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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집사 Aug 11. 2024

결혼 후 딸에게 엄마란 존재

나는 엄마를 매일 보니 운이 참 좋아

엄마가 집에 참외 좀 가져가라고 해서 난리를 친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도 어이없지만, 오직 내가 참외를 안 먹는다는 이유 그뿐이었다. "나는 참외 안에 물컹한 것 싫어서 안 먹잖아. 참외 안 좋아하는 거 알면서 왜 자꾸 가져가라고 하냐고!"


"그래도 먹어봐, 한 입만 먹어봐. 진짜 달고 맛있다니까?" "아빠랑 너무 맛있게 먹어서, 일부러 너네도 주려고 어제 참외 두 봉지를 샀단 말이야!" "너만 생각하니? 집에 네 남편도 있잖아. 너 안 먹으면 지현이 깎아주라니까?"


"나 참외 안 깎아봤다고!" "난 자두나 딸기 같은 좋아하잖아." "누가 참외 사달래, 왜 이렇게 많이 샀어!"


그 와중에 껍질 깎아먹는 과일은 귀찮아서 싫고, 그냥 통으로 먹는 작고 달고 비싼 과일만 좋댄다... 그야말로 창과 방패의 싸움이었다. 결국 그날은 엄마랑 한참 무논리로 입씨름을 하다가 둘 다 씩씩대며 퇴근했다.




그리고 그 다음날쯤 됐을까. 엄마는 그릇에 참외를 조금 깎아 올려뒀고 또 포기하지 않고 내게 말했다.


"해나야 참외 먹어봐"


나는 며칠 전의 싸움을 기억하며 한숨을 쉬곤 참외를 한 입 먹었다. 굉장히 뭔가를 어렵게 못 이긴 척 먹는다는 듯이. 오잉 그런데,


"참외 엄청 맛있네? 꿀 뿌렸나? 왜 이렇게 달아?"


막상 먹어보니 참외는 엄마 말대로 정말 저-엉말 맛있었다. 내가 천연덕스럽게 참외를 잘 먹자 엄마는 바로 활짝 웃으며 냉장고에서 잠자고 있던 내 몫의 참외 봉지를 한 무더기 꺼내곤 '그치~? 오늘 집에 갈 때 가져가!' 아이처럼 웃었다. 그리고는 내 욕도 놓치지 않았다.


저 못된 가시나

나쁜 가시나

나중에 너랑 똑닮은 딸내미를 낳아봐야 돼.


 냉장고 참외를 갖다 놓자, 남편은 '오, 과일이 있네! 나 과일 진짜 좋아하는데' 하면서 참외를 하루에 하나씩 먹어치웠다. 그야말로 참외킬러였다. 참외를 얼마나 좋아하면 껍질을 벗긴 후 손으로 들고 통째로 씹어 먹었다.


실제로 올해 여름은 참외 풍년이었다. 시장이나 마트에 나오는 참외는 전부 다 달고 시원하면서 참 맛있었다. 내 인생 이렇게 많은 참외를 먹은 역사가 있던가 싶을 만큼, 30 평생 살면서 참외가 맛있는 과일이구나 하는 사실을 처음 깨닫기도 했다.


"엄마, 요즘 인스타에 참외샐러드 유행인데 그렇게도 먹어볼까? 근데 그거 참외 엄청 얇게 썰어야 돼."

"그거 벌써 몇 년 됐잖아. 그냥 먹어도 맛있는데 뭐 하러 힘들게 먹니."


마침내 달달하고 맛있는 참외를 다 큰 딸내미 입에 넣어준 엄마는 매우 만족스러워했고, 그다음부턴 참외 좀 먹으라는 소리를 꺼내지 않았다. 왜냐하면 굳이 엄마가 말하지 않아도 딸이 먼저,


"엄마, 나 오늘 참외 좀 가져갈게."


알아서 냉장고 문을 열고 참외 한 봉다리를 가져갔으니까.


그리고 그 참외는 엄마가 아빠에게 '해나가 참외 맛있다고 지현이랑 둘이 참 잘 먹더라' 얘기해서, 아빠가 또 전날 미리 사다 놓은 참외였다. 부모님 사랑이 가득 담긴 참외.



올해 2월 남동생 결혼식장에서 엄마와 함께


난 내가 한평생 털털하고 무던하게 살고 있다 생각했는데, 최근에 오랜 친구가 해준 말이 기억에 남는다.


"아냐, 너 되~게 예민해"


나도 잘 몰랐던 이런 모습. 가족의 품에서 독립해, 결혼을 해서 누군가와 새로운 가정을 이루어 지내보니 30 몇 년 살면서 새삼스레 깨달은 사실이 있다.


나는 엑셀 없인 도무지 살 수 없는 슈퍼 대문자 파워 J의 계획형 인간이며, 사소한 일도 마음을 먹었으면 바로 추진할 계획을 세워야 직성이 풀린다. 억울하고 속상한 감정이 솟구쳐 오르면 주체할 수 없이 눈물부터 팡! 터져 나오고, 화가 한번 올라오면 그걸 혼자 속으로 곱씹고 뜯고 되새겨가며 그 화를 완전히 사그라 떨어뜨리는 데 생각보다 시간이 꽤 걸리는 옹졸한 인간이다.


좋은 말이든 나쁜 말이든 뭐든 1절만 했으면 좋겠다는 단순함이 가득해 조금만 말이 길어져도 집중력을 잃는다. 나는 철저하게 '말보단 행동'파라, 행동 피드백 없이 말로만 번쩍거리는 요란한 빈수레를 극혐한다. 빈말은 못 하는 게 아니라 아예 하지를 않고, 스치는 가벼운 말이라도 한번 입 밖에 내뱉었다면 그 무게를 상당히 무겁게 여긴다.


거실 바닥에 벌러덩 누워서 건너편 아파트 불빛을 보며 멍 때리다가 3시간을 훌쩍 보낸 적도 있고, 그냥 별 이유 없이 지하철을 타고 귀가하는 1시간 동안 집에 울면서 온 적도 있다. 혼자 있을 때 감정 기복이 널을 뛰며 정신이 산만할 땐 옆동네 옆옆동네 아파트 단지 내 상가들까지 속속들이 돌아다닌 적도 있고(봄이었다), 뭐라도 사면 기분이 괜찮아질까 싶어 돈 쓸 생각에 집 근처의 크고 유명한 시장도 돌아다녔지만 끝내 빈손으로 귀가한 날도 많았다. (지금은 등떠밀어 내보내도 못한다, 너무 더운 여름이니까)


지금껏 단기간의 목표만 세우고 살아왔음에도, 나는 장기간의 목표도 상세히 세울 줄 아는 사람이었고, 그렇게 꼼꼼하고 완벽하게 일정을 관리하면서도 즉흥적으로 계획이 틀어지는 일이 발생했을 때 크게 동요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고민상담을 들으며 같이 속상해하고 화를 내고 기뻐할 줄 아는 대문자 F 감정형이지만, 그와 동시에 똑떨어지는 명쾌한 해결책도 같이 주고 싶어 하는 쌉-T 사고형이기도 하다.



엄마 생신날 함께 하루종일 데이트한 날


엄마는 내가 출근해서 스튜디오에 들어오는 발걸음 소리만 들어도 그날의 내 기분을 알아챌 만큼 눈치가 빠른 사람이다.


결혼식 준비를 하는 중간중간 가끔씩 감정적으로 혼자 고군분투하며 속으로 널뛰기를 하는 딸을 매일 보던 엄마는 별말을 하지 않았다. 무척 궁금해하는 눈치지만 세세히 물어보지 않는 엄마에게, 나는 내 소용돌이치는 감정들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고 나면 그제야 하나씩 풀어놓는다.


이런 일이 있었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난 이럴 때 너무 화가 난다, 등등


그럼 엄마는 기다렸다는 듯이 술술술 이야기를 풀어놓으며 내 마음을 다독여주는데 그게 또 그렇게 작은 힐링이 된다.


가족과 쭉- 계속 같이 살았으면 평생 겪어보지 않고, 나도 나를 잘 몰랐을 법한 면모가 많다. 좋은 것부터 싫은 것까지, 매일 새롭게 겪는 감정들이 세세하게 아주 많다. '내가 이렇게 애 같았나' 싶을 때부터 '나한테 이렇게 으른같은 면이 있다고?' 싶은 것까지.


이미 어른이지만, 진짜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밟고 있다. 아니, 보다 더 성숙한 어른으로 성장하는 코스에 이제 막 접어든 것 같다. 그리고 그 발판은 한 사람의 인생에서 '독립' 혹은 '결혼'이 큰 역할을 하는 것 같은데, 그 두 가지를 동시에 겪다 보니 내 나름대로 크고 작은 어려움들이 초반에 있었다.


앞서 언급한 오랜 친구가 말한 것처럼,


알고 보면 예민하고 한 까탈스러운 내가 감정적으로 수용하고, 포용하는 힘을 더 크게 기르는 데 시간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사진출처: 본인 제공


달팽이도 성장할 때 나이테 무늬처럼 패각이 조금씩 한 줄 한 줄 커져가는데, 그런 시기에 달팽이는 한 구석에 웅크린 채 움직이지 않고 오랜 잠을 자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며칠 뒤 다시 활발히 움직일 때 자세히 보면 몸이 한층 커져있고 그에 따른 패각도 더 커져있다.


지금 나에겐 그런 나이테 무늬가 한 세 줄쯤 더 생겼을까. 일하는 특성상 매일 출근해서 엄마와 함께하니, 한층 더 커진 집을 갖고 살아갈 어깨의 힘을 기르며 현명한 엄마의 길을 열심히 뒤쫓아 가야겠다.


엄마 우리 내일도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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