스츄리 같은 느낌이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겉바속촉의 정석. 전통 궁중디저트인 약과는 만드는 과정만 봐도 손이 참 많이 가는지라 '저러니 맛있을 수밖에' 소리가 나올 수 밖에 없다.


요즘은 '할매니얼'이라고 해서, 2030 젊은 세대들이 전통 한식디저트에 많은 관심들을 보이는데 특히 약과가 작년부터 각광받고 있다. 하물며, 만들고 남은 짜투리 반죽으로 만든 파지약과도 돈 만 원대를 웃돌며 줄 서서 사 먹는 정도라니. 그러다 보니 약과를 올린 휘낭시에, 약과를 올린 스콘, 약과를 올린 아이스크림, 약과 쿠키 등등 다양한 응용작들도 많이 쏟아져 나왔다.


전통은 전통 그대로 맛과 스타일을 고수해야 의미가 있는 거라며 다소 고지식한 면을 보이던 엄마도 이제 나의 끝없는 설득에 많이 누그러진 편...


십 년 전의 내가 약과를 약과라고 부르는지도 몰랐던 것처럼, 전통 음식에 무지했던 나같은 젊은 사람들도 이젠 전통과 퓨전이 만난 색다른 스타일들에 관심을 가지니 이 얼마나 재미있는 현상인가. 



사진 출처: 본인 제공



그럼에도 우리 약과는 엄마의 뜻을 담아 전통 개성약과 스타일로만 밀고 있다. 반죽에 loss가 없도록 깔끔하게 네모난 모약과를 선호하지만, 가끔 고객님들의 선호에 따라 꽃약과도 많은 사랑을 받는 편. 엄마만의 특제 레시피를 따라 고급스러운 생강과 유자의 풍미가 은은하게 입 안에서 퍼지는 것이 특징이다.


약과는 기름에 튀겨낸 이후 즙청이 속까지 잘 스며들도록 충분히 담갔다가 건져 하루를 꼬박 말린다. 튀기고 즙청에 담갔다가 말리고 해서 당연히 끈적거리겠거니 생각할 수 있는데, 우리 약과는 손에 들러붙지 않는다. 신기할 정도로 표면이 매끈매끈, 입으로 베어 물었을 때도 즙청이 쭈욱 흐르거나 하지 않고 반죽에 완벽히 스며들어 파사삭, 겉바속촉의 식감을 즐길 수 있다.



사진 출처: 본인 제공



또한 자극적이게 띵!한 단맛을 좋아하지 않는 엄마의 취향에 맞춰, 달지만 너무 크게 달지도 않아 당도 역시 적당하다. 누가 그랬던가. 한국인이 디저트에 보내는 궁극의 찬사는 '너무 달지 않다'라고.  그렇다.



사진 출처: 본인 제공



이렇듯 우리가 종종 만들어 판매하는 한식디저트 답례품의 대표 품목 중 하나가 약과이다 보니, 작업이 있을 때마다 테스트차 하나씩 먹어보곤 하는데 늘 예쁘고 맛있어서 감탄한다. 답례품으로 내보내고 가끔 약과 수량이 여유 있게 남으면, 우리 요리수업에 오시는 수강생님들께 며칠간 웰컴푸드로 하나씩 내어드리기도 한다.


최근에 조문답례품이 급하게 대량으로 나가는 바람에, 약과만 무려 300개 이상 만들며 하루 날밤을 꼬박 새운 엄마의 작은 소망이 있다면


"약과 반죽 기계 사서 랩실에 넣고 말 거야. 팔 아파서 반죽 못하겠어."


그래. 그 정도쯤야. 나중우리의 작은 자동화 공장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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