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청첩장모임 계획을 무려 결혼식 세 달 전부터 세웠다. 인원수 많은 그룹은 약속 날짜 하나 잡기도 어려워 여러 번 번복된다는 학습이 철저히 돼있던지라 파워 대문자 J로서 계획을 세우지 않을 수 없었다.
점점 친구들이 결혼해서 애기엄마가 되고 생활패턴이 달라지면서, 특히 인원수가 많은 고등학교 친구들 모임, 대학교 친구들 모임이 그러했다. 더군다나 내 결혼식은 끝여름 아니던가. 청첩장모임은 보통 한 달 전부터 많이 하는데 딱 여름휴가철과 겹치는 시기이기도 해서 마음이 분주했다.
다들 휴가는 갈 때 가더라도 나랑 밥 먹고 가...
사진 출처: 본인 제공
앞서 나보다 먼저 결혼한 친구들이 겪었던 청첩장모임의 애로사항들을 기억하며 나는 아예 후보 날짜들과 시간대까지 추려 정해놓고 제안을 했고, 일정이 확정되면 장소 또한 내가 알아서 예약을 완료했다. 보통 뭐 먹을래, 뭐 먹고 싶어, 가고 싶었던 곳 있어? 부터 시작해서 한식, 양식, 중식, 일식 등 어떤 게 땡기냐는 등물어보고 의견을 추려서 결정하는데 어차피친구들은 하나같이 '다 좋아!' 반응을 보였더랬다. 당시의 나 역시 그러했고.
인원수 많은 그룹의 청첩장모임 날짜들을 캘린더에 적어놓으니, 그다음은 이제 3명 이하로 만나는 소수 정원의 친구들 차례. 내 평일 스케줄, 남편과의 주말 일정, 가족모임 등을 제외하고서 빈 날짜들 중에 청첩장모임을 잡기 위해 또 부지런히 박차를 가했다.
그리고 그 다음은, 언제 보자!고 해도 늘 부담없이 만날 수 있는 일대일로 만나는 친구들. 내 결혼식에는 (딱) 평소 잘 연락하고 지내는 사람들, (딱) 진짜로 초대할 사람들에게만 연락을 돌려야지 다짐을 했는데, 캘린더를 살펴보니 새삼 나 파워인싸였나 (...) 내 인생에 이렇게 뻔질나게 일주일에 두 세 번씩 밖으로 도는 밖순이 역사가 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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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준 생각보다도 많은 친구들과 지인들에게 연락이 닿았다. 하나같이 오래된 진득한 인연들이다. 그 와중에도 바빠서, 지역이 멀어서, 통 시간이 나질 않아 모바일청첩장으로 대신한 몇 친구들까지 세어보면 인생 알차게 잘 살아온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새삼 또 고마운 점이라면, 누가 봐도 청첩장을 주고 결혼소식을 알리기 위해 마련하는 자리임을 알면서도 다들 기다렸다는 듯 너무 반갑게 맞아주었다. 오히려 연락 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내가 도리어 받을 땐, 괜스레 작은 감동이 일렁이기도 했다. (그래 난 파워 F이기도 하다)
올해 초 나보다 먼저 결혼한 남동생에게 의견을 구한 적도 있었다. 내 또래도 아니고 나보다 나이가 한참 위인 분이라 더 어려운데, 항상 잊을만 하면 날 먼저 불러내서 밥 사주고 안부도 묻던 감사한 분인데 지금 연락을 안 한지 또 몇 년 됐다,, 너 같으면 연락 드리겠냐는 내 고민에 동생은 단번에 ,
"누나! 지금 그렇게 생각이 들면 지금 그냥 전화를 드려. 난 그렇게 못 했지만 그 분도 분명 좋아하실거야."
동생의 조언에 힘입어 그날 나는 문자를 (아주)공손하고 조심스럽게 남겼고, 동생 말마따나 그 분은 내 결혼소식을 매우 축하하며 연락 줘서 고맙다고 회신을 주셔서 내 마음이 한결 편안했던 적도 있었다.
게다가 정작 나는 예전에 여행일정과 겹쳐 결혼식에못 갔었는데, 내 결혼식에는 '나 다 데리고 간다' 남편과 아이들까지 다 끌고 참석하겠다는 친한언니의 말은 듣기만 해도 든든하고 감사했다.
사진 출처: 본인 제공
그렇게 6월부터 크고 작은 청첩장모임을 치러오면서, 어느덧 이제 슬슬 끝이 보이고 있다.
청첩장모임을 빌미로 내가 가고 싶었던 맛집을 방문하고, 여러 친구들이 모이는 자리에는 통 크게 이것저것 다양한 요리를 시키기도 하고, 일대일로 만나는 친구와의 식사자리에서도 '또 뭐 안 먹을래?', '더 안 먹을래?', '음료는?' 하며 메뉴판을 적극적으로 들이미는 나 자신이 새로웠다.
생각해 보니, 내가 살면서 언제 이렇게 친구들에게 밥값을 턱턱 내본 적이 있던가. 항상 1/N 엔빵에 익숙해져 있거나, 니가 밥을 사면 내가 커피를 사는 등의 철저한 더치페이를 당연하게 여겨 왔는데. 게다가 주문할 때 음료나 샐러드를 왜 시켜. 물 마셔, 물.
내가 살면서 고마움을 느끼고, 계속되는 인연에 편안함을 느끼는 이 소중한 사람들에게 연거푸 밥을 계속 사고 있는 이유가 결혼을 알리기 위함이라니. 그만큼 결혼은 우리 인생에 또 다른 시작을 알리는 중요한 단계이기 때문일까. 알면서도 가끔 묘한 감정이 들 때가 있다.
또한 아쉬운 점도 있다. 먼저 결혼한 친구들에게 작은 선물이라도 주는 등 마음을 많이 표현하고 마음껏 축하해 줄걸. 당시의 나는 싱글이고, 결혼 계획도 없고, 많이 어렸다 보니 주위에 이런 경험과 매너가 부족했던 것 같다. 심지어 20대 중후반에 일찍 결혼한 친구들의 경우에는 기억도 잘 안 난다. 먼저 결혼한 친구들에게 그런 배려가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점을 깨달으며, 대인배인 그 친구들에게 감사를 전하고, 앞으로 결혼할 친구들에게는 더 많이 베풀고 마음껏 축하하는 어른으로 거듭나야지.
"청첩장모임이라는 게, 누가 맨 처음에 만들어낸 문화인지 모르겠어"
그래, 처음엔 투덜거리긴 했다. 하지만 아니다. 생각을 고쳐먹었다.
이럴 때 아니면 또 언제 이런 대접을 해보나. 결혼식 식대가 얼마라서, 그만큼의 축의금을 각자 낼 테니 그에 상응하는 밥값을 미리 내며 앞으로 받을 축의금에 감사를 표하는 자리이다 라고 굳이 굳이 설명하며 계산하는 사람은 없겠지... 그렇다면 너무 기브 앤 테이크가 선명한 우리네 삶이 삭막하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