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에게 아침마다 도시락을 싸준다고 하면 주위 친구들이 다 놀라워한다. 남편 퇴근할 시간 맞춰서 저녁상을 차린다고 해도 신기해한다. 하나같이 듣는 소리로는 '너가 그럴 줄 몰랐는데', '너가 그런 걸 좋아할 줄은 몰랐는데', '대단하다', '신기하다'
대단한 건가, 잘 모르겠다. 사실 난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내가 남편에 비해 상대적으로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고, 퇴근 후 저녁시간이 여유로우며, 무엇보다 내가 요리하는 걸 좋아하니까. 그리고 그렇게 요리해서 음식이 완성됐는데 맛있으면 뿌듯하고 내 기분도 좋고, 뭐든 맛있게 잘 먹는남편도 즐거워하니까.
'요리선생님 딸'이라곤 하지만, 그런 나라고 처음부터 요리에 흥미를 느꼈을까. 아니다.
엄마랑 함께했던 프랑스 파리 어느 셰프의 가정집 쿠킹클래스
우리 집에 전설같이 내려오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내가 중학생 때였던가, 아무튼 어릴 때... 집에 동생과 둘 뿐이었고 배고프다는 동생에게 호기롭게 계란후라이를 해주겠다고 주방에 들어갔다. 올리브유와 올리고당 구분을 못하던 나는, 프라이팬에 올리고당을 들이붓고 계란을 깼다. 좀 이상한데? 그래도 먹어봐. 접시에 담아 동생에게 계란후라이를 줬더니
"누나 이상해. 이거 아닌 거 같애."
"그래?"
아 그럼 이게 아니라 올리브유로 하는 건가 보다. 그리고서 나는 정상적으로 내 계란후라이는 올리브유에 부쳐 먹었다. 그렇게 동생에게는 올리고당에 부친 계란후라이를, 나는 올리브유에 부친 계란후라이를 먹었다는 이야기... 이게 얼마나 충격적이었으면, 지금까지도 동생은 잊지도 않고 팔이팔이 추억팔이로 끄집어낸다. '우리 누나 그랬었는데 지금 많이 용 됐다'면서.
그런가 하면, 또 한 번은 국수를 좋아하는 아빠에게 국수를 해주겠다고 어디서 본 건 있어서 삶은 국수를 찬물에 헹궈 씻어서 그릇에 담았는데 (...) 문제는 그때 그 국수는 냉면이나 메밀면처럼 그렇게 차갑게 먹는 국수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서 결국 내맛도 네맛도 아닌 이상 밍밍한 맛으로 아빠가 국수를 힘겹게 드셨던 적도 있다.
"장모가 요리선생님이지만 해나에겐 너무 기대하지 마. 너무 똑같은 맛을 기대하면 안 돼."
아빠는 사위에게 우스갯소리 농담조로 얘기도 했었다. 내가 뭘! 나도 잘해! 당당히 으름장을 내던졌다. 던진 말이 있으니 결과를 보여줘야지.
재능은 안 보였어도, 원래 항상 요리에 재미는 느껴왔었다. 내가 하는 요리 말고 '보는 요리' 말이다. 엄마가 집에서 순식간에 뚝딱뚝딱 차려내는 밥상을 신기해했고, 티비에 나오는 요리예능은 항상 재밌었다. 나영석 피디 일행이 해외에서 식당 운영하는 콘텐츠는 항상 내 밥친구였고, 백종원이 하는 프로그램을 비롯해, 냉장고에 남은 식재료들을 근사한 파인다이닝 스타일의 요리로 재탄생시키는 셰프들의 냉장고를 부탁한다는 예능은 한 회도 빼놓고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 보니 지식은 또 얼마나 얕고도 넓은지... 어디서 보고 주워듣고 다닌 건 많아서 아는 것도 많다. '이 나라엔 이런 음식이 있던데', '이 식재료로 이렇게 요리한 음식을 파는 맛집이 이 동네에 있었는데', '요즘 유행하는 디저트 이거는 원래 미국에서 넘어온 건데 작년쯤부터 한국에 입점했다더라' 등등.
맛집을 다닐 때도 엄마랑 같이 다니는 걸 좋아했다. 단순히 맛있다! 잘 먹었다! 하고 끝내는 게 아니라, 엄마랑 같이 다닐 때면 항상 요리를 세부적으로 뜯어보고 관찰하고 분석하며 먹는 게 재밌었다. '여기 양념엔 뭘 쓴 것 같다', '이렇게 다진 재료가 뭐지?', '이거 참 좋은 아이디어다', '이런 모양으로 구울 수 있구나' 등등.
그렇게 맛집을 다녀오면 엄마는 며칠 내로 그날 먹고 온 요리를 똑같이 재현해 냈다. 그럼 난 또 맛있게 먹으며좋아하고, 엄마의 요리를 사진 찍어 기록해 둔다. 여행을 다녀도 그렇게 세상 미식가일 수가 없다. 숙박, 교통, 관광 등에는 돈을 잘 안 써도 식사할 땐 지갑을 잘 열었다. 여행에서는 무조건 맛있는 걸 먹고 와야 한다는 주의.
이는 다른 데엔 돈을 끔찍이 아끼면서도, 가족들과 주말이나 무슨 기념일, 생일엔 근사한 식당에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돈을 아끼지 않는 아빠와도 비슷한 것 같다.
(물론 대쪽 같은 우리 아빠는 조금 더 극단적이다. 하하...)
사진 출처: 본인 제공
나는 sns에 돌아다니는 간편 레시피도 상시 훑어보고 다니면서, 우리 집 냉장고에 있는 식재료와 겹치는 경우엔 '주말에 해봐야겠다' 라며 항상 캡쳐를 해둔다. 그리고 맛있으면 엄마한테도 이런 나의 작고 소중한 정보를 공유한다. 아침에 남편 도시락을 싸면서 양이 많아 남을 경우엔, 내가 출근해서 엄마와 같이 먹을 우리 도시락도 같이 싼다. 나름 엄마에게 맛 컨펌을 받으러 갖고 가는 셈이다. 그럼 엄마는 '맛있다', '다음엔 소금을 좀 쳐야겠다', '간이 적당하다'와 같은 세세한 피드백을 준다.
요리할 땐 항상 딸려오는 게 설거지인데, 나는 설거지하는 것도 좋아한다. 대체로 아무 생각 없이 할 수 있는 단순노동을 즐기는 편이다. 집에서 요리를 할 땐 수시로 틈만 나면 치우면서 하니, 요리가 끝남과 동시에 설거지도 끝나있어 딱히 정리할 게 없다. 고기를 굽기 전 프라이팬이 달궈지는 동안에 적어도 그릇 7개 정도의 설거지는 끝낼 수 있다. 이건 우리 스튜디오에서 수년간 단련이 된 나의 폭풍 같은 설거지 실력이 빛을 발해서 그렇다.
'어디 설거지 대회라도 있으면 나가고 싶어, 나 일등 할 수 있는데' 라며 엄마랑 우스갯소리로 자주 농담을 한다. 사용하고 계속 쌓아두면 공간도 비좁은데 너무 정신없어, 눈에 보이는 족족 사용한 접시나 칼, 도구 따위는 바로바로씻어 건조대에 엎어놓으니 주방은 항상 청결하게 유지된다.
아, 식기세척기는따로 없어서 쓸 일도 없다 (....)
남편과 함께하는 주말에 식사를 준비할 때도 남편은 항상 도와줄 게 없냐며 내 옆에서 어슬렁댄다.그냥 거실에 가서 편하게 놀고 있으라고 해도, 조금 있으면 또 다가와서 그럼 설거지라도 할게- 치대고 있지만 그렇게 말하는 순간에도 나는 그릇을 재빨리 씻어 엎어놓고 있다.
아니 (제발) 저리 가 있으라고,
아니 (나 혼자 있고 싶어) 저리 가,
아니, 내가 할게 (내가 더 잘 치울 수 있어),
아니, 쓰레기는 나중에 밥 먹고 한꺼번에 치우면 돼
(지금 말고 나중에 해줘)
ㅠㅠ
사진 출처: 본인 제공
최근 본 영화 <프렌치수프>에 보면 이런 대사가 나온다. 요리하는 사람은 모두 예술가라고.
식재료를 다듬고 조리과정을 거쳐 아예 다른 모양의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탄생시키니 그런 게 예술이 아니면 무엇인가. 맛있게 먹을 누군가를 생각하며 시간과 정성이 들어가 몰두하는 과정이 있어 요리는 예술이고, 그렇게 오랜 시간 요리한 사람은 누구나 장인이고, 그들이 머무는 주방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