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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집사 2시간전

어떻게 하면 누나처럼 살 수 있어?

밥만 잘 먹어도 칭찬받는 사람

어릴 때부터도 그랬던 것 같다. 난 엄마 아빠에게 작은 거 하나에도 칭찬을 받았다. 세월이 흘러, 나이 30대 중반인 지금까지도 그렇다. 가령 이런 식이다.

 

"어제는 잠을 잘 잤어."

"어이구 잘했다."


좀 이상한가. 이런 것도 있다.


"아 배부르다, 잘 먹었다."

"우리 해나 많이 먹었네, 참 잘했다."


놀랍게도, 지금까지도 내가 매일 일상에서 듣는 말이다. 아빠는 날 볼 때마다 이렇게 말한다.


"해나는 볼 때마다 키가 큰 것 같아. 많이 컸다."


내 키는 150대 초반이고 당연히 성장기 이후로 멈춘 지 오래다. 이런 엄마 아빠의 주접에 동생은 항상 혀를 내두르며 기가 차 했다.


"어떻게 하면 누나처럼 살 수 있어? 아니 무슨, 걸어 다니기만 해도 잘 걷는다고 칭찬을 받으니..."


글쎄. 우리 집 식구들끼리통하는 웃음포인트이긴 한데 이렇듯 엄마 아빠의 못 말리는 콤비 주접은 항상 알면서도 깔깔 웃음이 터지게 만든다.




칭찬세례의 정점을 찍은 건 내가 결혼과 함께 독립한 이후부터다. 평생 가족들과 함께 살아온 나로서는, 처음으로 엄마아빠와 덜렁 떨어져 다른 누군가와 같이 살아야 할 때가 됐으니 부모님은 내심 티는 안 냈어도 걱정이 되셨을 거다.


저 녀석이 지 성질 있는 대로 부린다고 혹시나 남편을 힘들게 하지나 않을지, 늦잠 자거나 끼니를 거르지나 않을지, 빨래나 청소를 제대로나 할 수 있을지, 주방 살림은 또 어떻고, 요리한답시고 설치다가 다치진 않을지.


으레 부모님들이 하실 법한 그런 걱정거리 들이었겠지. 나이 30이 넘어서도 부모님 눈에는 그저 물가에 내놓은 어린애 같을 테니까.



사진 출처: 본인 제공


하지만 그 걱정이 무색하게도, 나는 제법 신혼집 살림에 소질을 보였고 스스로 좋아하고 즐겨했다. 한때는 오랜 시간 전업주부였던 똑순이 엄마를 어깨너머 보고 자란 것을 무시할 수 없듯이, 엄마처럼 매사 거침없이 해내는 내 모습에 스스로 만족해하며 묘한 성취감을 느끼기도 했다.


직업 특성상 엄마와 매일 함께하며 얼굴을 마주할 수 있으니, 나는 매일 출근해 엄마를 만나면 구구절절 자랑거리를 늘어놓기 바쁘다.


"엄마, 어제는 저녁으로 이렇게 차려줬는데 참 맛있게 먹더라."

"엄마, 우리 집 화초들 좀 볼래? 이렇게 잘 자란다."

"엄마, 냉장고 정리 이렇게 했는데 잘했지?"

"엄마, 나 내일 이렇게 장 봐서 이런 요리할 건데 어때?"


그러면 엄마는 항상 내 예상에 빗나감 없이 칭찬을 해주셨다. 아이고 잘한다, 참 잘한다, 잘했다, 기특하네, 맛있어 보인다, 예쁘다, 잘 꾸몄다, 등등.



왼)요리수업에서 엄마가 담아낸 삼계탕 / 오)내가 끓인 삼계탕


가끔은 예상치 못한 피드백을 받기도 한다.


"삼계탕 등을 보이게 놓면 어떡해. 닭을 뒤집어서 배를 보여야지. 지금은 다리가 이렇게 쳐 들린 모습이잖아. 담엔 닭을 뒤집어서 담아봐."


그래도 참 잘했다, 마무리는 또 칭찬.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언제 들어도 신이 나게 한다. 그러니 더 잘하고 싶고, 더 잘 해내고 싶게 한다.




"이런 고기는 냉장고에 얼마나 두고 먹어도 돼? 꼭 바로 냉동고에 넣어야 돼? 왜 맨날 얼리라고 해?"

"냉동했던 고기를 금방 먹을 줄 알고 냉장고에 며칠 두었는데 안 먹어서 다시 냉동고로 옮겨도 돼?"

"여기 깨끗하게 닦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아?"


주방 살림을 하면서는 부쩍 궁금한 점이 많아져서 엄마에게 수시로 물어본다. 그럼 엄마는 눈빛을 반짝이는 '물음표살인마' 딸에게 또 성심성의껏 대답을 해준다. 혹시나 내가 놓치거나 까먹었을까봐 다음날 또 체크하는 엄마 역시 나랑 똑같은 완벽주의자...


"해나야, 어제 고기 냉동실에 넣었니?"



사진 출처: 본인 제공


칭찬을 들으면 자꾸 듣고 싶어서 부지런히 움직이게 되는 건 어린이나 어른이나 똑같은 것 같다.


독립 후 본가를 자주 방문하진 않지만 가끔 어쩌다 근처에 약속이 있어 동네를 들리게 되면 꼭 본가를 찾는다. 엄마 아빠가 집에 계신지 여부는 중요치 않다. 그냥 내가 지하철역에서 나오면서 백화점 식품관에 들려 엄마가 좋아하는 달달구리 디저트 몇 가지를 사서 달랑달랑 집에 들고 간다는 그 자체가 중요할 뿐. 식탁 위에 올려두고 포스트잇 메모를 남긴다. <아빠 혼자 다 먹지 말고 꼭 엄마랑 같이 드셔야 함. 몇 시에 해나 다녀감> 이렇게.


예전에는 모처럼 주말에 쉬는데, 엄마가 갑자기 컨디션이 안 좋아 몸져누웠다고 하길래 우리 동네 근처의 유명한 해물칼국수 2인분을 비조리로 포장해 와 예고없이 불쑥 들른 적이 있었고,


부모님이 홍콩여행을 다녀오셨을 땐 귀국날 집에 도착하실 시간 맞춰서 두 분 저녁 드시라고 내가 집에서 직접 지은 나물밥과 순대곱창볶음을 포장해서 본가에 서프라이즈로 저녁상을 차려놓고 사라진 적도 있었다.


아빠는 내가 그런 식으로 남겨둔 포스트잇 메모들 한 장 한 장도 그냥 버리지 못하고 장식장 안에 다 넣어두셨다고 한다. 이런 K-장녀의 효녀로움 어떤가.


칭찬받고 자란 부지런한 장녀는 더 칭찬받을 일 없나 오늘도 궁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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