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 곁으로 이사를 하다

이사는 큰 일이 맞았다

by 달집사

어느덧 출산을 3개월 앞두고 있는 지금, 임신 27주 차에 접어들었다. 임신기간의 절반 이상을 달려왔다. 초기엔 그렇게나 시간이 안 가더니... 임신 10주를 넘어가면서부터는 시간이 참 빠르게 흘러갔더랬다. 확실히 몸에 티가 조금씩 나면서부터는 실감이 나다 보니까 신기하고 재밌었다. 나 같은 경우는 운이 좋게도 임신기간 내내 무증상에 별 다른 이슈가 없다 보니 가능한 감정선의 변화였다.


마침 기존에 살던 첫 신혼집의 전세 만기가 2월에 도달했고, 5월의 출산을 앞두고 겸사겸사 이사하기에도 참 시기가 적절하다 싶었다. 딸이 임신하면 친정엄마 곁으로 온다더니, 그래서 나도 결혼 2년 만에 엄마 곁으로 분당에 다시 돌아왔다. 이사 과정에는 우여곡절이 있었다.




처음에는

사가 워낙 큰일이다 보니 그냥 지금 집에서 1년 더 연장해 살고, 1년 뒤에 이사를 할까 고민을 했다. 그러자 애기가 없을 때 이사하는 것과 애기가 있을 때 이사하는 것은 하늘과 땅 천지차이라며, 주위에서 극구 반대. 그래 그럼 전세 만기가 됐을 때 깔끔하게 옮기자 결정.


두 번째는

분당 어느 동네에 짐 보따리를 풀 것인가. 경기도 수도권이 토허제로 묶이는 바람에 전세 매물이 많이 없었다. 아니, 전세가 나왔다 하면 빠르게 사라졌다. 그만큼 경쟁률이 치열했다. 분당의 친정집과 같은 동네는 우리 예산에 맞는 전세 매물도 많이 없거니와, 평수도 기존 신혼집과 비슷하거나 좁았다. 앞으로 식구가 늘어나면 짐도 자연히 늘어나고 평수가 조금이라도 넓었으면 했는데 이 조건이 충족되기가 쉽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비싸. 아무리 대출을 받아 움직일 거라 해도 1천만 원, 2천만 원이 아쉬운 우리 같은 신혼부부에게 부동산에 내걸린 전셋값들은 만만치 않았다. 평일에 함께 집 보러 다니기 어려운 남편이 리스트업 해준 집들 중 마지막은 친정집에서 바로 옆동네의 집이었다. 가격은 조금 저렴하면서, 평수가 더 넓음에도 단순히 옆동네라는 이유로, 애초에 고려하지 않았다. 마지막 최후의 보류 같은 집이었는데 마침내 이 집이 정답이었다!


세 번째는

한 번 말을 꺼내면 추진력 하나는 확실한 부부라서, 바로 그다음 평일 저녁마다 집을 보러 다녔다. 결정까지 딱 2일 걸렸다. 시간 내기 어려운 남편 대신 친정 부모님이 나와 함께 집을 보러 다니셨다. 이틀째 마지막에 보러 간 집이 바로 저 옆동네의 집이었는데, 어찌나 경쟁률이 치열하던지. 우리 말고도 다른 부동산 팀과 함께 동시에 집을 보러 들어갔다. 성인 7명이 동시에 들이닥친 24평의 오래된 아파트. 기존 세입자 가족은 마침 저녁식사를 끝낸 상황이었다. 5살 정도 되어 보이는 내복차림의 남자아이가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사람들을 반겼다. 둘러보는 사람도 많고, 서 있는 사람도 많고, 살림살이도 많고, 발 디딜 틈 없이 뭔가가 되게 복잡한 집이었다. 집 보러 들어가기 전부터 부동산에서 어찌나 겁을 주던지. '어휴, 집이 너무 낡았어요', '집주인이 수리를 안 해줘서 계속 그냥 살아서 지저분해요', '그래서 가격이 싼 거예요, 감안하고 둘러보세요' 그 말을 듣고 들어가서 봤는데, 엥? (대충 둘러보기엔)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아빠가 조용히 내 옆구리를 꾸욱 찌르면서 말했다. '이 집으로 해, 여기 괜찮다'. 엄마도 여기로 결정하라고 밀어붙였다. 하도 현장이 복잡해서 정작 나는 집을 제대로 보지도 못했지만, 단순히 부동산이 겁 준 것보다 괜찮은데? 싶어서 어어... 얼떨결에 수긍을 했다.




*이 날의 기억에 남는 웃긴 에피소드.

이 날 같이 동시에 집을 보러 들어간 팀도 내 또래의 신혼부부였다. 집을 다 둘러보고 동시에 다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는데, 여자분이 내내 엄마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더니 아주 조심스럽게 '혹시 오명순 선생님 아니세요?' 무방비로 있던 엄마는 화들짝 놀라면서 '네? 저를 아세요?' 하니까, '선생님! 저 몇 년 전에 디저트 배우러 쿠킹클래스 갔었어요! 그때 너무 맛있었는데!' 너무 깜짝 놀랐다. 진짜 이 좁은 세상... 나중에 기록을 찾아보니 5년 전에 오셨던 수강생이셨다. 5년 전에 딱 한 번 우리 수업에 오셨던 분인데 어찌 기억을 이렇게 잘해주시고 반갑게 인사를 해주셨을까, 너무 반갑고 감사하고 신기했다.


부동산에 다시 돌아가서, 이 집으로 하겠다고 결정을 하고 계약금 선입금을 하겠다 말을 정리하고 있는데, 저 신혼부부 팀을 맡은 다른 부동산 측에서 전화가 왔다. 그 신혼부부도 이 집을 마음에 들어 한다는 내용이었다. 내가 한 발 더 빨랐다. 그래서 이 집은 우리에게 넘어왔다. 마치 드라마 같은 순간의 연속. 이렇게 치열하다고...?




네 번째는

집이 결정됐으니 이제 대출을 받아야 한다. 남편도 프리랜서, 나도 프리랜서. 대출 과정에 프리랜서를 위한 나라는 없다고 느꼈다. 뭐 이리 복잡하고 쉬운 게 하나도 없던지. 대출을 받아봤어야 알지, 생전 처음 대출이란 걸 받아보려니 필요한 서류가 참 많았는데 둘 다 프리랜서라고 요구하는 서류가 더 많았다. 그놈의 증빙자료. 전세자금대출을 받고자 은행마다 가심사를 위해 방문했을 때, 어떤 은행은 주거래도 아닌데 왜 오셨냐며 바로 단칼에 거절을 하질 않나, 어떤 은행은 프리랜서 셔서 대출이 안 나올 거라며 거절하질 않나, 또 어떤 은행은 높은 금리를 예상하며 우리가 필요한 대출금의 절반도 채 안 나올 거라는 절망적인 말을 해주기도 했다. 이렇게 은행투어를 돌 때가 12월 말이었고 우리 부부는 낙심했다. 주위에선 대출 다들 잘만 받던데? 물론 큰 금액이지만, 집 전세 보증금의 1/3 정도만 대출받으려는 건데 이게 그렇게도 안 된다고? 단순히 프리랜서라서? 리스트에 있는 자료를 빠짐없이 제출했는데도, 자꾸 프리랜서니까 소득을 더 증빙하셔야 한다며 뭘 자꾸 더 갖고 오라는 납득이 안 되던 은행들의 요구. 이 와중에 뉴스에는 차은우가 세금 체납 200억이 넘는다는 헤드라인이 떴다. 이야, 우리 대출금은 저기 200억에서 없어져도 아무도 모르겠다, 야.


제일 중요한 집은 구해놨는데, 대출이 미지수인 아이러니한 상황 속에 나는 친한 언니를 만나 아웃백에서 저녁을 먹으며 대출이 안 나오면 어떡하냐고 나 답지 않게 징징거리기도 했다. 언니는 잘 나올 거니 걱정말라며 토닥여 줬는데, 형식상 해주는 위로라도 그 말이 왜 그렇게도 힘이 되던지. 마침내 수주의 과정을 거쳐 N은행에서 전세자금대출 가심사가 통과됐다. 1월 초였다.


이제 기다리면 되겠지, 하고 내내 기다렸다. 2주가 넘고 3주가 다 되어가는데 은행에선 깜깜무소식이었다. 남편이 은행 대출 담당자에게 전화를 했다. '가심사 통과면 본심사도 통과인 거다, 부동산 잔금일 2일 전에 은행에서 전화드릴 거다' 라니... 아니, 평소엔 별의별 연락을 다 보내면서 이런 중요한 일이 됐으면 됐다고 연락을 줘야 하는 거 아니냐! 진짜 마지막까지 학씨...! 친정이고 시댁이고 온 가족이 맘을 졸이며 기다리던 일이 마침내 해결됐다. 남의 돈 받기가 이렇게 어렵습니다... 1월 말이었다.


다섯 번째는

2월 초 드디어 이사를 했다. 2월 중순에 설 명절연휴가 있어서 그전에 이사를 끝내려고 무던히 애썼다. 이사 당일, 기존 세입자 짐이 다 빠진 상태의 황량한 빈 집은 상태가 매우 심각했다. 왜 부동산 측에서 그토록 혀를 내두르며 '집이 너무 낡았다', '집이 오래됐다', '수리를 안 하고 세입자들이 계속 살아왔다' 말했는지 이제야 실감이 나는 순간이었다. 오래된 옛날 철제 샷시, 끄트머리마다 너덜거리는 장판, 방과 화장실 벽마다 핀 곰팡이, 방이고 거실이고 애기가 마구잡이로 낙서한 벽지, 누렇게 뜬 벽지, 고장난지 오래돼서 이전 세입자는 한 번도 켜본 적도 없다는 주방 전등, 고장난 부엌 싱크대의 수전... 이삿날이 되어서야 집의 민낯을 처음으로 제대로 마주한 남편은 좌절했다. 앞으로 애를 키우고 살아야 하는데 여기서 어떻게 살지. 남편은 머리를 감싸고 주저앉았다. 마침 입주청소를 위해 우리보다 먼저 빈 집에 들어와 있던 사장님도 심각한 얼굴이었다. 2년 전에 첫 신혼집 입주청소를 맡아주셨던 사장님이라서 또 연락을 드려 두 번째로 얼굴을 뵀는데, 그때와 지금은 너무 다른 컨디션의 집. 추가비용이 불가피하게 들어갈 거라 조심스럽게 말씀하시는 사장님에게 신경 쓰지 말고 다 추가해서 진행할 테니 깨끗하게만 부탁드린다고 거듭 말씀드렸다. 하도 우리 부부가 얼빠진 얼굴로 서 있으니, 부동산의 채근에 못 이긴 듯 집주인이 부엌의 수전과 주방 전등은 그날 당일 바로 고쳐주었다. (당연한 거 아니냐)


마침 이전 세입자 가족 중 남편이 부동산 잔금처리를 위해 혼자 자리를 지키고 있었는데, 딱 보기에도 헐랭해보이는 첫인상의 그는 '이 집은 집 컨디션보다 인프라를 보고 살아야 하는 곳', '저희가 처음 이사 들어올 때도 집이 이랬어요' 라며 위로인지 모를 말을 건넸다. 아무리 그래도 이해가 안 갔다. 저 가족은 이 집에서 3년을 살았다는데, 그 내복차림의 남자아이가 이런 집에서 뛰어놀며 자라났다고? 우리는 그렇게 부동산 잔금을 치르고, 동사무소에서 일을 끝내고, 입주청소가 끝날 때까지 스타벅스에서 기다리며 '내가 잘 꾸미고 살게', '입주청소 해놓으면 한결 깨끗해질 거야' 라며 남편을 위로했다. 아니,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었다. 머리가 복잡했다. 우리의 첫 신혼집이 워낙 깔끔하고 깨끗했던지라, 지금의 집이 너무나 비교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남편은 자꾸만 자신이 처음 자취했던 대학생 새내기 시절의 오래된 원룸 빌라가 떠올라 다시 그때로 돌아간 것 같다며 속상해했다.


여섯 번째는

입주청소가 끝난 집은 한결 상태가 나아 보였다. 그렇게 포장 이삿짐이 들어오고, 짐 정리를 하고, 필요한 가구를 사 들이고, 조금씩 우리 스타일로 꾸며가고 있었다. 유독 세입자에게 시큰둥하고 비협조적인 자세로 이 동네에서 유명한 듯한 집주인은 지금 우리 집에도 별 관심이 없어서, 우리가 벽지에 페인트칠을 해도 되겠냐고 묻자 마음대로 하시라고 했다. 자기 돈 안 들면 뭐든 상관없다는 자세였다. 차라리 잘 됐다 싶어서, 남편은 친환경 페인트를 구매해서 직접 벽지에 페인트칠을 시작했다. 거실, 안방, 현관 입구, 화장실 옆까지 벽지를 직접 다 페인트칠을 했다. 임산부인 나는 가까이 오지 말라 하고 혼자 다 한다길래, 가만히 있을 수 없던 나는 붓 하나를 들고 남편을 졸래졸래 쫓아다니며 붓에 페인트를 콕 찍어 방마다 문지방과 문틀을 하얗게 칠했다. 이게 바로 최근에 끝난 며칠 전의 따끈따끈한 2월 설 명절연휴였다.


태어나 페인트칠 처음 해 본다는 남편의 실력은 기가 막혔다. '와! 무슨 전문가가 한 거 같아!' 벽지마다 하얗게 페인트칠만 해도 집 분위기가 달라졌다. 완전 다른 집이 됐다. 양가 부모님들도 집에 놀러 와 보시고 깜짝 놀라셨다. 애썼네, 고생 많았네. 페인트 냄새 환기시킨다고 계속 창문을 열었다 닫았다 한 우리 부부는 결국 고생 끝에 감기를 얻었지만, 마음은 무척이나 뿌듯했다.





*이 와중에 또 하나의 웃픈 에피소드

우리 아파트는 주상복합이라 1층에 다이소가 있다. 퇴근한 내가 다이소에서 이것저것 필요한 수납함을 사서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마침 집 보러 온 사람들과 부동산 관계자 2명이 같이 탔다. 내가 우리 집 층수를 누르자, 처음 보는 낯선 부동산 아저씨가 맨 앞에 서서 문만 쳐다보고 있는 나에게 아주 친절하게 말을 걸었다. '아유, 이런 거 사 가시는 거 보니 000 호구나! 며칠 전에 이사하신 거 봤어요' 아하 네... 그다음 말이 또 기가 막힌다. '집이 좀 더러워도 잘 살아요' 아주 친절하고 사람 좋은 웃음을 띠며 내게 건넨 말씀이었지만, 뭐야?


우리가 그 더러운 집에 그대로 살 거 같아? 우리가 지금 어떻게 해놓고 사는 줄 알고! 나는 얼떨떨 아리송한 얼굴로 엘리베이터에서 먼저 내렸고, 나중에 퇴근한 남편에게 이 일을 얘기해 주자 남편은 별 이상한 아저씨를 다 봤다면서 노발대발했다. 어디 그런 실례되는 이상한 말을 하는 놈이 있냐며.


그치, 내 말이. 나도 그 자리에서 화낼 걸 그랬나.






이사했다고 하면, 주위에서 다들 '큰일 치렀네', '고생 많았겠다' 얘기를 해줬다. 예전엔 그 말의 뜻을 미처 몰랐다. 그런데 이번에 이사를 해 보니 이사는 진짜 큰일이 맞았다. 2년 전 처음 부부로서 신혼집에 들어갈 때만 해도, 그땐 부모님 집에서 내 짐만 홀라당 들고 입주를 했어서 어려움이 전혀 없었다. 그런데 부부로서 2년을 살고 이사를 하려니 그 새 좀 살았다고 짐도 늘어났고, 챙길 것도 많고, 집값도 높아지니 필요한 돈도 많아져서 대출도 해야 하고... 애 태어나고 이사했으면 정말이지 큰일 날 뻔했다.


어찌됐건 우리는 이사를 잘 했고 여전히 둘 다 미약한 코감기 진행 중이지만, 뿌듯하고 만족스러운 마음으로 하루 하루 잘 보내고 있다. 지금은 우리 집이 무척이나 맘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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